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동인 May 21. 2024

진돗개와 싸웠다 7화

작전상 후퇴

진돌이와 나는 서로 철천지 원수처럼 지내고 있었지만 녀석이 우리 집에 오기 전에도 집을 지키던 선임 개가 있었다. 마치 삽살개처럼 눈을 가릴 정도로 털이 많은 개였는데 삽살개만큼 큰 편은 아니었고 마르티스보다는 덩치가 훨씬 크지만 진돌이 보다는  작은 개였다 보통 개들처럼 친화력도 좋고 사람을 구별할 줄 아는 아주 똑똑하면서 집도 잘 지키는 개였기에 그 녀석과는 주인네들 못지않게 나하고도 무척 친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댁이 개농장을 하고 있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그 개를 시골로 보내고 진돌이를 데리고 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별생각 없이 녀석과 친해지기 위해서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자~슥이 자기 건들지 말라고 으르렁 거렸다.
나는 그때까지만 하여도 진돗개의 특성을 전혀 몰랐었기 때문에 녀석이 으르렁 거리자 괘씸한 마음에 으르렁 거리지 말라고 아주 가볍게 알밤을 콩!~하고 먹였다고 그때부터 나를 철천지 원수로 생각을 하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진돗개들 중에는 자기 주인네 식구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적대감을 품는 개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진돌이가 바로 그런 개였다.

문제는 녀석이 전생에 여우로 살다가 개로 환생했는지는 몰라도 잔머리 굴리는 데는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아니? 어떻게 개가 사람들처럼"할리웃 액션"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녀석은 자기가 어느 때 어느 행동을 해야 나를 이길 수 있는지 이미 터득한 것 같았다.
주인네 식구들이 집에 없을 때는 나에게 꼼짝도 못 하던 녀석이 주인이 집에 있을 때는 기고만장해서 인간인 나를 이기려고 하다가 녀석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데굴데굴 구르면서 동네가 떠나갈 듯이 큰소리로 비명을 질러댔다.

진돌이 녀석이 "할리웃 액션"을 하는 것을 전혀 몰랐던 주인은 내가 자기 집 개를  학대하는 인간으로 보였을 것이고 나를 아주 못된 인간이라고 낙인을 찍었던 것이다.
진돌이 녀석은 주인네 식구들 앞에서는 얼마나 아양을 떠는지 눈꼴이 사나워 도저히 볼 수가 없을 정도다. 몸통이 꼬리를 흔드는 건지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 대는지 모를 정도로 땅에 배를 깔고 엉덩이를 있는 대로 씰룩거리며 트위스트를 추어대는데 그것도 모자라 덩치도 큰 녀석이 마치 작은 애완견들처럼 발라당 뒤집어지며 아양을 떤다.

개가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발라당 뒤집는 행동을 하는 것은 주인에게 절대복종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주인네 식구들 눈에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개를 왜 내가 그토록 괴롭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아무리 나의 정당성을 설명해도 쇠귀에 경읽기다.
이제 나는 진돌이로 말미암아 주인네 식구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양쪽 진영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나머지 그만 나의 머리 꼭대기에 원형 탈모증이 생기고  말았는데 평수가 점점 넓어지더니 급기야는 무허가 헬기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머리를 깜을 때마다 우수수 빠지는 나의 머리카락들을 붙잡고 절규하며 분노에 몸을 떨었지만 그때로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인간으로서 정말 정말 자존심 상하지만 녀석에게 항복을 하기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개와 싸우다가 백기투항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이니 어떡하겠는가?
주인식구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는 진돌이를 홀홀 단신인 내가 이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퇴근 후, 녀석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사가지고 집 앞에 당도했지만 나의 발은 이미 무거운 쇳덩이를 달아 놓은 것처럼 대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한낮 미물에 지나지 않는 개에게 두 손 들고 백기 투항을 해야 한다니... 나는 결코 개에게 항복을 할 수 없다. 단지 지금은 작전상 후퇴를 할 뿐이다.
명장은 전쟁에서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한 후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역시나 녀석은 또 쏜살같이 자기 집에서 튀어나와 왕왕 짖어대며 물곳을 찾고 있었다.

그런 진돌이에게 나는 부처님 같은 온화한 미소를 띠며(물론 속에서는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맛있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햄버거를 내밀었더니 먹을 것을 본 진돌이 녀석은 짖는 것을 잠시 멈추고는 햄버거를 아주 맛있게 받아먹는다.
그런 진돌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아주 아주 비굴한 표정으로 진돌이에게 사정을 하였다.
진돌아... 지난번 내가 너를 죽게 팬 것은 정말 정말 미안하다. 아무려면 내가 너 잘되라고 팼지 네가 미워서 팼겠냐? 너를 때린 것은 엄연히 사랑의 매였단다...(사랑의 매는 무슨...)

그러니 이제 우리 그만 화해하고 지금부터는 잘 지내보자꾸나. 그러면 내가 매일 너에게 맛있는 것 많이 사다주마. 그러나 녀석은 맛있는 것 먹는데 말 시키지 말라고 으르렁댈 뿐이다. 나는  또다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이미 무허가 헬기장이 되어버린 내 머리를 녀석에게 보여주었다. 진돌아... 보이니? 너 때문에 내가 하도 스트레스받아서 머리털이 몽땅 빠졌다는 것을...
너 때문에 내 머리가 무허가 헬기장이 되고 말았는데 지나가던 헬기가 착륙장인줄 알고 푸득푸득 거리고  내려오면 어떡하다냐?
그러니 이제 제발 화 풀고 이번 한 번만 봐주라...
그렇게, 나는 개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인간이 되었고 개에게 졌으니 결국 "개만도 못한 놈"이 되었다. 으~흑!~

이전 06화 진돗개와 싸웠다 6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