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甲으로 살 것인가? 乙로 살 것인가?
당당한 갑
2014년에 유명한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었다. 소위 재벌 오너 일가가 이륙 준비 중이던 기내에서 하찮은 땅콩 서비스를 문제 삼아 난동을 부린 데 이어, 비행기를 되돌려 승무원을 내리게 한 사건이다. 2020년에는 아파트 경비원에게 입주민이 폭언·폭행 등의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갑질로 연세 드신 경비원께서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갑질 논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원래 갑(甲)과 을(乙) 개념은 천간(天干,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십간(十干)을 말함)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글자로 우두머리와 그 밑을 뜻한다. 이런 연유로 계약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진 사람을 「갑」, 그 반대의 사람을 「을」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건물주와 임차인의 관계가 딱이다. 요즘도 임대차계약서에는 갑과 을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고용주와 종업원의 관계, 대기업과 하청기업과의 관계 등도 계약관계에서 생기는 갑과 을이다. 이 개념이 좀 더 확장되어 한 조직내에서 권력에 의한 상하관계를 의미하여, 지시하는 사람과 지시받는 사람을 갑과 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요즘엔 실제 권력의 유무를 떠나서 가진 사람,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관계로까지 확장되었다.
우리나라에선 요즘도 언론에 자주 「갑질」 사례가 보도되곤 한다. 식당 또는 편의점에서 손님이 주인이나 종업원에게 하는 갑질,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갑질, 택배 기사에 대한 갑질, 심지어 학교 현장에서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하는 갑질 등 사회 곳곳에서 갑질이 흉흉하게 행해지고 있다.
우리 공무원 조직에서도 갑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상급자가 하급자를 무시하고, 인격적으로 함부로 대하고.... 내가 몸담고 있는 서울시에서도 오래전 이런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직원들이 연이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조직에서 갑질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서나 기관 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갑질이 있을 수 있다. 힘 있는 부서가 힘없는 부서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는 경우가 있다. 소위 지원부서라 하는 행정국, 기획실, 감사실, 비서실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원부서는 본래 현업부서 또는 사업부서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이런 지원부서가 그 힘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쓸 때, 조직은 원활하게 잘 돌아간다.
지원부서 역시 한정된 자원을 사용해야 하므로, 현업부서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뭘 원하는지, 왜 원하는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지원해주면 어떤 실질적 효과가 있는지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하는데, 힘이 있다고 대충 “그거 안돼, 이거나 해”하거나, 평상시에 현업부서에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하는 것도 일종의 갑질인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집단적 선민사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옛날 일제가 우리 대한에 그랬고, 지금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하는 것도 일종의 그런 것일 거라고 본다.
지들이 뭐라고 같은 사람이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하고 막 대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조선시대 양반 상놈의 시대도, 인도의 카스트 제도도, 중세 유럽의 영주와 농노 관계도, 미국의 흑인 노예와 같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신분사회가 모두 사라진 현대사회에서....
이런 갑질은 뭔가 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보다 못나거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무시하면서 저 하고 싶은 대로, 저의 욕심만을 채우는 과정에서 생긴다.
이런 갑질을 근절할 수는 없을까? 그럴 수는 없어 보인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선한 사람으로 교화되지 않는 한.... 따라서 난 개인적으로 갑질에 대한 처벌을 무섭게 강화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 본다.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한 대가가 나에게는 엄청난 손해로 귀결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한다면, 차마 그러지는 못할 것 아닌가?
뜬금없이 갑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사실 나는 여기서 갑질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은 생뚱맞지만, 나는 기존의 「갑과 을」 개념을 다르게 정의하고 싶어, 갑·을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나는 내가 만든 새로운 개념의 갑과 을을 정의하고, 그 개념에 비추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실, 「공무원은 무엇으로 사는가?」 편에서 살짝 이야기하였으나,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 별도 꼭지를 만들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의미의 갑과 을은 직업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데 있어, 「내가 주체가 되는지?」 아니면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지?」를 기준으로 나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 개념은 나 혼자서 만들어낸 새로운 개똥철학이다. 기존의 갑·을 개념과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거나, 영업(세일즈)해야 하거나 또는 아쉬운 소리를 해야한다면 그건 「을 직업군」이다. 그렇지 않고 나 스스로 주체가 되어 경제활동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면, 현실적으로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면 그건 「갑 직업군」이다.
그럼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변호사는 갑인가? 을인가? 주로 을이다. 특히 사법시험에서 로스쿨로 전환한 이후 변호사 수가 많아져 변호사 시장의 과열이 시작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웬만한 변호사는 영업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사무실조차 유지하기 힘들다. 일부 내가 영업하지 않아도 의뢰인이 알아서 찾아오는 대형 로펌이나 유명한 변호사는 갑으로 분류될 수 있겠다. 그렇지 않은 다수는 을로 볼 수 있다. 다만, 유명한 변호사라도 돈을 벌기 위해 죄질이 나쁜 사람을 열심히 변호한다면(변호해야 한다면) 그건 최하질의 을이다. 돈 때문에 나의 전문성을 팔아야 하는 삶이니....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한창 진행중인 의사증원과 관련된 정부와 의사단체와의 싸움도 의사들 입장에서 어쩌면 갑에서 을로 전락하느냐의 기로에 선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물론 의사분들 입장에서는 다른 정당한 논리도 있을 것이다.) 국민 1인당 의사수가 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현저히 적은 상황에서 그간 의사들은 누가 뭐래도 갑의 입장에서 많은 수입을 보장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그런 구도를 깨보려 하는 것인데, 그래서 저렇게 치열하게 저항하는 것일 수도 있다.(물론 의사 전체의 자존심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밀어붙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덕분에 국민들만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 의사들이 을로 바뀌지 않는 적정한 범위에서, 장기적으로 어느 선까지는 전체 국민을 위해서 가야한다는 명제를 합의하는 선에서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대기업 직원들은 어떤가? 기업의 대부분 직원은 사원부터 이사까지 영업행위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을이다. 여기서도 일부 관리직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갑일 수도 있겠다.
식당 등 음식업, 개인 사업, 서비스업은 말할 필요도 없이 대부분이 을이라고 보면 된다. 개중에는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높은 기술력으로 손님들이 필요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서비스업은 갑일 것이다. 남에게 서비스를 한다고 무조건 을은 아닌 것이다.
연봉이 높은 은행원은? 증권사 직원은? 당연히 을이다. 고객이 없으면 수익이 떨어지고, 급기야 자리도 없어진다. 끊임없이 신규 고객을 창출해야 하며, 신규 상품을 팔아야 한다. 전형적인 을이다.
공장의 생산직을 포함한 기술자들은 어떤가? 갑이다. 이분들은 매우 귀해서 본인이 어렵게 찾아가거나 자기를 세일즈하지 않아도 된다. 따로 영업까지 할 필요도 없다.
발명가나 프리렌서는 대부분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더할 나위 없는 갑일 것이다.
그럼 우리네 공무원은 어떠한가?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100% 갑이다. 공무원은 지위나 직책에 관계 없이 누구에게 뭘 팔거나 부탁해야 먹고 사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민에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일을 해 주느냐?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만드느냐?’를 고민할 따름이다. 그래서 공무원 조직에서는 전통적 의미의 갑·을 개념이 있으면 곤란하다.
작가나 예술가도 물론 100% 갑이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예술세계를 창조한다면 말이다. 대중의 니즈를 살피는 대중예술이나, 요즘 대세인 유투버는 백 프로 갑이라고 얘기하긴 어렵지만, 그 안에서도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갑에 해당될 것이다.
TV에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의 주인공들도 당연히 갑이다. 다른 사람을 신경쓸 게 없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그에 반해 정치인은 거의 을이다. 도지사, 시장, 군수, 구청장 등 지자체장도 마찬가지다. 선거 때는 물론이고 언제나 유권자의 입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일부 자기 신념을 가지고 세상에 좋은 일을 또는 옳은 일을 그리고 후세에 도움되는 일을 신명나게 하는 정치인이나 지자체장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갑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갑과 을은 지위의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다. 있고 없고의 차이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차이다. 상쾌하게 내 직장으로 일터로 내 할 일을 찾아서 가느냐? 아니면, 오늘은 누구를 만나서 협조를 구하고 내 상품을 세일즈 하거나, 또는 누구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를 생각하는가의 차이다.
누구의 머리가 맑겠는가? 누가 스트레스를 덜 받겠는가? 누구의 영혼이 좀 더 자유로울까? 누가 일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덜 받겠는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갑은 나의 삶을 가치 있게 생각하며 나아가 타인의 삶의 가치도 존중하는 사람이고, 을은 타인의 삶을 그들의 경제적 가치를 내 삶의 가격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직업을 새롭게 구하려는 청년이나, 현재의 직장에서 꿈을 발견하지 못하고 새로운 직업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나아가 은퇴 후의 제2의 직업이나 인생을 설계한다면, 내가 정의한 갑과 을 직업군 중 기본적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도 함께 고려하면 좋겠다. 내 맘대로 살 것인가?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또는 좌우되면서 살 것인가?
돈을 많이 벌면서도 갑의 입장에서 살 수 있는 직업이면 가장 좋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아지는 것을 성공이라고 본다. 거기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갑의 입장까지 갖춘다면 그야말로 대성공이다. 하지만, 그런 직업이 어디 흔하랴? 그리고 솔직히 누구나 다 그렇게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대부분 「보통 사람」이다. 모두가 다 세속적인 성공을 꿈꿀 수는 없다. 보통 사람으로 살면서 갑의 입장에서 사는 것이, 돈을 많이 벌거나 지위가 높아지는 것보다 어쩌면 더 행복하게 사는 법은 아닐까? 전혀 새로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런 것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고 「나는 자연인이다」를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결혼한 부부관계로 확장해보자. 요즘 집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는 부인이 「갑」인가? 얼핏 보면 그렇다. 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니 갑이겠다. 그럼 부인의 말을 잘 들으며 별다른 걱정 없이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사는 남편이 「을」인가? 남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산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 경우는 남편이 갑이다. 부인은 아무래도 통솔을 해야 하므로 신경 쓸 게 많다. 그렇다면 당신이 남편(또는 부인)이라면 갑으로 살 것인가? 을로 살 것인가? 갑을 양보하자.
우리는 갑질하지 않는 「자유로운 갑」으로 살아보자.
내가 선택할 수만 있다면, 을의 삶보다는 갑의 하루하루가 훨씬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