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83년생 유민정 씨는 걷고, 또 걷는다. 그녀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할 시간도 없으니, 스스로는 만족하며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오른다. 그러다가도, 올해 마흔 살이 된 유민정 씨는 내가 이 나이에 연골이 다 닳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도 한다. 참 모순적이지만 그게 그녀의 모습이다.
얼마 전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화로 까지 만들어졌다. 왠지 동질감이 들어서 일까? 83년생인 나도 책도 사보고, 영화도 보았다.
그날은 모처럼 쉬는 날이었고, 펑퍼짐한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고, 뜨거운 라떼를 사서 들어갈까 하다가, CGV 쿠폰을 확인하고 팝콘과 콜라를 사서 혼자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날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며칠 전부터 나랑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말에 그날따라 찰떡같이 알아들은 남편이 티켓을 예매해줘 보러 가게 되었다.
아무튼 영화 속에 정유미라는 배우는 너무 예뻤고, 공유라는 배우는 너무 멋있었다. 나도 다른 사람의 댓글처럼 남편이 공유이면 모든 게 다 용서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도 잠시 하였다. 둘 다 내가 너무 좋아라 하는 배우이니 영화가 혹시나 재미가 없더라도,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울 참이었다.
영화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유미라는 배우가 베란다의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통틀어 가장 슬펐으며, 가장 공감이 되는 장면이었다.
그 이유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나도 그랬다. 나도 분명 그랬다.
그날은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집은 햇빛은 볼 수 없었다. 앞뒤로 다른 동들의 아파트로 가려져 틈 사이로 맑구나, 흐리구나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의 베란다에는 의자는 없었다. 창문을 열고 우두커니 서서 우리 집과 똑같은 앞 동의 모습과 틈 사이로 보이는 푸르름을 번갈아 가며 보고 있을 때 나는 분명 생각했었다.
"여기는 18층인데, 내가 날아가면 좋겠다..." 그러면 다 끝날 텐데... 그러면 모두 슬퍼하겠지"
힘들었다. 감히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죽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 대한 복수인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이 든 건 처음 이었던 것 같다.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무탈하게 초, 중, 고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하였으며, 그 이듬해에는 남들보다 빠르게 결혼까지 하였고, 또 그 이듬해에는 아이까지 출산하게 되었고, 두 살 터울의 둘째까지 얻으며 남편과의 사이는 무척이나 좋았다. 주변 사람들 모두 부러워하였고, 너는 어떻게 인생이 이렇게 술술 잘 풀리냐며 네가 하나님을 잘 믿어서 그렇다며 칭찬해 줄 때는 내가 하나님을 빛나게 하는 것 같아서 우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내가 반복되는 육아 속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영화 속 장면을 보게 되니,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동질감과 그때의 일이 떠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었다.
너무 청승 스러 보일까 봐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지금 생각해도 두 살 터울의 아이들을 앞뒤로 엎어서 키우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영화 속 장면처럼 남편, 친정엄마, 시어머니 모두 나를 도와주려 하였지만, 나는 그들의 작은말에 상처받고, 가끔씩 전화 와서 승진을 자랑하는 친구 말에 위축되었으며, 두 아이를 보는 것은 버거웠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조출연자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출연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나는 꼭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에 구속되고 힘들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엄마"라는 첫딸아이의 부름과 둘째 아들의 우렁찬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이 두 소리가 나를 깨우지 않았다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하였을지 아찔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는 것은 한참 세월이 지나고, 말하게 되었다. 말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생각을 했던 엄마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옛날 생각에 눈물을 조금 머금기도 하며, 그새 잠시 졸기도 하여 회사를 향해 또 걸어간다.
그때 생각하면 "나 참 어른 되었어, 기특하다"
어쩌면
"과거의 나의 모습보다 조금 더 성장한 나의 모습이 나의 문을 열어 줄 마법의 열쇠라 믿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