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현 동시들

동시

by 보리

혼자 갈 수 있다


입학식 다음 날

공부 마치고 교문 앞에 갔더니

엄마 할머니 사범님 학원선생님 할아버지

학원엄할마선생님머니엄사할범마아버지님

교문이 꽉꽉 막혔다


우리 엄마는 없다

괜찮아, 나는 1학년


학원엄할마선생님머니 나 엄사할범마아버지님


뚫고 간다










수저통 귓속말


언제부터 둘이 저렇게 친해졌니?


몰랐어?

엊그제 눈 어두운 할머니가

시우 젓가락이랑

저 키다리 젓가락을

짝으로 맞춰 줬잖아.

그날부터야.

수저통에만 오면

둘이 붙어서 놀고 있는 게.

발을 잘 맞춰 보니까

키 차이는 문제가 안 되더라나?

편식쟁이 시우가

콩나물도 김치도 다 먹은 건

자기들이 잘 집어 준 덕분이래.

둘이 아주 눈꼴시어서 못 보겠어.

그래?

우리도 발 좀 맞춰 볼까?










주전자


바다에 나가

고기를 한가득 싣고 올

주전자가 되어

보리차를 끓일 때마다

항구에 돌아오는

배가 된다


내가 – 왔다 -


뿌 – 뿌 --

뿌 – 뿌 --










치킨 치킨


아빠, 치킨 사 줘!

치킨집이 새로 생겼어.

오늘은 개업이라 한 마리 사면 한 마리 더 준대.


지난주까지 속옷 가게 하던 자리야.

아니, 거긴 떡집이었다가 지금 화장품 가게고.

아니 아니야, 홈플러스 옆에 카페 하다가 반찬 가게 하다가

핫도그 파는 자리 왼쪽 말이야.

맞아, 거기!


다른 가게로 바뀌기 전에 얼른 사 줘.










장화 벗은 고양이


고양이는 막내아들의 방문 앞에

장화를 벗어 놓고

길을 떠나며 말했다


너 가져.

생각보다 불편하더라.

난 다시

맨발로 세상을 걸어 볼래.







방주현 동시인

2016년 [동시마중]에 「주전자」 「수저통 귓속말」 「모탕」 을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2017년 「주전자」 로 제1회 동시마중 작품상을 받았다.

2020년 문학동네 『내가 왔다』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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