송찬호 동시들

동시

by 보리


달팽이 전세 계약서


달팽이가

콩잎과

전세 계약을 했다


둥글넓적한 콩잎 마당에서

여름 동안

살다 가기로 했다


태풍이 불어

콩잎이 뒤집히거나 해서

콩잎에 붙어 있던 달팽이집이 땅으로 똑, 떨어지면


그때 전세 계약이

끝나는 걸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구름자동차와 미루나무


조심조심 달리는데도

구름자동차가

미루나무꼭대기에

쿵, 하고 부딪쳤다


다치거나 부서진 것은 없다

그저 구름자동차는

미루나무에게

키가 커 멋지다 하고


미루나무는

구름자동차의

시트가 푹신푹신

한번 타 보고 싶다 하고













사슴뿔 숙제


사슴을 그리다가

뿔을 잘못 그려

지우개로 지웠다


뿔을 다시 그리면서

사슴에게

내는 숙제


너에게 꼭 맞는

작은 뿔을 그려 줄 테니까

앞으로 네가 튼튼하고 크게 키워













도라지꽃


햇살 동터 오는

산등성이 아침

보랏빛 도라지꽃

늦잠을 자고 있다


곁을 지나던 노루가

보랏빛 꿈이 무얼까

가만히 들여다보고 간다













소금쟁이


비 온 뒤

물웅덩이가 생기고

소금쟁이가 이사 왔다


물에 뜬 소금쟁이가

그 긴 다리로

물을 꾹꾹 눌러 보며 말한다

여기서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물이 참 딴딴해








송찬호


저자 : 송찬호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 6호에 작품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다. 2000년 김수영문학상과 동서문학상, 2008년 미당문학상, 2009년 대산문학상, 2010년 이상시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동시집 『저녁별』 『초록 토끼를 만났다』와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분홍 나막신』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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