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동시해 - 정완영 동시들

동시

by 보리

동구 밖 느티나무


얼마나 큰 부채가 저렇게 시원할까

어떤 선풍기가 저렇게 빙빙 돌까

더위도 구름도 다 날리는 동구 밖 느티나무








외딴집


낮에는 해가 하나, 밤에는 달이 하나

고목나무 가지 끝에 올라앉은 새 둥지 하나

할머니 혼자서 사는 집 허리 굽은 길이 하나








봄 오는 낌새


산들이 두꺼비처럼 굼실굼실 기어 나오면

나무도 목도리 풀고, 어정어정 따라나서고

논두렁 밭두렁들이 기지개를 켠답니다.


아직은 바람 끝이 옷소매에 시린데도

우리 마을 강마을은 봄이 일찍 온답니다

강둑도 두 다리 죽 뻗고 기지개를 켠답니다.








창포 꽃 피는 못물


우리 마을

석촌 호수

창포 꽃이 피는 날은


바람도

꼼짝 못 하고

꽃만 보고 섰습니다.


구름도

물속에 내려와 꽃만 보고 섰습니다.









감꽃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보는 이도 없는 날에

푸른 산 뻐꾸기 울고 감꽃 하나 떨어진다

감꽃만 떨어져 누워도 온 세상은 환하다.


울고 있는 뻐꾸기에게, 누워 있는 감꽃에게

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여기가 그 자리라며 감꽃 둘레 환하다.





정완영은 1919년 경북 금릉에서 태어났다. 1960년 ≪국제신보≫ 신춘문예에 시조 <해바라기>가, 19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해바라기처럼>이 당선했다. 지은 책으로 동시조집 ≪꽃가지를 흔들듯이≫, ≪엄마 목소리≫, 동시화집 ≪가랑비 가랑가랑 가랑파 가랑가랑≫, 시집 ≪채춘보≫, ≪묵로도≫, ≪실일의 명≫, 시조집 ≪연 바람≫, ≪난보다 푸른 돌≫, 산문집 ≪백수산고≫ 외 다수가 있다. 김천시 문학상, 한국문학상, 중앙일보 시조대상, 육당문학상, 만해시문학상, 육사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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