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완벽한 라면 한 그릇

by 마흔로그

새벽 조깅을 마치고 샤워를 한다. 온몸의 열기가 천천히 식어간다. 나만의 평온한 시간이다. 선풍기 바람을 쐬며 자리에 앉아, 멍하니 유튜브 쇼츠를 넘긴다. 한 리뷰 유튜버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먹고 있다. ‘후루룩’ 소리가 스피커를 뚫고 나온다.


뇌에서 도파민이 폭발하는 느낌이다.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나는 즉시 자기 합리화를 시작한다. ‘아침에 땀 흘리며 뛰었잖아. 이 정도는 괜찮아. 심지어 운동 후에는 단백질 보충도 필요하다고.’ 라면을 먹기로 결심하기까지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에게는 라면을 끓이는 나만의 프로토콜이 있다. 물은 표준량 550밀리리터가 아닌, 정확히 450밀리리터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계란 두 개를 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란이 들어가면 국물이 싱거워지므로, 물을 적게 잡는 것은 나름의 계산이다. 나의 최애 라면인 진라면 매운맛은 최고의 범용성을 자랑한다. 어떤 재료를 추가해도 기본 맛을 해치지 않고 조화롭게 품어낸다. 계란 두 개는 그릇에 미리 곱게 풀어둔다. 면이 거의 다 익었을 때, 원을 그리며 천천히 붓는다. 절대 젓지 않는다. 몽글몽글한 계란국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서다.


끓인 냄비를 그대로 식탁으로 옮겨, 냄비 받침 위에 올린다. 맞은편에는 휴대용 선풍기를 거치한다. 바람의 각도는 냄비와 내 입의 중간을 향하도록 정밀하게 조준한다. 이것이 나의 ‘자동 냉각 시스템’이다. 면을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가는 2~3초. 그 짧은 시간 동안 선풍기 바람이 뜨거운 면을 효과적으로 식힌다. 입으로 ‘후후’ 불 필요가 없는, 완벽하게 자동화된 프로세스다. 면을 다 먹고, 얼큰하고 짭짤해진 계란국 국물까지 남김없이 마신다. 완벽한 단백질 섭취다.


최근 몇 권의 건강 서적을 읽었다. 미키타 젠지의 『식사가 잘못됐습니다』, 정해훈의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소식의 과학』이 기억에 남는다. 두 책 모두 탄수화물을 줄이라고 경고한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하며 식단을 조절하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라면은 예외다. 이 얼큰하고 짭짤한 맛,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의 쾌감.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고작 몇백 원짜리 라면 한 봉지가, 나에게는 세상 전부를 가진 듯한 행복을 준다.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최소 몇만 원의 ‘시발비용’이나 ‘플렉스’를 한다. 나의 위안 비용은 그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다. 이것은 합리적인 소비다. 물론 조깅으로 소모한 칼로리를 다시 채워 넣었으니, 내 몸에게는 조금 미안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작은 반항은 팍팍한 마흔의 삶을 버티게 하는 소중한 즐거움이다. 그렇게 또 한번 정신승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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