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동시해 - 이상교 동시들

동시

by 보리

아름다운 국수


오, 미끈한 발레리나

부엌 싱크대 서랍 속에

오래 누워 있었구나

슈즈도 신지 않은

보얀 맨발


한 묶음 집어

손으로 톡톡 키를 맞추고

끓는 물 냄비에 넣자

스르르 미끄러져 내린다

둥근 치마가

꽃잎처럼 펼쳐진다


보글보글 소리에 장단 맞춰

사뿐히 뛰어오르기

한 바퀴 빙그르르 휘돌아 멈춰 서기

새하얀 함박웃음이

동동 떠올랐다 넘친다


채에 받쳤다가

차가운 물에서

새초롬

매끄럼

말끄럼

아름다운 국수!












호박꽃


아주 큰 호박을

달 테다!


이른 아침

샛노란 호박꽃이

아귀가 찢어져라

피어났다











밤 하늘을

체로 거르면

챙그랑 챙그랑

별만 걸러져

부딪힐 거야.










남긴 밥


강아지가 먹고 남긴

밥은


참새가 와서

먹고,


참새가 먹고 남긴

밥은


쥐가 와서

먹고,


쥐가 먹고 남긴

밥은


개미가 와서 물고 간다.

쏠쏠쏠 물고 간다.











겨울 나무


겨울에는 나무들이

땅 밑으로 큰다.

뿌리끼리 손잡고

잠 안 자고 큰다.

빨간 불씨 한 개씩

뿌리마다 사리게 하고

저희끼리 큰다.


겨울 나무에 기대어도

변함없이 따스한 건

감춰놓은 빨간 불씨 그 한 개 때문.


겨울에는 나무들이

땅 밑으로 큰다.

뿌리끼리 어깨 겯고

잠 안 자고 큰다.

제 빨간 불씨 한 개가

봄 해님과 만나는

꿈을 꾸며 큰다.



서울에서 태어나 강화에서 자랐습니다. 1973년 《소년》 잡지에 동시가 추천되었고, 197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1977년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각각 당선되었습니다.
동화집 《‘싫어해’ 그 반대》 《빵집 새끼 고양이》, 동시집 《수박수박수》 《살아난다 살아난다》, 그림책 《소가 된 게으른 농부》 《연꽃 공주 미도》, 필사책 《 마음이 예뻐지는 동시, 따라 쓰는 동시》 등 수많은 작품으로 어린이들을 만나 왔습니다.
2017년 IBBY 어너리스트에 동시집 《예쁘다고 말해 줘》가 선정되었으며, 한국출판문화상, 《좀이 쑤신다》로 박홍근 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2020년에는 《찰방찰방 밤을 건너》로 권정생문학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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