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감정은 신기루일 뿐이다.
퇴근 후, 나와 상무는 인근 주점에서 소주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아침에 매장에서 상무의 멱살을 잡고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난 후여서 그런지 그때는 화가 많이 풀린 상태였다. 술잔을 앞에 들고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지만 상무는 나의 시선을 피하며 소주를 마셨다. 성이 박 씨여서 나는 그를 박상무라고 불렀다.
박상무!~~ 앞으로 은영이와 어떻게 할 것인지 내게 말 좀 해 보시게.
나의 차가운 말투에 박상무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주 한잔을 벌컥 마시더니 잔을 탁!~하고 내려놓았다.
형님!~왜 여자관리를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의 말투는 왜 내가 여자 하나 못 잡아서 자기에게 오게 만들었냐는 원망 섞인 말이었다.
상무의 말을 듣자 한 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것은 마치 물건을 훔친 도둑이 도둑맞은 사람에게 왜 물건을 허술하게
두었냐는 것과 같은 말로 내 귀에 들렸다. 상무의 말을 듣자 마시던 소주를 그의 면상에 뿌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박상무!~~ 내가 왜 여자관리를 하지 않았냐고? 너 인마!!~~ 그게 할 소리야!!~~
그때부터 나보다 두 살 아래인 그에게 더 이상 존칭은 쓰지 않았고 다시 높아진 나의 언성에 박상무는 잠깐 움찔하더니 목소리 톤을 낮추었다.
아니... 형님... 제 말은... 은영이가 다른 남자에게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잘해주셨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은영이와 결혼할 사이도 아니라면서요? 그럼 제가 좀 만나도 되는 것 아닙니까?
그의 말은 어차피 나와 은영이가 결혼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자기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을 주었냐는 투였다. 한 마디로 박상무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잘 못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인마!!~~~ 비록 은영이와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결혼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했던 여자야. 그런 여자를 다른 남자도 아닌 유부남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불행해지는 것을 보고 있어야겠냐? 너 같으면 가만있겠니? 에라이!!~~ 천하의 나쁜 놈아!!~~~
나의 꾸짖는 듯한 말에 박상무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아니요!~~ 형님!~저 은영이 정말 좋아합니다!~~ 제가 너무 어릴 때 철 없이 일찍 결혼해서 지금 살고 있는 아내와는 그 어떤 애정도 없고요 그저 아이들 때문에 마지못해 살고 있는데 그날, 은영이를 보고 홀딱 반했습니다. 성격도 명랑하고 이쁘고 몸매도 그렇게 좋은데 반하지 않을 남자가 어딨겠습니까? 그런 은영이와 형님이 결혼하지 않을 사이란 말을 듣고는 그녀와 재혼하고 싶었습니다. 형님이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나요?
박상무의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런 젠장... 은영이를 정말로 좋아한단
말이지... 나는 들고 있던 소주잔을 벌컥 원샷을 하고는 탁자에 내려놓고 박상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은영이 참 매력적인 여자지... 근데 씀씀이가 너무 헤픈 여자라서 가진 게 워낙 없는 나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어 이별을 결심했지만 좋은 남자를 다시 만나길 바랐지. 근데 하필이면 박상무 같은 유부남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네.
그것도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말이지... 이래서 세상은 참 요지경이더군.
박상무!~내 말 잘 들어!~~ 은영이는 비록 매력적인 여자이지만 네 아이들을 키우면서 잘 살 수 있는 여자는 아니야. 또 그녀 어머니가 무남독녀인 자기 딸이 총각도 아닌 유부남과 결혼하라고 허락해 줄 사람도 아니고 은영이는 그런 완고한 엄마의 명령을 거역할 정도로 그렇게 심기가 굳은 여자도 아니고 말이지.
남녀사이는 처음 만났을 때 그 감정이 영원히 갈 것 같지만 그건 허상에 불과한 거야. 나도 처음에는 은영이와 결혼까지 생각했었지만 현실에 부닥쳐보니 그 감정이 오래가진 않더군.
박 상무가 은영이에 대해 갖고 있는 그 감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야.
은영이를 정말 사랑하고 결혼할 마음이 있다면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겠지. 그럴 자신 있냐? 정말 지금까지 살아온 아내와 헤어지고 아이들에게 큰 상처까지 남기면서 더구나 은영이 어머님의 완강한 반대까지 극복하면서까지 은영이와 결혼할 자신이 있는가 묻겠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은영이와는 이쯤에서 정리해라.
나의 단호한 말에 박상무는 말없이 소주잔만 들이켰다. 우린 그렇게 떡이 되도록 새벽까지 술을 퍼 마신 후 헤어졌고 그것으로 박상무와 은영이의 풋사랑은 종지부를 찍었다.
나는 지금도 남녀 간의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들의 장난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호르몬들의 유효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 기간이 지나면 그렇게 이쁘고 매력적으로만 보였던 여자, 혹은 남자가 성질 더럽고 공감 능력도 떨어지면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목숨 바쳐 사랑했던 연인들이 그 호르몬들의 유효기간이 지난 후에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서 헤어지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보게 된다. 그래서 결혼을 하려면 상대방과 너무 오래 연애하지 말고 호르몬들의 유효기간인 2~3년 안에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10년을 연애하고도 결혼했다는 커플들도 있지만 그것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것과 특별한 것은 구분하기 바란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연애는 이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