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동시들

동시

by 보리


수세미꽃 핀 집


지붕이 온통

노란 수세미꽃으로 뒤덮인

집이 있다.


수세미꽃 속에서

흰 머릿수건을 쓴 할머니가 나와

고추밭을 향해

점심 잡숴요, 한다.


빨갛게 고추가 익는

고추밭이

알았네, 하고 대답한다.


할머니가 얼른요, 하면서

노란 수세미꽃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이 한 살 빌려줍소


꼬부랑 할배한테 도깨비가 손 벌렸지.

나이 한 살 빌려줍소!

빌려줄 거 없네!


동수 아재한테 도깨비가

손 벌렸지.

나이 한 살 빌려줍소!

나중에! 하고 동수 아제 가 버렸지.


마침 날아가는 하루살이한테

손 벌렸지.

나이 한 살 빌려줍소!

그러자 하루살이가 울었지.

절 너무도 모르시네요.











깡통


길 위에

깡통 하나.


도깨비가

툭 건드려 본다.


딸그랑, 한다.

어라, 입이 달렸네!


도깨비가 또 툭, 건드려 본다.

떼구르르 굴러가더니 되돌아온다.


어라, 발이 달렸네!











호박씨


호박씨 구덩이에

뒷거름을 넣고

호박씨를 묻었다.


참 얼마나 기막힌 일인지,


호박씨는

그 냄새나는 구덩이에서

푸른 깃발을

찾아 들고 나왔다.











빈둥빈둥빈둥


바람 부는 날

숲에 가 보면 안다.

나무들이 온종일 빈둥거린다.

빈둥빈둥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논다.

일없는 나룻배처럼

빈둥빈둥 빈둥거린다.

바람 부는 날에는

새들도 바람을 타며 하늘 모퉁이를

빈둥거리며 논다.


그렇게 놀아서 나중에 뭐가 되려고!

아무도 그런 말 안 한다.










권영상 동시인


1953년 강릉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안성에 별을 하나 만들어 놓고 서울을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꿈꾸던 나의 별에는 마늘도 심고, 감자도 심고, 해바라기도 가득 심었습니다. 《구방아, 목욕 가자》, 《엄마와 털실 뭉치》, 《아, 너였구나》 등의 동시 집과 《내 별에는 풍차가 있다》 등의 동화책 50여 권을 냈습니다. 세종아동문학상, MBC동화대상,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오랫동안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