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동시들

동시

by 보리

감자꽃


흰 꽃잎이 작다고

톡 쏘는 향기가 없다고

얕보지는 마세요


그날이 올 때까지는

땅속에다

꼭꼭

숨겨둔 게 있다고요


우리한테도

숨겨둔

주먹이 있다고요











염소의 저녁


할머니가 말뚝에 매어놓은 염소를 모시러 간다

햇빛이 염소 꼬랑지에 매달려

짧아지는 저녁,

제 뿔로 하루종일 들이받아서

하늘이 붉게 멍든 거라고

염소는 앞다리에 한번 더 힘을 준다

그러자 등 굽은 할머니 아랫배 쪽에

어둠의 주름이 깊어진다

할머니가 잡고 있는 따뜻한 줄이 식기 전에

뿔 없는 할머니를 모시고 어서 집으로 가야겠다고

염소는 생각한다











고드름


하나같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밤새

굳게

결심하고

결심한 것처럼

매달려 있네











짜장면 냄새


짜장면 냄새가 나도 침을 삼키지 않겠다

다짐하고 중국집 앞을 지나간다

짜장면 냄새가 내 코를 잡아당긴다

킁킁 콧구멍이 벌름벌름

그래도 나는 침을 삼키지 않겠다

다짐할수록 내 코가 길어진다

내 코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짜장면 냄새


항복이다, 항복!

두 손 들었다

내가 졌다

짜장면 냄새하고는 싸워 볼 수도 없다











참새들

참새는

혼자서 놀지 않는다

모여서

논다


전깃줄에도

여럿이

날아가 앉고

풀숲으로도

떼를 지어

몰려간다


누가 쫓아도

참새는

혼자서 피하지 않는다


친구들하고

같이

날아간다







안도현 선생님은 시인이며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입니다.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부터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까지 모두 11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냠냠』, 『기러기는 차갑다』 등의 동시집과 『물고기 똥을 눈 아이』, 『고양이의 복수』, 『눈썰매 타는 임금님』, 『울릉도를 지킨 안용복』 등 여러 권의 동화를 썼습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국내에서 100만 부를 넘긴 베스트셀러로 15개국의 언어로 해외에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은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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