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5
2023년 3월 15일. 7시 40분까지 죽전 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집에서 6시 20분에 출발했다. 직접 운전을 해서 가다 보니 어두웠던 하늘이 점차 밝아지고 있었다. 의왕에서 분당으로 넘어가는 안양 판교로 고개 위. 그 짧은 순간, 갑작스럽게 시야에 들어온 여명의 하늘은 그야말로 시적이었다. 흐릿한 회색 빛깔의 하늘과 구름 사이로 붉은 기운이 살짝 드리워진 모습에 감성돋는 그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안 되는 걸 알고, 되는 걸 아는 거…세월한테 배우는 거, 결국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거…날 사랑해 난 아직도, 사랑받을 만해, 이제서야 진짜 나를 알 것 같은데…’ ‘윤종신’의 노래 <나이>의 가사가 가슴으로 들리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다. 갱년기 감성이 이런 건가? 그 길을 수없이 지나다녔지만 여명 즈음엔 처음이었나 보다.
죽전버스터미널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복잡했다. 이들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버스를 기다리며 잡념에 빠져든다. 버스 안의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산청의 탑동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은 오직 일상에서 벗어난 나만의 것이다. 이때 떠오르는 단편적인 생각들을 메모하다 보면 쓸모있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 일정은 오전에 탑동마을에서 시작하여 다물민족학교와 운리마을을 거쳐 백운계곡까지 걷고, 점심 식사 후 남명 조식 선생의 기념관과 산천재, 남사리 예담촌 답사를 하면서 산청 3매를 보는 것이다. 대략 12km 정도의 트레킹 코스다.
탑동마을에 도착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정당매’가 있는 단속사 터였다. 정당매는 1300년대 강회백 선생이 소년 시절 신라 고찰 단속사에서 수학할 때 심었는데, 그 나무가 고사하자 증손자인 강용휴가 1400년대에 다시 심은 나무라고 한다. 600살이 넘은 ‘정당매’는 이제 완전히 고사해 줄기만 남았다. 지금 우리가 보는 매화는 고사 직전인 2000년에 매실을 채취, 배양하여 묘목을 기른 후 원줄기 옆에 심은 후계목에서 핀 꽃이라고 한다. 할아버지에게 남아 있던 미미한 생명력을 손자가 이어받아 꽃피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죽은 노목 사이로 새로운 가지 위에 피어 있는 매화의 생명력에 탄복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정당매’ 앞에는 ‘정당매각’이 있다. ‘정당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신라시대의 탑인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이 있고, 석탑에서 남쪽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단속사의 당간지주가 서 있다. 화려하지 않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오래된 유물이 남아 지나간 역사를 되새길 수 있게 해 주었다.
본격적으로 지리산 둘레길 8코스 트레킹을 시작했다. 걸으면서 항상 느끼는 고마움, 세상에 두 발로 갈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 수두룩하고, 아직은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산길과 들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일상의 쓸데없는 잡념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체력이 허락하는 한 걷기를 계속하고 싶다.
이 구간의 숲속길은 매우 평화로웠다. 길은 적당히 넓으면서 낙엽으로 푹신푹신해, 걷다 보니 무슨 고민과 걱정거리가 있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편했다. 따스한 햇살 속에서도 아직 겨울 느낌을 간직한 나뭇가지 사이로 진달래가 군데 군데 피어 있었다. 꽃분홍 색깔이 너무나도 매혹적이었다. 잎이 하나도 달리지 않은 겨울 나무 틈에서 혼자 저리도 화사하니 사랑받지 않을 수 없나 보다. 집중하여 걷다가 가끔 고개를 들 때마다 맑고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마음을 환하게 했다. 백운계곡까지 9km쯤 걸은 후 마주한 지리산 나물 부페 점심상. 흔히 마주할 수 없는 각종의 나물 반찬의 매력에 빠져 함포고복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식사 후 이동한 곳은 산청군 사천면에 있는 남명 조식 의 유적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남명기념관’을 둘러본 다음, 길 건너의 ‘산천재’로 향했다. ‘산천재’는 460년도 더 된 매화나무인 ‘남명매’로 유명하다. ‘산천재’가 완성되던 해에 조식 선생이 직접 심은 것이라고 한다. 산청 3매 중 가장 젊은 나무라 여전히 흰 매화꽃을 피우면서 고결함과 기상을 뽐내고 있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남명이 말년을 보내며 후학을 양성한 ‘산천재’의 툇마루에 앉으니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천왕봉이 뚜렷이 보였다. 그 옛날 조식 선생이 지리산의 산세와 매화를 눈으로 즐기며 시를 짓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이어서 찾아간 곳은 남사리 예담촌. 예담촌은 사라져가는 ‘돌담길’의 보존을 위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보이는 돌담이 너무도 정겨웠다. 나지막한 돌담과 돌담을 덮은 담쟁이, 그 위로 보이는 기와지붕의 정취에 흠뻑 빠져서 천천히 마을을 걸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이씨 고가와 최씨 고가, 하씨 고가를 보면서 여유 있던 옛 양반들의 삶이 잠시 부러워지기도 했다. 그 중 하씨 고가에 있는 매화나무가 산청 3매 중의 하나인 ‘원정매’다.
고려 말의 문신 하즙 선생이 심은 것인데, 국내 기록상 700살 내외의 최고령 매화나무다. 몇 해 전 원목이 고사하였는데, 다행히도 곁뿌리에서 후계목이 자라나 연분홍 겹꽃을 피우는 것이란다. 인간의 짧은 생으로는 그 생명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정매, 정당매, 남명매를 돌아보며 산청 3매의 생명력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본 줄기가 죽더라도 곁가지를 살려 꽃을 피우며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조선의 선비들이 사랑한 매화에 순수와 고고함만이 아니라 영원함까지 깃들어 있음을 확인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