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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Feb 10. 2024

맨발 걷기는 현재를 걷는 것

맨발로 걸으며 사색하기


설 연휴에 친구와 부산으로 도망 왔다. 어제부터 오션뷰 호텔에서 호캉스 중이다. 휴식 겸, 결혼은  할 거냐는 잔소리로부터 나를 지키는 중이다.




오늘 오전에는 해운대 백사장 맨발 걷기를 했다. 요즘 최고 관심사가 '건강'이라 그런지 주저함 없이 신발을 벗었다. 맨발 걷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바닷물이 스며든 촉촉한 모래 위에 두 발을 올렸다. 걷다가 파도가 밀려오면 차가움에 5초 간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계속 걸어보았다.



혹여나 모래 사이에 유리 조각과 같은 위험 요소가 있을까 바닥을 보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러다 점점 경계심을 풀고 발의 감각에 집중했다. 폭신하면서도 생생한 촉감이었다. 맨발로 걸으며 몸이 건강해지고 있음을 동시에 느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좋겠지 하며 상쾌하게 걸어 나갔다.




그러다 맨발로 걸으며 앞서 가고 있는 한 사람의 발자취를 유심히 보게 됐다. 모래 위에는 그 사람이 지나가며 남은 발자국이 일렬로 찍혀있었다. 그러다 파도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파도가 그 사람의 네 다섯 발자국을 모두 지워냈다. 계속 걸으며 흔적을 남기지만 파도는 계속 지웠다.



그걸 뒤에서 보며 걷는 데 갑자기 사색에 빠졌다. 



파도와 사라지는 발자국에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지만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발자국은 우리의 노력이고, 파도는 시련이 아닐까 하는 생각. 우리는 꿋꿋이 인생의 발자취를 남기며 나아가지만 시련과 실패를 마주한다. 시작조차 못해보기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에 주저앉기도 한다. 나아가지만 무의미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계속 걸으며 존재를 주장하지만 사라져 버리는 파도 옆  발자국처럼 말이다.




물론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해변을 걷는 것도 아니고, 남긴 발자국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금방 사라져 버리는 흔적에 허무함을 느끼긴 했다. 그래서 이런 생각으로 이어졌다. '파도가 닿지 않는 곳으로 걸어가야지'. 파도가 넘보지 못할 높은 곳에 남겨진 발자국은 왠지 더 오래 남아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남을 해변의 발자국은 없겠지만, 그 순간만 이라도 좀 더 높은 곳에서 걸으며 사색을 이어갔다.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차별화하고, 전략적으로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까지 받았다. 맨발 걷기마저 자기 계발의 수단이 되다니. 신기했다. 맨발 걷기는 뇌를 자극하고, 사색하게 만든다.








맨발 걷기를 계속하다 갈매기 떼를 만났다. 갈매기들은 날지 않고, 백사장 모래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알고 보니 사람들이 꺼내 든 새우깡 주위에 몰려있었 던 거였다. 일단 갈매기 떼를 만났으니 사진으로 그 모습을 담았다.





그러다 문뜩 또 사색에 잠겼다.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기 있는 무리 속의 갈매기들을 보면서 책 주인공인 조나단 갈매기가 생각이 났다. 수동적으로 먹이를 받아먹는 저 갈매기들 말고, 저 너머 어디 높이 열심히 비행 연습을 하고 있을 조나단 갈매기들도 어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저 갈매기들의 삶이 옳지 않다고 느끼지 않았다. 저게 보통의 부류이고, 다수 일 것이다. 단지, 조나단처럼 더 높이 날기 위해, 한계를 짓지 않기 위해 비행 연습을 하는 존재도 분명 지금 저 어디 있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들었다. 나도 조나단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책의 주제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파도가 넘보지 못할 길을 걷고, 높이 나는 새처럼 되고 싶은 생각이 결이 비슷해서 신기했다. 그저 걸었을 뿐인데 이런 생각까지 도달했다. 맨발 걷기를 하다 감성 에세이가 한 편 나왔다. 이 두 가지 생각 외에도 바다의 파도를 보며 이어령 선생님을 떠올렸다. 고 이어령 선생은 바다를 본다면 삶과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을 남기셨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 내용도 떠올랐고, 잠시나마 바다를 응시하며 죽음을 생각했다.






맨발 걷기를 어싱 Earthing 한다라고 부른다고 한다. 땅을 밟으면서 자연 치유되고 회복하는 것을 어싱이라고 한다. '지구와 연결된다'는 뜻이다. 어싱족이라는 용어도 있다.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 유의해서 걷는다면 맨발 걷기는 좋은 움직임이 분명하다. 맨발 걷기의 가장 초보 코스가 바다라고 한다. 혹시 바닷가에 놀러 간다면 의식적으로 30분 이상 맨발 걷기를 해보기를 추천한다!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맨발 걷기는 좋은 운동 같다.




맨발 걷기를 하며 한 시간 정도 해변을 거늘였다. 잠시나마 오늘도 일상에서 건강을 챙겼다. 맨발로 의식적으로 걸으며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렸다. 사색할 생각의 힘이 있음에 감사하다.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루소-







다음의 맨발 걷기를 기약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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