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청소부의 하루

무엇이든 깨끗하게 해드립니다.

by 만자

일요일 새벽 2시 30분 약속 시간은 3시이다.

의뢰인이 불안한지, 약속 시간에 맞춰서 온다고 해도 안절부절못하길래 일부러 일찍 움직인다. 피곤하지만, 일이 끊기는 거보단 낫지. 봉고차에 몸을 싣고 가다가 깜빡 졸았더니 목이 뻐근했다. 평범한 호텔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으리으리했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들어가니 정장에 선글라스 쓴 남자가 방까지 나를 안내했다. 데스크에는 직원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방에 들어간 뒤, 마스크, 고글, 모자까지 착용하고 라텍스 장갑을 꼈다. 모든 준비는 마쳤다. 나의 흔적은 남기지 않는 편이 좋다. 거실이 넓어서 청소가 제법 걸릴 것 같다. 거실 바닥은 얼룩진 피가 고여있었고, 살점인지 핏덩이인지 모를 게 들러붙어 있었다. 벽을 보니 무엇을 적은 건지 알 수 없는 문장이 쭉 적혀 있었다. 의뢰를 받을 때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내가 “누구를 어떻게 죽였나요? 익사? 과다 출혈?”이라고 묻겠나. 명줄 짧아지기 싫어서 작업에 관한 이야기만 듣고 끊는다. 아무리 비위가 좋아도 냄새는 늘 견디기가 힘들었다. 마스크를 쓰면 피 냄새가 덜 나지만 그래도 힘들다. 오늘은 좀 추워서 다행이지 여름에는…

아 처음 일했던 날이 생각나네. 그날은 화장실에서 몇 번이나 토했는지, 마지막에는 장기까지 입 밖으로 나오는 줄 알았다. 선임은 나의 등을 두드리며 그럴 줄 알았다고 말했다. 선임은 내가 청소부 일을 한 지 3개월 후에 그만뒀다. 그나저나 그 선임은 잘 지낼까? 연락처도 못 물어봤다. 아니 안 물어봤다가 맞는 말이지. 우린 서로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일을 하기 전 나는 돈을 주식으로 날려 먹고 빚이 몇억 생겼다. 못 갚으면 난 죽는다. 어떻게든 갚으려고 주말까지 일을 했지만 결국 무서운 형님들에게 붙잡혔다. 곧 죽겠구나! 눈을 질끈 감는 순간, 무서운 사람들 사이에 있던 누군가가 청소부 일을 하면 빚을 절반 이상 감면해 주겠다고 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수락했다. 그때 나는 두 다리와 벽돌 몇 개가 내 몸에 묶여있었다. 바다는 어두워서 검은 물처럼 보였다. 나는 배 끝에서 무서운 형님의 손에 매달려 있었다. 만약 거절했다면 바다 어딘가 뼈만 남아 있었겠지. 다시 생각해도 소름 돋는 순간이었다.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카메라를 모자에 달아 의뢰인이 청소 장면을 직접 볼 수 있게 해놨다. 아무래도 지금 하려는 작업은 신뢰가 생명이다. 말보단 영상이 낫다. 직접 보여줘야 믿는다. 영상은 의뢰인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덕분에 나는 허튼짓 못 하고 청소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 작업은 의뢰인과 내가 무덤까지 끌고 가야 하는 비밀이다. 구석구석 묻어있는 피와 끼어있는 살점은 들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살펴봐야 한다. 열심히 바닥 청소를 하고 있는데 책상 바퀴에 살점이 하나 붙어 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심호흡하고 다시 집중했다. 이 살점이 몇 시간 전에는 살아있는 인간이었겠지. 생각해 보니 좀 불쌍하지만 일은 일이고 희생자는 어쩔 수 없다. 청소를 계속하다 보니 머리카락이 제법 있었다. 짧은 걸 봐서는 남자 같아 보인다. 청소일을 할 때마다 소름 끼친다. 그 형님 말씀으로는 요즘 악마 소환이나 누군가를 저주하려는 목적으로 사람을 제물로 쓴단다. 미친 세상 같다. 이 호텔 어딘가에 파티를 연다고 한다. 그곳에서 이 방으로 사람을 유인한 다음 죽인다고 한다. 그래서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다음 희생자가 누군지 몰라도,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청소나 열심히 해야지.

곧 있으면 청소일을 시작한 지 1년이다. 일에 익숙해질 무렵 하루는 목공소에 구경하러 갔는데 누가 다쳐서 소란이 났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고 봉합만 했다. 피가 조금 튀었는지 지인의 옷과 목공소 바닥에도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피 빼는 법을 알려주고 목공소 청소를 도와주는데, 내가 청소하는 걸 보고 직업이 그쪽이냐고 물었다. 왜 청소를 잘하면 직업을 그쪽으로 생각하시는지…. 내가 하는 청소는 다르다. 뭐라 말하기가 애매해서 청소 좋아한다고 대충 넘겼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청소하고 보니 새벽빛이 옅게 피어있었다. 곧 해가 뜰 시간이다. 청소를 다 끝내고 새 장갑으로 갈아끼고 거실을 훑어봤다. 바닥에 카드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주민등록증이었다. 피가 묻은 걸 보니 이번 희생자 같아 보인다. 어쩌다 참혹하게 당하셨나요. 혼자서 ‘쯧쯧’거리고 챙겨놨다. 청소를 끝내고 밖에 서 있는 검은 정장의 남자에게 떨어진 주민등록증을 드렸다. 호텔을 나서려는데 핸드폰을 보던 데스크의 직원이 힐긋 쳐다보고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반응을 보아하니 내가 왔다 갔다 하는 이유를 아는 건지 애써 무시하셨다. 서로 알아봤자 좋을 건 없지. 봉고차에 타자마자 하나하나 다 벗어서 준비된 비닐봉지에 버렸다. 날씨가 풀려서 다행이지 한 여름이었으면 아마 그 자리에 두 번째 희생자가 될 뻔했다. 차를 타고 목적지에 내린 후 옷에 냄새를 맡아보았다. 작업복을 벗었는데도 여전히 피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재빨리 집으로 뛰어갔다.

피곤해 죽겠다. 도착하니 해가 떠있었다. 씻고, 세탁기 돌리고 한숨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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