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비오름으로 가는 길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성읍에서 제주시 쪽으로 가는 97번 동부관광도로를 몇 km쯤 달리다 왼편의 한적한 길로 접어들어 얼마쯤을 달린 뒤 ‘남영목장’ 간판이 서 있는 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좁은 비포장도로를 따라서 목장을 지나쳐서 아무런 안내표식도 없는 길을 걸어야 한다. 신문에서 이런 사항을 알지 못했다면 그 길을 찾기는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크지 않은 섬이지만 섬의 서부와 동부는 그 지세, 식생이나 풍광이 확연히 다르다. 서부 지역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많고 강하지만 한라산이 이들을 막아 주는 덕분인지 기후가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감귤 등의 비교적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고 있지만, 섬의 동부 지역은 남에서 북으로 부는 바람이 더욱 거칠고 강해서 토양이 척박하고 농사가 어려워 일부 고구마, 당근 등의 작물이 재배되는 곳을 제외하고는 거친 목초지가 대부분이다. 따라비오름으로 이어지는 지역의 일대도 마찬가지다.
따라비오름으로 가기 위해서는 목장을 통과해서 그 너머로 가야 한다. ‘남영목장’이라는 간판이 있고 빗장이 걸린 대문이 있으니 으니 사유지임이 분명하다. 도로를 가로막으며 좌우로 걸쳐있는 정낭이라는 통나무 대문의 정주목 옆을 돌아서 무단침입을 해야만 했다. 주위에서는 목장 출입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목장은 제법 크고 넓어 보였다. 하지만 사람은 물론 말이나 소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버려진 것일까?
따라비오름이 보이는 벌판(자료: 네이버 블로그 rlaeghml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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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 안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섶 바깥으로는 억새 무리 속에 각종 덩굴식물이 섞여 있다. 망개라고도 부르는 청미래덩굴과 찔레가 덤불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오름에 이르는 내내 이들 넝쿨이 번성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청미래덩굴은 밝은 선홍의 열매를, 찔레는 짙은 선홍의 열매를 달고 있다. 평탄한 길이지만 목초지가 끝나는 곳까지는 꽤 먼 길이다. 목장 입구로부터 오른쪽으로 목초지를 끼고 걷기 시작해서 목초지가 끝나는 2km쯤의 길가 양쪽에는 삼나무가 가로수처럼 줄지어 서 있다. 아마도 바람을 막기 위한 목적일 듯싶다. 그리고 삼나무 가로수가 끝나는 곳부터는 억새의 평원, 억새꽃의 바다다. 오름이 시작되는 곳까지 또다시 2km쯤의 벌판은 억새의 물결이 가득하다.
멀리 억새의 벌판이 끝나는 곳에 오름이 있다. 따라비오름. ‘따라비’는 ‘땅의 아비’라는 뜻의 제주 토박이말이라고 한다. 오름이 보통은 하나의 큰 언덕과도 같은 완만한 능선의 봉우리가 솟아있다. 하지만 따라비오름은 두 개의 높은 오름이 좌우로 솟아있고 그 아래로 능선이 흘러내리는 곳에 작은 아이 오름들이 모여있다. 아비와 엄마가 아이들을 품고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걸어오던 벌판도 온통 억새였는데, 오름을 오르는 길섶과 언덕, 오름 전체를 죄다 억새가 뒤덮고 있다. 오름이 아니라 억새의 언덕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서편으로 기울어진 태양의 햇살이 억새에 내려앉아 수도 없이 많은 작은 빛 조각과 줄기가 부서지고 흩어지며 바람과 함께 은빛 파도처럼 출렁인다. 바람이 멈추면 억새꽃에 떨어져 부서지는 햇빛 알갱이들이 잔잔하게 반짝거린다. 햇빛을 앞으로 하고 억새 무리를 바라보면 은색 억새꽃 ‘새품’의 무리가 보석보다도 더 눈부시게 빛난다. 해를 등지고 벌판을 바라보면 하얗게 서리가 내린 듯도 하고 온통 눈이 내려 눈꽃이 핀 것도 같다.
따라비오름 능선(자료: 네이버 블로그 rlaeghml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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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모습의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능선의 오름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름의 아랫자락에서는 내 키만큼 자란 크기의 억새는 언덕을 오르며 차츰 그 키가 작아진다. 끊임없이 부는 바람에 부대껴 억새의 머리와 허리가 빗겨 굽어있다. 간혹 오름을 올랐던 사람들의 발길에 우거진 억새 무리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길의 모습이 어렴풋하다. 높고 큰 오름의 그림자가 낮은 오름 한쪽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늘이 드리워진 오름의 허리와 햇빛이 빗기어 쏟아지는 오름 허리의 색조가 완연한 대조를 이룬다.
여러 오름 중에서 가장 높은 오름의 언덕에 올라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차갑고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에 안는다. 주위의 너른 벌판이 멀리까지 내다보이고 한라산의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발아래로 유연한 능선이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해가 서편의 먼 산자락 아래로 가까워지자 그늘진 들판과 빗겨 드는 햇빛을 머금은 억새꽃의 색깔은 더욱 선연해 보인다. 그늘을 머금은 쪽은 어두워져서 무게감이 느껴지고, 햇빛을 받아내는 쪽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햇발이 부서질 듯 눈이 부시다. 부는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의 무리가 사각거리며 부산스럽다. 아무 말 없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오랜 시간을 언덕 위 억새 풀숲 속에 앉아있었다. 삼다도인 제주에 바람이 많다는 건 틀림이 없다. 연거푸 몰려오는 바람이, 더욱 차가워지는 바람이 어서 언덕을 내려가라고 내 몸을 떠민다.
발아래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능선의 단조로움이 그 아래 어디쯤엔 가에서 잠시 흐트러진다. 그것은 오름의 무릎쯤에서 그 흘러내림이 과감하게 멈추는 하나의 파격이 있기 때문이다. 작고 야트막한 무덤과 그것을 4각으로 둘러싼 아담한 돌담이 그것이다. 화산석 현무암으로 쌓는 밭의 돌담이 ‘밭담’, 무덤 주위에 쌓는 돌담은 ‘산담’이란다. 큰 오름의 아래쪽에 서너 개, 작고 낮은 오름 하나에는 그 오름의 정상 부분에 하나가 있다. 산마루와 능선의 흘러내림에 변화를 주지만 큰 흐트러뜨림은 주지는 않을 정도다. 무덤의 봉분이 크지 않고 또 그것을 야트막한 돌담이 감싸 주기 때문이다. 억새 무리에 싸여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 무덤도 있다. 돌담의 돌이 바람에 쉽게 부서지는 화산석이라 머지않아 그 흔적이 사라지는 것도 있으리라.
따라비오름 산마루의 빈 의자(자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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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펼쳐진 발아래 풍경을 바라보노라니 어느새 해가 저문다. 다섯 시가 되자 해가 완전히 떨어졌다. 햇빛을 안고 걸었던 삼나무 가로수길을 갓 어스름을 밟으며 되돌아온다. 장대한 규모의 구조물, 고풍스러운 건축물, 장엄한 자연의 모습, 빼어난 풍광, 재미있는 놀거리나 볼거리가 아니더라도 충분하게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여유로웠고 자유로웠다. 마음 가득한 충만감이 느껴졌다. 어디를 가나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고 소음이 적지 않았는데, 모처럼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는 호젓한 오솔길을 걸었다. 원시 자연과도 같은 풍경 속에서 나 자신마저 잊을 만큼 그 자연과 하나가 된 듯했다. 그 무엇과도 휩쓸리지 않고 휩싸이지 않으며 오롯이나 자신만의 혼자가 될 수 있었다.
따라비오름을 내려와서 다시 목장 안 길을 걸었다.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문득 어느새 내 나이가 지천명(知天命)이라는 50에 이르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간너무 앞만 보고 허위허위 달려온 게 아닐까. 모든 것을 단번에 해치우고 압축하기라도 하듯 무척이나 서두르며 오로지 앞으로 돌진하며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도 마찬가지, 볼거리와 놀거리가 있다는 곳을 찾아 한시도 쉬지 않고 옮겨 다녔다. 유명하다는 곳, 이름이 있는 걸 놓칠세라 마음은 늘 쫓겼다.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때로는 손뼉을 치며 요란하게 노래를 불렀고 녹초가 돼서야 여행에서 돌아왔다. 이건 아니지 싶다. 앞으로의 여행은 오늘처럼 좀 더 여유있고 자유롭게 해야지. 발리의 멘장안에서 만났던 어느 여행객처럼 한 곳에서 한 달씩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앞으로는그렇게 조금은 숨을 고르며 살아야지 (2002.11.30.)
늦가을 따라비오름 풍경(자료:네이버 블로그 욱이의 제주 이야기)
후기
따라비오름은 제주 368개 오름 중의 하나다. 오름 높이 342m, 걸어 오르는 오름의 높이는 100m 정도. 제주 오름 중에서 10번째로 높은 오름이다. 이 오름 여행 당시인 2002년 11월의 메모 그림이어서 지금의 모습과는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