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밥

by 호윤 우인순 시인

인디언 공주 2(노란 밥)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우리 반 학생들보다 2살이나 어리고

아니면 다섯 살까지 차이가 났다(그 시절에는

애기를 업고 학교 오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삐약이라고 놀이에 잘 끼어주질 않았다

거기다가 성격도 누구랑 빨리 사귀거나

직접 가서 손을 내미는 성격이 아니라서

하루 종일 말없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웃고 박수를 치곤 했다


그러면 가끔 고무줄놀이나 망까기, 말타기를 시켜주면서 다칠까 봐 보호를 해주고는 그랬다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학교에 오셨다

아무래도 여섯 살 내가 걱정이 된 것 같았다

공부는 그런대로 잘 따라가지만 나이 차이라는 게 참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가만히 내가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아이들 틈에 끼어 노는 걸 보시더니

다음 날 서울 갔다 오실 때 늘 사 오시는

오꼬시랑 전병 , 누가 사탕, 그리고 큰 왕 눈깔사탕을 차에 싣고 오셔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학교 갈 때는 늘 누가 사탕을 주셨다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그 사탕 덕분에 나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먹었는데

1960년데 시절 반찬은 노란 단무지(그때는 다꽝이라 불렀다), 밥 위에 계란 프라이를 올려주고

무장아찌 무침, 두부조림, 튀김볶음, 콩장, 멸치볶음등이고 들기름 바르고 소금 뿌려서 구워 자른 김과 유리병에 김치도 담아 주었다

가끔씩은 뱅어포에 고추장양념해서 구운걸

잘라서 싸주면 친구들이 너무 좋아했다


그중 친구들에게 가장인기 있는 반찬이

소고기 장조림과 계란이었다

나는 그때 강원도에서 살다가

전학을 온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그 아이는 늘 노란 밥을 싸왔다

나는 참 신기해서 내 도시락과 노란 밥을

바꾸어 먹었다 그 친구는 하얀 쌀밥을

너무 좋아해서 가끔 나한테 특식도

가져다주었다

그 친구네 집엘 가면 가마솥에 옥수수 밥도 있고 감자밥도 있고 너무 맛있었다


또 잊을 수 없는 맛있는 것이 있었다

그 시절은 겨울에 조개탄을 가득 넣은 난로에 불을 피워서 교실을 따뚯하게 했는데

그때 우리의 도시락은 양철 도시락이어서

난로 위에 올려놓으면

밥이 누룽지로 되면서 구수한 냄새가 난다


어느 날은 도시락에 김치를 쫑쫑 썰고 참기름도 뿌리고 고기도 작게 썰어 깔아

밥을 올려서 도시락을 싸주었는데

난로 밑에 놓으면, 수업시간에 맛있는 냄새가 난다

쉬는 시간에 언니와 형들이 꺼내서

골고루 섞어서 먹으면 정말 맛있는 비빔밥이라서

그건 우리 반 대인기였다

그렇게 싸주는 날엔 나는 유모엄마한테

애교를 부려서 도시락을 셋을 가져간다

아이들은 내가 셋을 싸왔다고 난리다

그건 점심시간 전에 친구들이 내 도시락을

다 나누어 먹었기에 인기가 최고이다

나도 한 숟가락 얻어먹으면 너무 꿀맛이다

그리곤 그날 내 점심은

구순한 옥수수 죽을 먹는 날이다

친구들이 자기 죽을 나한테 덜어서 주기 때문이다


점심시간도 전에

급식실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아이들과 가보니 노랗게 생긴 죽이었다

옥수수죽이다 맛을 본 뒤로는

죽만 보아도 신이 났다


점심시간이면 그렇게 맛있는 옥수수죽을

모든 학생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선택한 아이에게 만 준다

나는 그 죽이 먹고 싶어서 내 도시락 하고

바꾸어 먹었다 지금도 아프거나 하면

그때 먹은 옥수수 죽이 그립다


내가 성장한 이후에도 그리워 옥수수를 갈아 죽을 쑤어보았는데 맛이 영 달랐다

나는 요리를 하는 게 취미인데

옥수수 죽과 졸업할 때쯤 먹던

노란 옥수수 빵은 아무리 해보아도 그 맛이 아니다 제과점 모두를 뒤져도

그 시절 옥수수 빵은 나오지를 않았다


그 시절 학교가 끝나고 집엘가면

유모엄마나 이모님한테 노란 밥 좀 해달라고 졸랐지만 시골을 떠나 서울 올 때까지, 노란 밥은 해주지를 않아서 먹어보지를 못 했다


나의 복장은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갈 때도 늘 멜빵바지에 멜빵치마였다

어쩌다 외국 갔다 오는 할아버지 제자들이

사다 주는 층층이 치마나 원피스를 가끔 입고 갔지만 늘 뛰어다니고 노는데 끼어서

흙을 만지고 놀아서인지

멜빵바지를 입혀주었다

바뀌는 건 멜빵바지 속에 티셔츠였다


집에서 재봉틀로 만들어주는 옷이니

별 장식이라든 모양이 없이 늘 검정이나

짙은 파랑이나 짙은 녹색듵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긴 멜빵치마가

좋아졌다 청소년이 되어서도

이십 대가 되어도 멜빵치마를 입고 다녔다

멜빵치마 앞에 큰 주머니 두 개가

나를 참 편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도 거기다 필요한 것들을

다 넣으면 급할 땐 엄청 좋았다

대학을 다닐 땐 미대친구들이랑 스케치 여행을 갈 때도 청멜빵 치마였다

치마 앞 큰 주머니 속에 지우개도 있고

연필도 넣고 스케치를 하니 너무 좋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멜빵치마를 자주 입었다

주방에서 일할 때 요즘도 앞치마 대신

즐겨 입는다

결혼을 하고 새댁이 되어서

내가 밥을 하게 되니 직접 내 마음대로

요리를 할 수가 있었다

집들이를 어른들이 온다고 날을 잡았다

나는 멜빵치마를 입고 내가 그토록

맛있어하던 노란 밥을 하고 돈가스와 샐러드, 각종나물에 , 잘 보이려고 오색수제비를 조금 해서 곁들여 상을 차렸다


제일 먼저 제일 무서운 시고모님이

상을 보더니 "아니 이건 새 밥 아니야

자네 내가 새로 보이나?

이건 뭐야 죽이잖아 보릿고개 넘기면서

죽도록 먹은 죽을 쑤어서 대접을 한다고

자네 날 어찌 보고 이러는가?"

하더니 나가 버렸다


모두 안색이 변해 다 가고

시아버님만 아가야! 특식을 했구먼

애썼다 요즘은 수제비가 특식인데

몰라 그런다, 다음에 다시 모시자

우리 집 가족은 시골 출신들이라서

소갈비 돼지갈비와 하얀 쌀밥을 좋아한단다"

하시며 수제비를 한 그릇 다 드시고 일어나셨다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났다


나 혼자 노란 밥을 열무김치와 먹었다

그렇게 맛있던 노란 밥이 별로 맛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노란 밥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것이 새가 먹는 좁쌀이라는 걸 그때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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