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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Apr 13. 2023

[순우의여행노트 14-2] 고산화원과 금강대협곡

백두산식물탐사기(2)

  서파 관문을 목적지로 해서 12시 정각에 출발한 버스는 한적한 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길은 잡목이 우거진 숲을 가르며 멀리 내달린다. 이내 숲이 두터워지며 깊은 산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녹음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초하의 북녘 숲 언저리에는 선홍의 붉은 꽃을 피운 붉은인가목(Rosa davurica Pall.,장미과)이 눈에 들어온다. 터리풀(Filipendula glaberrima (Nakai) Nakai, 장미과), 박새(Veratrum oxysepalum Turcz., 백합과), 분홍바늘꽃(Epilobium angustifolium L., 바늘꽃과), 우산나물(Syneilesis palmata (Thunb.) Maxim., 국화과), 금방망이(Senecio nemorensis L., 국화과), 은꿩의다리(Thalictrum actaefolium var. brevistylum Nakai, 미나리아재비과) 따위의 모습도 눈에 뜨인다. 중부지방의 높은 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길 어깨 가까운 곳 하늘 위쪽으로 붉은 색깔은 뿌리는 것은 날개하늘나리(Lilium dauricum KerGawl., 백합과), 등황(橙黃)의 색감이 느껴지는 또 다른 붉은 꽃송이들은 달고 있는 꽃은 털동자(Lychnis fulgens Fisch. ex Spreng. 석죽과) 일 것이다. 특히 백두산 특산식물의 하나인 날개하늘나리들이 활짝 벌린 가슴을 하늘을 향해 펼치고 있다. 백합과의 날개하늘나리는 일찍이 그 종자가 세계 화훼시장으로 유출되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원종으로 활용되었다.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는 원예종 백합류는 모두가 날개하늘나리로부터 그 속성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의 우리나라 화훼농가들은 많은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이들을 역수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황새풀(Eriophorum vaginatum L., 사초과)과 물속새(Equisetum fluviatile L., 속새과)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개다래나무(Actinidia polygama (Siebold & Zucc.) Planch. ex Maxim., 다래나무과)가 햇살이 찾아드는 길섶의 나무들을 타고 오르고 있다. 나무줄기에 걸린 잎새들이 흰빛, 때로는 분홍빛의 색다른 색깔을 띠고 있는 쥐다래나무(Actinidia kolomikta (Maxim. &Rupr.) Maxim., 다래나무과)는 더욱 쉽게 눈에 뜨인다.


   두 시간쯤의 긴 숲길을 달려 장백산(長白山)이라는 이름의 산문 입구에 들어서면서는 숲이 더욱 무성해진다. 이깔나무(Larix olgensis var. koreana (Nakai) Nakai, 소나무과), 자작나무(Betula platyphylla var. japonica (Miq.) Hara, 자작나무과), 전나무(Abies holophylla Maxim., 소나무과) 따위들이 어울려 키를 키우고 있다. 버스를 내려 산문에 이르는 널따란 가로에는 개회나무(Syringa reticulata var. mandshurica (Maxim.) Hara, 물푸레나무과)가 그 내음도 꽃 모양도 수수꽃다리를 닮은 꽃숭어리를 달고 있다. 꽃의 색깔이 하얀색 바탕에 선연한 연둣빛을 띠고 있다. 꼭 먼지떨이와 같은 모양의 꽃을 피운 녀석이 여기에도 있다. 나무가 아닌 풀꽃 터리풀이다. 연분홍 꽃 모습이 무척이나 화사하다.  

   

   산문 앞마당 오른편 산자락을 따라서는 키 큰 자작나무 무리가 가득하다. 백화수(白樺樹)라는 또 다른 말의 이름처럼 새하얀 표피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눈부시다. ‘WC’라는 큼직한 간판을 이고 있는 서문화장실은 자작나무숲으로 병풍을 두르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경의 화장실일 듯싶다.  

   

고산화원에서 터진 첫 번째 함성

   백두산 안길 산행은 있는 서문 광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서문 광장의 주차장을 출발한 산내(山內) 전기 셔틀버스는 우리 일행을 포함한 여행객들을 가득 태우고 완만한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서편의 고산 기슭을 종주하기 위해서는 내일 아침 이 길을 다시 올라야만 한다. 하지만 오늘은 아래쪽 산록의 고산화원(高山花園)과 금강대협곡(金剛大峽谷)을 찾아 오르는 것이다.  

   

   산문 광장 안에서 버스가 출발한 시각은 오후 2시 45분. 서둘러 먼길을 달려 백두산의 품 안을 찾아들었지만 해가 저물기 전에 되돌아 내려와야만 하기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10여 분쯤 울창한 숲길을 달려 오르자 왼편 산기슭에 들꽃이 가득 한 평평한 언덕이 나타난다. 수천 평 넓이의 고산화원이다. 한꺼번에 ‘와’하는 함성이 터진다. 산에 들어 모두가 함께 터뜨린 첫 번째 환성이다. 멀리 전나무와 이깔나무 숲을 뒤로하고 노랑과 자주, 하양의 색깔이 어우러진 꽃 무리가 야생의 화원을 만들고 있다. 차 안의 사람들은 술렁였지만 달리던 차는 멈추지 않고 길을 달린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달리기를 10여 분, 버스는 ‘장백산대협곡관문(長白山大峽谷關門)’이라고 쓰인 산문 앞에 우리 일행을 내려놓는다. 우리는 백두산이라고 부르지만, 중국 사람들은 이 산을 장백산(長白山)이라고 이름하고, 금강대협곡은 장백산대협곡(長白山大峽谷)이라고 부른다.

금강대협곡(장백산대협곡) 모습


   금강대협곡 답사는 나무판자와 각목으로 만들어진 보행 데크(Deck)의 난간을 따라 진행된다. 햇살이 찾아들기 어려울 정도로 두텁고 높게 자란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아직은 해가 지지 않은 낮시간이지만 나무 아래 숲은 벌써 어둑한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굵은 나무 둥치 사이사이의 공간에는 눈에 익지 않는 풀과 키 작은 나무들이 다투어 자라고 있다. 털쥐손이(Geranium eriostemon Fisher ex DC., 쥐손이풀과), 흰매발톱(Aquilegia buergeriana var. oxysepala (Trautv. & Meyer) Kitam., 미나리아재비과), 두루미(Maianthemum bifolium (L.) F.W.Schmidt, 백합과), 산꿩의다리(Thalictrum sachalinense Lecoy., 미나리아재비과), 흰땃딸기(Fragaria nipponica Makino, 장미과), 노랑매발톱(Aquilegia buergeriana var. oxusepala for. pallidiflora Nakai, 미나리아재비과), 나도옥잠화(Clintonia udensis Trautv. & C.A.Mey., 백합과), 금매화(Trollius ledebourii Rchb., 미나리아재비과) 따위의 들꽃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런데 지난번 답사 때는 오솔길 가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하는 큰방울새란(Pogonia japonica Rchb.f., 난초과)과 석송(Lycopodium clavatum L., 석송과)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보행 데크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훼손된 듯하다는 게회장님의 설명이다. 그래도 시야가 닿은 데까지 자세히 살펴보니 왜우산나물(Pleurospermum camtschaticum Hoffm., 산형과), 만년석송(Lycopodium obscurum L., 석송과), 개석송(Lycopodium annotinum L., 석송과) 따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마치 박쥐가 날개를 편 듯한 모습의 잎새를 가지고 있는 박쥐나물(Parasenecio auriculata var. matsumurana Nakai, 국화과)도 있다. 뱀톱(Lycopodium serratum Thunb., 석송과)이라는 색다른 이름의 풀과 귀여운 모습의 애기나리(Disporum smilacinum A.Gray, 백합과)도 있다. 눈개승마(Aruncus dioicus var. kamtschaticus (Maxim.) Hara, 장미과)도 꽃을 피우고 있고 작살나무(Callicarpa japonica Thunb., 마편초과), 두메닥나무(Daphne pseudomezerum var. koreana (Nakai) Hamaya, 팥꽃나무과)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300여 미터의 거리를 걸어 들어가자 하늘이 확 트이며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 건너편에 가파르게 뻗어 내린 능선과 이쪽의 또 다른 절벽과도 같은 산비탈 사이로 깊은 벼랑이 파여 있다. 금강대협곡이다. 두터운 화산재 표토가 오랜 세월 침식되면서 수십 미터 깊이의 협곡이 형성된 것이다. 현기증이 느껴질 만큼 가파른 계곡 아래로 흘러내리는 흰 물줄기가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인다. 깎아내린 듯 깊이 파인 양쪽 안벽이 서로 아주 가까워 협곡의 바닥이 더욱 깊어 보인다. 계곡 가까운 쪽에 들쭉과 월귤 (Vaccinium vitis-idaea L., 진달래과)의 모습, 그리고 멸종위기 Ⅱ급의 야생식물인 홍월귤(Arctous ruber (Rehder &E.H.Wilson) Nakai, 진달래과)의 모습도 보인다.     


   데크는 아슬아슬한 벼랑을 따라 아래로 이어져 있다. 난간 밖에는 뛰어나가 보듬어 안아보고 싶은 또 다른 풀꽃들이 지천이다. 좀 더 자세하게 지켜보고 살펴보고 싶지만, 시간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아쉬운 발길을 되돌리지 않을 수 없다. 되돌아 나오는 길 난간 밖에 문득 눈길을 붙잡는 것이 있다. 무슨 꽃일까하고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회장님께서 기생꽃(Trientalis europaea var. arctica (Fisch.) Ledeb., 앵초과)이라고 일러주신다. 멸종위기Ⅱ급의 보호종 중의 하나인 백두산 특산의 자생식물이다. 앵초과의 기생꽃은 넓은 피침형의 잎이 여러 장 윤생하며 그 가운데서 긴 꽃자루가 올라와 별 모양의 흰 꽃 딱 한 송이만을 피운다. 그간에 도감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 꽃 한 송이를 실물로 본 것만으로도 오늘의 백두산 식물탐사는 충분한 성과를 거둔 것 같다고 회장님께서는 무척이나 만족해하신다. 그 길에서는 다람쥐꼬리(Lycopodium chinense H.Christ, 석송과)를 만나볼 수 있는 각별한 기쁨을 갖기도 했다.

기생꽃


   대협곡 데크 워킹을 마치고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다 그 어디쯤엔가 차가 멈춰 선다. 그곳은 길을 오르며 탄성을 자아냈던 자연의 꽃밭, 고산화원(高山花園)이다. 차에서 내려 모두 화원 쪽으로 몰려간다. 때마침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큰원추리(Hemerocallis middendorffii Trautv. &C.A.Mey., 백합과)와 꽃창포(Iris ensata var. spontanea (Makino) Nakai, 붓꽃과)가 한데 아울려 부드러운 물결을 이루고 있다. 곳곳에 흰 무리를 이루는 것은 아마도 바이칼꿩의다리(Thalictrum baicalense Turcz., 미나리아재비과)일 것이다. 목책이 화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고 있어 더이상 가깝게는 다가갈 수가 없다.

      

   꽃이 펼쳐진 야생의 들을 감싸고 있는 전나무와 이깔나무 숲이 산기슭 멀리에서 시작된다. 녹색의 바탕 위에 노랑과 보라, 그리고 하양의 수수한 조화가 천상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 이미 햇살이 도망간 늦은 오후의 들판은 더욱 선연한 색감의 꽃 빛으로 조용히 침묵하고 있다. 이곳의 산야에서는 세상의 처음 순간부터 있어 온 것만 같은 순수함이 묻어난다.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한 폭의 담채화(淡彩畵)를 눈에 담았다. 역시 이곳에

서도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되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정해진 시간 전에 산문을 나가려면 시간을 더 지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산화원의 모습(큰원추리와 꽃창포 무리)


   이른 아침부터 많이도 달려왔고 서둘러 길을 걸었던 하루. 길게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쉬움이 많았던 첫날의 여장을 푼 곳은 서문이 있는 곳에서 산 아래쪽으로 버스로 30분쯤의 거리에 있는 장백산항혜여유도가촌(長白山恒惠旅遊渡假村)이다. 중앙을 광장으로 두고 디귿 자 모양으로 건물이 배치된 유숙소다. 모두가 단층 건물. 중앙에 있는 건물이 잠을 자는 객실이 있고 양쪽으로 널따란 홀이 있는 식당과 토산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큼직한 매점이 있다.


   함께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면서는 모두가 디데이의 일정이라고 할 수 있는 내일의 서파 오름과 종주 산행에 관한 이야기 일색이다. 모두의 기대와 기다림이 크고도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백두산을 찾았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지만 서파에서 북파에 이르는 도보 산행은 모두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루종일을 걸어야만 하는 먼길을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날씨 걱정도 만만치 않다. 모두가 내일의 날씨가 좋기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하기로 했다.


   저녁을 마친 일행들은 내일 새벽의 이른 출발을 염두에 둔 듯 모두가 서둘러 각자의 방을 찾았다. 바뀐 잠자리,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 쉽게 잠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07.7.1.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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