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진주문고 상주작가 프로그램에서 썼던 엽편소설
인테리어 소품 가게에 라벤더 향이 은은하게 퍼져있었다. 나는 아기자기한 고양이 도자기 인형들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약에 발린 인형은 반짝반짝했다. 동기는 옆에서 귀엽다고 비명을 질렀다. 이게 그렇게 귀여운가 싶어 고양이 인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양새가 귀엽다기보단,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앞발 두 개를 번쩍 든 검은 고양이, 다리 한쪽을 들고 그루밍하는 삼색 고양이. 나머지 인형들도 저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며 지나가는 손님을 유혹했다. ‘나를 데려가’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언젠가 책상에서 밀려 방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버려질 운명은 모르는 눈치였다. 시간이 아까웠다. 점심시간의 절반을 이런 데 쓰다니 괜히 귀찮아졌다. 원래는 조용히 밥 먹고 쉬고 싶었는데. 동기 덕분에 그럴 틈이 없었다. 나는 마지못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쓸만한 물건이 있는지 둘러봤다. 동기는 나를 툭툭 치며 물어봤다.
"지현 씨, 뭐 살까요?"
한 손에는 검은 고양이, 한 손에는 삼색 고양이 작은 도자기 인형을 들고 나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나에게 찰싹 붙어서 뭘 사야 하냐고 물어봐서, 처음엔 성의껏 대답했지만 귀찮아졌다. 눈에 띄는 걸 짚어 '이거, 괜찮네요'라고만 반복했다. 고민하는 척하고 검은 고양이 인형을 골랐다. 이유는 없고 그냥 검은색에 눈이 가서 골랐다. 이건 동기가 좋아할 만한 인형은 아니었다. 귀엽고 색깔이 다양한 걸 좋아하는 동기는 자신의 회사 책상 위에 작은 인형들을 올려놓는다. 아담하고 날씬한 그녀는 옷차림도 화려했다. 밝고 개성 있는 성격이 낯설기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 동기는 나와 그녀밖에 없어서 서로를 의지했었다. 상대방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기는 자주 흔들렸고, 신경을 쓰지 말라고 다독였다. 저런 민감한 모습이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지만, 선배들과 있자니 불편해서 동기와 있는 편이 편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피곤해졌다. 동기는 삼색 고양이를 내려놓고 계산대로 가면서 말했다.
"검은색이 딱 지현씨 같아. 어제도 검은색~ 오늘도 검은색~“
동기는 누구 앞에서든 뒤에서든 욕을 못 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 밝은 목소리가 어쩐지 비꼬듯 들렸다. 어이없었다. 옷장 열면 대부분이 검정 옷인 걸 어쩌라고. 옷을 사러 갔을 때도 눈에 들어오는 건 검은색밖에 없었다. 검은색은 편안했고, 드러나지 않아 좋았다. 갑자기 전 남자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넌 너무 칙칙해'
그가 헤어지면서 나에게 남긴 말. 며칠 후 나는 충동적으로 하늘거리는 핑크색 셔츠를 사보았다. 잘 어울린다는 직원의 말과 달리 밝은색이 이렇게나 어색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도 옷을 사고 집에서 입어봤는데 밝은 색깔에 발가벗는 기분이었다. 결국 검은색 옷으로 돌아갔다. 가슴이 답답해서 크게 심호흡하고, 가게 밖으로 나가 동기를 기다렸다. 평일인데도 사람은 많았다. 팔짱을 끼며 웃는 커플, 쉴 새 없이 떠드는 학생들, 말없이 천천히 걸어가는 노부부. 웃음소리와 목소리들이 뒤섞여 나의 머릿속을 긁었다. 어질어질했다. 일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뒤통수가 당겨오고, 피곤해져서 잠깐 두 눈 감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동기가 나왔다.
"자 여기 이쁜 삼색 고양이 데려가세요."
동기는 히죽 웃으며 내 손에 삼색 고양이 인형을 쥐여줬다. 내가 고르지 않았던 고양이 인형이었다. 도자기 인형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쓸데없이 반짝반짝했다. 동기는 내 팔에 팔짱을 끼고 회사로 돌아가자고 했다. 다행히 점심시간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마치 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회사로 돌아가는 게 반가웠던 건 처음이었다. 동기는 어디서 많이 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건물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검은 고양이 인형을 바라보다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웃었다.
”검은 고양이 보면 침착한 지현씨 생각날 것 같아요.“
동기는 배를 감싸며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갔다.
"지현씨! 나 화장실 갈게요. 먼저 들어가요!"
살짝 더워지면서 머리가 간지러웠다. 새치가 나면 머리가 간지러워진다는데 그것 때문인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서둘러 사무실을 향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