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력의 시작은 AI 서비스 개발이었다.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개발 부서에서 팀원으로 6년, 팀장으로 2년을 보냈다. 그런 내가 지금은 200명 규모의 본부 조직을 지원하는 팀에 팀원으로 속해있다. 조직 운영을 위한 보고, 예산, 인사, 교육 같은 일을 맡는 팀이다. 나의 지난 경력과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다.
인사 실패였든, 내 실력 부족이었든, 이제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대기업에서 이런 갑작스러운 자리 이동은 드물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내 역할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과거 실무 부서에 있을 때, 나는 지원팀의 소극적인 업무 방식에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이왕 이곳에 왔으니, 나는 이전과는 다른 지원팀원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먼저 다가가 묻고, 불편한 점을 찾아 개선하고 싶었다. 실무자들이 본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한 '적극적인 지원'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6개월 만에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나의 선의는 종종 불필요한 간섭이나 추가적인 업무로 여겨졌다. 바쁜데 방해한다며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자주 상처받았다.
상처에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혹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가장 쉬운 보호막은 ‘소극적인 태도’다. 묻는 것에만 답하고, 주어진 일만 최소한으로 처리하는 것. 그러면 최소한 미움받을 일은 없다. 열심히 잘해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 업무. 하지만 실수하면 바로 비난이 쏟아지는 업무. 지원팀의 일이란 본래 그런 속성을 가졌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 와서야 몸으로 깨달았다. 나 역시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제야 과거의 그 지원팀 동료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소극적인 태도는 무능함이나 게으름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이 거대한 조직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그들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 기준으로 세상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또 하나 배웠다.
언젠가 나는 다시 실무 부서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지원팀 동료들에게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 값비싼 깨달음이, 지금 내 자리의 가장 큰 성과인 걸까.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