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동시해 -장동이 동시들

동시

by 보리

파란 밥그릇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뭉게구름이

아침 먹고 나와 보니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어요.


그사이 그 많던 뭉게구름 덩이를

누가 저렇게 게 눈 감추듯

깨끗하게 먹어 치운 걸까요.


하늘 어딘가엔 아랫집 몽실이처럼

먹성 좋은 늙은 개가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


아직까지 몽실이만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비운 밥그릇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우체통 주제에


빨강 우체통 하나 만들어

마당 들어서는 길목에 세워 두었어.


한 철 지나자 우체통은

어떻게 꼬드겼는지 맞은편에

백일홍과 봉선화와 채송화를

불러들여 줄 세우더니


제 바로 옆으로는

하양 빨강 분홍 접시꽃들에게

무상 임대를 주었다지 뭐야.


멀뚱멀뚱 혼자 서 있기가

많이 외로웠대나 뭐래나.





달그림자 밟고서요


이슥한 늦여름 밤

달빛 속에 환한,

흑백의 산골 마을

내려다본 적 있나요?


가로등과 집들의 불빛도

달빛 속에 뭍혀

반딧불이 같은,

고요한 산골 마을을요.


소쩍새 소리와

철 이른 풀벌레 소리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마을 뒤 좁은 밭둑길에서

달그림자 밟고서요.





머위의 봄


싹 먼저 내미는 건 시시해

연둣빛 새순도 그저 그래


꽃송어리로 해 보는 거야.


먼저, 꼭 쥔 꽃주먹이야!






엄마 몰래


흰 점 촘촘 밤색 어린 고라니는

산 너머 마을이 너무 궁금해

우거진 풀숲에 몸 숨겨 두고

마음 혼자서 구경하러 간대

엄마 몰래 바람결처럼


그럼 어린 고라니는

마음이 돌아올 때 헷갈릴까 봐

그 자리서 꼼짝 않고 기다린대

마음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들이나 산엘 가면 가끔

어린 고라닐 만날 수 있어

그럼 모른 척 그냥 지나가

마음이 돌아오는 대로 녀석은

엄마한테 얼른 가야 혼나지 않거든








196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2010년 《동시마중》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엄마 몰래』 『파란 밥그릇』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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