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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Feb 01. 2022

직장인이 된 후

전국의 모든 직장인 분들 존경합니다

문뜩 대학생이었을 때 직장인이던 사촌 오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대학생 때가 인생에서 제일 좋을 때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물론 취업 준비할 때 취업만 되면 착하게 살겠다고 기도까지 했었지만, 그때의 간절함이 무색할 정도로 마음이 무겁다. 업무 외에도 열심히 자기 계발하면서 잘 살아가고는 있지만, 마음 한편은 허하기만 하다.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싫거나, 직장의 동료가 싫거나 그렇지는 않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다. 매일 아침에 알람을 끄면서 왜 이렇게 일찍 출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매일 아침에 샤워하면서 집에 있는데도 자꾸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나만 그런지 아니면 모든 직장인 분들이 같은 마음인 건지 웃프기만 하다.


주말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섬뜩할 때가 있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 느끼는 건데 시계를 우연히 봤는데 3시 20분일 경우,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영업시간 이제 10분 남았네' 이런 생각을 한다. 은행은 문을 3시 30분에 닫으니깐. 근데 왜 그게 주말에 생각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온전히 휴식을 취하다가도 당황스럽다. 주말 시간은 또 왜 그렇게 빠르게 흐르는지...

쉴 권리를 더 마음껏 누리고만 싶다.  


그리고 휴가가 있으면 휴가 하루 전 아니면 시작되는 날에 문뜩 아련함을 느낀다. 휴가가 빨리 끝나버릴까봐 슬퍼서. 벌써 휴가가 끝나버릴까봐 뭔가 시작전부터 왜 그렇게 아쉬운지 모르겠다.


직장인이 된 후 달라진 점은 커피를 마시는 거다. 대학생 때는 카페에 가면 생딸기 우유, 자몽 에이드, 레몬 에이드, 아이스 초코 이런 음료만 먹었었다. 지금은 아이스 라테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커피를 막 좋아하지는 않지만 왠지 안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실 때도 있다. 가끔 점심시간에 커피 사러 스타벅스에 가면 이런 생각이 든다. 카페 안에서 저기 앉아서 노트북을 보고, 책을 읽고, 휴대폰을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평일에 커피숍에서 시간을 (당사자들에게는 여유 부리는 게 아닐 수도 있지만)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테이크 아웃해서 다시 일하러 들어 가는 게 커피보다 더 쓴 것 같다. 


직장인이 되고 또 달라진 점은 빨간색이 나쁜, 불길한 색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재테크를 하다 보니 빨간색은 상승의 상징이었다. 빨간 불이 들어오면 내 수익이 오르는 신호였다. 파란색은 푸름과 희망의 상징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파란 불이 들어오면 불안하고, 섬뜩하기까지 하더라. 빨간색과 파란색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게 마치 직장인이 되고 나면 여러모로 많은 게 달라진다는 것과 일맥상통하게 느껴졌다.

아 그리고 달력!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는 휴일도 빨간색이다. 빨간색은 좋은 거였다...!


사실 취업 후 초반에 이직에 대해 잠시 아주 짧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자소설 닷컴 어플을 다시 다운로드했었는데 다시 지울 수밖에 없었다. 구직을 할 수가 없어서다. 민망하지만 자소설 닷컴에서 공고를 낸 회사들이 주식 종목처럼 보였다. 직장인의 때가 벌써 묻은 건지 아니면 복에 겨운 건지 진지하게 공고를 읽지 못했다..


또 있는 것 같다. 직장인이 되고 달라진 점. 조금이라도 힘들거나 신경이 쓰이거나 답답할 때 마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퇴근하고 아빠가 집에 들어오실 때 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사 오셨던 것처럼 나는 마트에서 장을 본다. 장 볼 것도 없는데 이것저것 집어 든다. 과자, 음료수, 아이스크림, 고기까지. 소비를 해서라도 돈을 벌고 있다는 강제로 느끼고 싶은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장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또 생각이 난다. 소비 씀씀이가 달라져서 그런지 예전만큼 물건을 샀을 때 느꼈던 기쁨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새 휴대폰을 사주시면 하루 종일 늦게까지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배경을 꾸미고 했던 것 같은데 최근에 내 돈 내산 새 휴대폰을 처음 샀는데 그날 일찍 잤다. 기존에 있던 기능을 그대로 옮긴 거 말고는 아무것도 안 했던 것 같다. 피곤해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내일 또 출근해야 하니깐. 심지어 내 돈으로 이제 휴대폰도 사고, 요금도 낼 능력이 생겼는데도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직장인이 된 것에 후회는 없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며 직장인의 고달픔을 조금이나마 털어놓고 싶다. 정말 진심으로 전국의 모든 직장인들을 존경한다. 어떠한 사명감으로,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출근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나처럼 꾸역꾸역 몸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이 있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으로 원하는 것과 추억을 살 수 있어서 물론 충분히 감사하다. 성숙해진 것 같지만 한편으로 해맑음을 잃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나는 사실 굉장히 해맑고 긍정적인 사람이다. 언제나 아이처럼 순수하게 살고 싶다. 직장인이 되어 마인드가 바뀌고 어느 날 갑자기 기가 죽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신경 쓰이고,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문뜩문뜩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맑게 꿋꿋이 살고싶다. 그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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