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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Apr 05. 2023

[순우의여행노트 14-1] 설렘의 출발

백두산 자생식물 탐사기(1)

  풀과 나무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어디에서건 나를 맞이하는 풀과 나무들의 모습이 항상 새롭고 독특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어딘가로 떠나는 우리 영월자원식물연구회의 탐사 여행이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더욱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먼 길을 달려가야 하기도 하지만 신비와 경이, 그리고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 바로 백두산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또 기대해왔던 탐사 여정은 초여름의 기운이 완연해지는 유월의 그믐날에 시작됐다. 자생식물 탐사. 우리 영월자생식물연구회에서는 이번의 여정을 ‘백두산 자생식물 탐사’라고 이름 지었다. 여정을 준비해준 여행사가 배포해준 안내문은 우리의 이번 여행을 ‘백두산야생화탐사’라고 적고 있다. 하기야 야생화라는 말이 다소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자생식물’이라는 표현보다는 더 살포시 마음에 와닿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보고 싶은 것은 야생화뿐이 아니었다. 야생화는 물론, 뭇 풀과 이끼, 숲과 나무들 모두가 우리가 눈여겨 살펴보고 싶은 대상이었다. 백두산에 자생하고 있는 갖가지의 생명체들, 그 산이 품어내고 있는 모든 것들을 모두 만나보고 싶었다.


  여행사의 안내문은 백두산 서문 산허리의 장백산장을 출발하여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마천루 봉우리 아래의 안벽에 이른 뒤, 서북부 산머리를 따라 청석봉, 백운봉, 녹명봉, 차일봉, 용문봉을 끼고 걷는 ‘백두산 종주 등반’ 경로를 소개하고 있다. 용문봉으로부터 시작되는 하산 길은 장백폭포가 있는 계곡 아래로 이어진 뒤 달문 쪽으로 되올라 걸어 소천지와 천지에 이르는 것으로 나와 있다. 직선거리로는 20리 정도에 불과한 거리지만 굴곡이 심한 산머리를 돌고 계곡의 비탈길을 오르내려야 하는 때문에 그 거리의 두 배쯤이 되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 도보 탐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앞서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먼저 하늘길로 연길까지 빗겨 날아오른 뒤, 거기에서 백두산 서편의 도보 탐사가 시작되는 곳까지는 다시 육로를 내달려야 한다. 오후 1시 반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2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장춘공항에 도착했다. 중국의 북경 표준시간이 한 시간 늦은 것을 감안하면 2시간이 채 안 걸린 셈이다. 약 1,000킬로미터의 거리를 날아온 것이다. 장춘에서는 연길까지 약 500킬로미터의 거리를 늦은 저녁 비행기로 다시 날았다. 1시간쯤의 시간이 걸렸다. 백두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제 연길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자동차로 약 300여 킬로미터의 길을 더 달려가야 한다. 연길에서 이도백하까지 250킬로미터,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백두산의 서쪽 산문 입구까지 70여 킬로미터를 달린다.

 

  개성과 평양을 거쳐 우리의 백두산 남쪽 아랫녘 혜산(惠山)에 당도했다면 그 거리는 500킬로미터를 크게 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북녘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길이기에 그리 먼 길을 돌아온 것이다. 하기야 시간으로 보면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으니 그리 큰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 자동차로 북녘 길을 달렸다면 아마도 그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한여름의 초입에 ‘긴 봄’, 장춘(長春)을 지나왔으니 무척이나 짧은 시간에 이곳 연길까지 온 셈이라고 해야 할까?

 

  좀 더 먼 길의 여행을 하는 덕분에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이국의 색다른 정취를 느끼기도 하고 우리의 것과는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산하는 녹색 푸르름 일색이다.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산 숲에는 녹음이 우거져있고, 들판엔 연둣빛 초여름의 물결이 흘러넘친다.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한 촌락과 마을의 정경이 고요하다. 한적하기만 한 풍경의 모습이 싫증이 느껴질 만큼 단조로워 보인다. 무서운 속도로 변화되고 있는 중국이라지만 농촌 지역의 모습은 모든 것들이 멈춰서 있는 듯 그저 한가롭게만 느껴진다.


  만주를 거쳐 북간도의 땅 연길까지 왔으니 어찌 솟구쳐 오르는 감흥이 없을 것인가. 한때 고구려의 옛 영화가 피어났던, 우리가 힘을 펼치고 번영의 노래를 불렀던 곳. 오래지 않은 과거, 병들고 가난했던 나라의 아픔과 망국의 회한을 안고 떠났던 수많은 동포의 애달픈 유민의 역사가 있는 곳. 동족상쟁의 파란만장 속에서 잊히어지다시피 한 근대사를 지켜본 북간도의 숨결을 호흡해볼 수 있는 곳. 이처럼 각별한 인연과 기구한 내력의 땅을 여행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의 북녘 강토를 통해 오르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 타국의 하늘과 땅을 거쳐 올라야 하는 ‘백두산자생식물탐사’의 아이러니가 그 기구함을 더해준다.


  우뚝한 곳에서 이런 사람들의 삶을 지켜본 백두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우리에겐 우리의 삶이 있듯이 그들에겐 그들의 삶이라는 것이 있겠지. 연길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 그곳으로 달려가면 이제 그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도백하로부터 시작하는 백두산 서녘 오름

  아침 7시에 연길(延吉)의 백산대하반점(白山大廈飯店)을 출발한 버스는 안도현(安圖縣), 신곡(新谷), 동청(東淸), 송강(松江)이라는 낯선 이름의 지명을 가진 곳들을 지나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 이도백하(二道白河)라는 이름의 변방 읍내로 들어선다.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훤칠한 키를 키운 소나무 숲 미인송림(美人松林)이다. 송풍과 다올이라는 두 선남선녀의 사랑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솔숲이 읍내 초입에 있다. 붉은 표피의 소나무들이 금강송을 닮았다.


  백두산 동편을 오르는 여행을 함경북도(현 양강도)의 삼지연(三池淵)으로부터 시작한다면 백두산의 서편을 오르는 여행은 중국 길림성의 이도백하로부터 시작된다. 천지(天池)의 물이 달문(達門)을 거쳐 빠져 내린 뒤 두 개의 흰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내리다 쉬었다 가는 곳인 이도백하. 만주 동북지역의 먼 변방에 자리한 작은 도시다.


  백두산의 서쪽 기슭 ‘서파(西陂)’를 오르는 여행이 이곳 이도백하에서 시작되는 것은 넓은 치마폭을 펼쳐낸 백두산 자락이 이곳까지 흘러내린 탓이다. 그것은 이제 이도백하를 지나면 백두산 방면으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다운 촌락이 더이상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백두산의 북쪽 북파를 오르는 여행도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도백하읍을 조금 벗어난 곳에 고려식당이라는 이름의 밥집이 있다. 11시 반쯤의 시각에 이 식당에 도착했다. 서파를 찾는 한국인 여행객이면 오가는 길에 누구나 한 번쯤은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옛날 시골의 고향에서와 같은 현지의 조선족 음식을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김치와 깍두기, 콩나물무침, 깻잎장아찌, 맨 손두부와 상추, 닭백숙과 근대국 따위 모두가 우리의 옛 맛 그대로다. 이곳 토산인 목이버섯볶음과 누릿대나물은 별미 중의 별미. 반주로 마시는 들쭉술은 그 색깔이 다홍빛이다.

 

  백두산도 식후경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부터가 칠월 초하루와 이틀 이틀간의 백두산 서녘을 탐사하는 여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일천 산 일만 멧부리’를 품어 안고 있다는 백두산. 백두산 연봉을 중심으로 삼지연으로부터 이곳 이도백하를 감싸 아우르는 백두고원의 면적은 약 30,000제곱킬로미터. 남한의 약 1/3쯤의 면적이 되는 넓이라고 할 수 있다. 9,000천 척이 넘는 백두산의 정확한 높이는 2,750미터다. 우리 탐사단은 만주벌과 한반도에서 가장 넓고도 높은 산의 서녘을 찾아 오르는 것이다.(2007.6.30)(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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