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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Feb 28. 2023

[순우의 여행노트 9] 제주 전통 초가 새집 민박

  새집 ‘해녀와 초가집’

  하도리 마을의 닭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운다. 한밤중부터 동이 틀 무렵까지... 하지만 우리가 여장을 푼 ‘해녀와 초가집’이라는 이름의 민박집이 마을 한가운데에 있어서 이 집 저 집의 닭들이 저마다 울어대니 어쩌겠는가. 밤중에 몇 번인가 깨서 잠을 설치기도 했는데,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초가집 앞 잔디 마당으로 나왔다. 철새도래지 바다 호수가 보인다. 마을 앞쪽을 파고든 해안 너머로 야트막한 산봉우리 지미봉이 솟아있다. 마을과 봉우리 사이의 철새도래지 바다 호수가 아늑하기만 하다. 아침 썰물에 바닷물이 빠져나가며 바다는 물결 하나 없는 잔잔한 호수가 된다. 그래서 아늑하고 잔잔한 이 바다 호수로 온갖 철새들이 찾아드는가 보다.

하도리 철새도래지 풍경(자료: 네이버)

  ‘해녀와 초가집‘. 고기를 잡는 남편과 물질을 하는 아내인 연이라는 해녀가 손님을 받는 민박집이다. 모두 그 자취를 감추어버렸지만, 이곳 하도리 마을에 남아있는 유일한 제주 전통의 초가집이다. 제주 사람들이 ‘새’라고 부르는 ‘띠’ 풀로 지붕을 덮은 집이다. 지붕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각단’이라는 여리고 질긴 풀로 꼰 새끼줄로 지붕을 얽어맨다. 이런 집을 ‘새집’이라고 부른다. 집의 외벽은 돌로 싸여있고 그 면적은 두 칸 남짓, 예닐곱 평쯤이다. 새집을 건사하는 일은 특별한 지붕 재료를 준비해야 하고 두세 해에 한 번씩 지붕을 덧씌워야 하기에 적잖이 성가시고 힘이 든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살던 안과 바깥 두 채의 초가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손님에게 빌려준다. 제주의 옛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다. 미리 주문하면 제주 토속 음식의 아침과 저녁 밥상도 차려 준다.

제주 전통 초가 새집(자료: 네이버)

  하도리 올레길 거꾸로 걷기

  서귀포시 구좌읍 하도리(下道里). 제주 섬 동쪽의 가장 먼 곳에 자리한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에서 뜨는 아침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제주를 한 바퀴 도는 21개 구간의 올레길이 끝나는 곳인가 하면, 제일 첫 번째 구간의 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하도리를 거치며 끝나는 마지막 21번째 구간의 올레길은 하도리와 이어지는 마을 종달리(種達里)에서 그 1번 길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하도리 마을에서 정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섬 우도(牛島)를 걷는 길은 1-1번의 올레길이다.


  이른 아침의 지금 시간에는 21번 올레길을 거꾸로 걸어 보기로 했다. 집 앞의 바닷가 둘레길을 북쪽으로 걷는 것이다. 거꾸로 걷는 그 길 어디쯤엔 가에 토끼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고 그곳엔 문주란이 군락을 이루어 자생한다고 들었다. 이른 아침의 바다엔 안개가 깔려 있다. 해녀박물관이 있는 방향으로 해안 올레길을 따라 오른편에 동쪽 바다를 두고 걸었다.


  약 2km쯤의 거리에 이르자 토끼섬이 보인다. 이 섬에 토끼와 꿩이 많이 살기에 토끼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시간이라 섬으로 이르는 길이 꽤 멀리까지 열려있다. 하지만 걸어서 섬으로 건너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바닷물에 젖었던 검은 바위가 드러나 있어서 섬은 검은색 성벽을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 안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라는 문주란 무리가 7, 8월이면 섬 가득 하얀색의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고 한다. 길가에도 이따금 눈에 뜨이는 문주란이 지금은 큼직한 씨앗 송이를 달고 있다.


  6시 20분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토끼섬이 바로 앞으로 보이는 돌산 위에서 해 뜨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옅은 안개에 투사된 빛을 뿌리며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는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물결 위로 잔잔하게 일렁이는 긴 빛줄기를 만든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 그림의 일렁임과도 같은 풍경이다. 가까이에 보이는 섬은 우도, 그 오른쪽으로 멀리에 보이는 산봉우리는 철새도래지 바다 호수 너머의 지미봉일 것이다. 바다 쪽에 그보다 더 멀리에 아스라이 보이는 건 성산 일출봉일 테고...  아침 바다는 한적하고 고요하다. 섬 말고 바다 위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문주란 꽃이 만발한 토끼섬에서 남쪽을 바라 본 풍경(자료: 네이버)

  되돌아오는 길, 호수 가까이에 이르자 큰 간판 하나가 서 있다. 지난해 이곳의 ‘철새도래지 호수공원’ 조성 사업이 완료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로를 넓히고 갓길을 단장한 흔적이 보인다. 중장비가 동원되고 사람의 손길을 가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길섶을 온통 잡초가 뒤덮고 있다. 바랭이, 쑥, 환삼덩굴... 멀구슬나무에는 덩굴식물이 타고 오른다. 제주의 바닷가 오솔길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해국이나 섬쑥부쟁이 따위의 토박이 식물들은 찾아볼 수 없다. 사람의 손길이 가해진 곳에는 생존력이 강한 외부 유입종의 식물들만이 살아남은 듯하다.


  하도리 올레길 마저 걷기   

  섬을 한 바퀴 도는 제주 올레길은 맨 마지막 구간인 21번 길이 하도리 마을에서 끝난다. 그리고 종달리 마을로부터 1번 길이 시작된다. 해녀와 초가집에서의 두 번째 날 아침 역시 일찍 눈이 뜨였다. 어제 아침과는 반대로 호수공원에서 성산 쪽 바닷가 길을 따라서 1번 올레길이 시작되는 종달리까지를 걷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걷는 여행이다. 어제 낮에는 1-1번 올레길의 우도(牛島)를 걸었다. 곧 만 두 살이 되는 쌍둥이 손녀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모든 구간을 걸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종달항에서 출발한 배가 우도에 선착하는 곳에서 이어지는 모래밭 길을 걷기도, 우도 등대로 오르는 언덕길을 걷기도 했다. 섬을 한 바퀴 걷는 둘레길을 걷는다면 그 거리가 약 15Km, 하루쯤의 시간을 내서 걸어야 하는 길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걸어보고 싶은 섬 바닷길이었다.


  깊은 잠에 빠져있는 쌍둥이네를 남겨두고 집을 빠져나왔다. 바다에는 아직도 여명이 남아있다. 21번 올레길 중간쯤의 지점인 하도 해수욕장이 있는 해변으로부터 왼편으로 우도가 보이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돌청산불턱이라는 돌담이 나타난다. 불턱이라면 해녀가 옷을 갈아입거나 물질을 하다가 쉬기도 하는 곳이다. 가슴 정도 높이로 시각으로 또는 둥글게 돌담을 쌓아 올려 바람을 막고 그 안에서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피울 수도 있다. 물질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여인들의 커뮤니티 공간이다. 시골 마을의 빨래터와도 같은 곳이다. 이곳은 주위의 바위 무더기가 자연형 불턱을 만들어준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해녀가 사라진 지금은 그들의 고달팠던 삶의 애환이 느껴지는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바위 무더가가 만들어준 돌청산 불턱(자료: 네이버)

  돌청산불턱을 지나고 나서 옅은 구름 속으로 떠오르는 해를 맞았다. 해는 어김없이 동쪽 바다에서 떠오른다. 떠오르는 해를 등 뒤로 하고 걷기를 계속 어제 우도를 가기 위해 배를 탔던 선착장이 있던 종달항을 왼편 바다 쪽으로 두고 걷는다. 두문포 삼거리길이 나오는 곳에서 역시 바다 쪽 길을 이어서 걷는다. 벤치에 앉아 성산 일출봉 쪽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쉼터에는 오징어를 말리는 어물 건조장이 있기도 하다.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냉동 오징어를 녹여서 이곳의 바닷바람에 말린다고 한다. 여기에서 좀 더 걸으면 종달항으로부터 약 1.5Km의 거리에 21번 올레길 종점인 종달바당에 이르게 된다. ‘바당’이라는 말은 제주 사람들이 부르는 바다라는 말. 남쪽으로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이다.


  종달바당의 노변 상점에서 1번 올레길이 시작되는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제주 올레길 여권 JEJU OLLE PASSPORT를 살 수 있다. 제주 올레길 여권은 2권으로 나뉘어 있다. 1번부터 12번 길 간의 올레길 여권은 파란색, 13번부터 21번까지의 여권은 주황색이다. 여권 하나에 12,000원, 파란색과 주황색 모두를 사려면 24,000원을 지불해야만 한다. 제주 사람의 상술일까? 올레길의 관리·유지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나마 충당하고자 하는 방편의 하나일 테지. 아내와 나는 주황색 여권 하나씩을 사서 종달바당 1번 올레길의 시작 스탬프를 찍었다. 언젠가는 제주의 올레길 모두를 걷고 그 여권에 모든 루트의 인증 스탬프를 찍어야지.

제주 올레 주황색 패스포트 - 13~21번 길

  걸으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바로 서서 걸을 수 있는 인간만이 지니는 특권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일까? 소소한 풍경을 시시콜콜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일까? 여하튼 내가 걸으면 나의 몸은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해 준다. 걸었던 길을 되돌아서 걸었다. 다시 약 4Km의 길, 오가는 길을 3시간쯤 걸은 셈이다. 제주의 한 부분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았다. (201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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