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이 형태를 바꿀 때
교대근무를 하면서 힘든 점은 분명하다. 수면 패턴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 약속이나 일정을 잡을 때 늘 제약이 따른다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몸이 힘든 이유들이다. 피곤하면 쉬면 되고, 약속이 깨지면 다시 맞추면 된다. 하지만 교대근무에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힘들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야간근무를 나오는 날이면 아내는 밤새 집에 혼자 남는다. 그 사실이 늘 마음에 걸린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갑자기 아프면, 갑자기 무서운 일이 생기면, 그때 내가 옆에 없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 집에 불은 잘 껐는지, 문은 잘 잠갔는지, 괜히 의미 없는 생각들까지 이어진다.
몸이 힘든 일은 버틸 수 있다. 잠을 조금 줄이고, 쉬는 날을 잘 쓰면 된다. 하지만 마음이 힘든 일에는 딱히 해결 방법이 없다. 나는 계속 미안해하고, 아내는 그걸 이해해 준다. 그게 전부다. 그 이해를 빌미로 나는 또 다음 야간근무를 나간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는 시간이 될 때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잠들기 전,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도 괜찮았다. 오늘 뭐 먹었는지, 지금은 누워 있는지, 별 의미 없는 질문들이 오갔다. 목소리만 들어도 조금 덜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는 확인 같았다.
그러다 최근 부서를 옮기게 되면서 전화하는 일도 쉽지 않아 졌다. 휴대폰을 꺼내볼 수 없는 부서였다. 연락을 할 수 없다는 상황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선택이었던 연락이, 갑자기 불가능한 일이 되자 그 빈자리가 더 또렷해졌다.
처음에는 손목에 찬 작은 스마트워치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작은 화면에 두꺼운 손가락으로 문자를 하나하나 눌러 보냈다. 짧은 말만 오갔다.
“지금 들어가.”
“잘 자.”
그마저도 쉽지 않은 날도 있었다. 답장이 늦어질 때면 괜히 마음이 먼저 조급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음성으로 문자를 보내는 기능을 알게 됐다. 손으로 꾸역꾸역 보내는 것보다 훨씬 편했고, 조금 더 많은 말을 담을 수 있었다. 속도를 줄이고, 말을 고르며 짧은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주변 소음을 피해 낮은 목소리로, 조심히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문자를 주고받던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연애 초반으로 돌아간 것 같아.”
장거리 연애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각자 본가에서 부모님이 주무실 때, 불을 끄고 이불속에서 휴대폰만 바라보며 조용히 문자를 주고받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땐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고, 나는 늘 미안해했다. 아내는 그 시간을 풋풋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같은 상황인데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미안했고, 아내는 그 안에서 다시 설렘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때 알게 됐다. 미안함은 없어지지 않지만 형태는 바뀔 수 있다는 걸. 목소리 대신 문자로, 전화 대신 짧은 음성으로, 함께 있지 못해도 연결되는 방법은 계속 생겨난다.
교대근무는 여전히 힘들다. 아내는 여전히 혼자 잠든다. 나는 여전히 미안하다. 하지만 그 미안함이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조심하게 만들고, 더 자주 마음을 건네게 한다.
우리는 완벽한 시간을 살지는 못하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위해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 이 방식이 우리에게는 최선이라는 걸 조용히 받아들이면서. 미안함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 미안함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더 자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