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밥그릇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뭉게구름이
아침 먹고 나와 보니
흔적도 없이 다 사라졌어요.
그사이 그 많던 뭉게구름 덩이를
누가 저렇게 게 눈 감추듯
깨끗하게 먹어 치운 걸까요.
하늘 어딘가엔 아랫집 몽실이처럼
먹성 좋은 늙은 개가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
아직까지 몽실이만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비운 밥그릇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우체통 주제에
빨강 우체통 하나 만들어
마당 들어서는 길목에 세워 두었어.
한 철 지나자 우체통은
어떻게 꼬드겼는지 맞은편에
백일홍과 봉선화와 채송화를
불러들여 줄 세우더니
제 바로 옆으로는
하양 빨강 분홍 접시꽃들에게
무상 임대를 주었다지 뭐야.
멀뚱멀뚱 혼자 서 있기가
많이 외로웠대나 뭐래나.
달그림자 밟고서요
이슥한 늦여름 밤
달빛 속에 환한,
흑백의 산골 마을
내려다본 적 있나요?
가로등과 집들의 불빛도
달빛 속에 뭍혀
반딧불이 같은,
고요한 산골 마을을요.
소쩍새 소리와
철 이른 풀벌레 소리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마을 뒤 좁은 밭둑길에서
달그림자 밟고서요.
머위의 봄
싹 먼저 내미는 건 시시해
연둣빛 새순도 그저 그래
꽃송어리로 해 보는 거야.
먼저, 꼭 쥔 꽃주먹이야!
엄마 몰래
흰 점 촘촘 밤색 어린 고라니는
산 너머 마을이 너무 궁금해
우거진 풀숲에 몸 숨겨 두고
마음 혼자서 구경하러 간대
엄마 몰래 바람결처럼
그럼 어린 고라니는
마음이 돌아올 때 헷갈릴까 봐
그 자리서 꼼짝 않고 기다린대
마음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들이나 산엘 가면 가끔
어린 고라닐 만날 수 있어
그럼 모른 척 그냥 지나가
마음이 돌아오는 대로 녀석은
엄마한테 얼른 가야 혼나지 않거든
196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2010년 《동시마중》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엄마 몰래』 『파란 밥그릇』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