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놓인 말

과거의 풍경은 달라진다

by 마흔로그

거대한 조직은 하나의 거대한 체스판과 같다. 나는 그 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손이 판을 한번 휩쓸고 나면, 말들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자리를 옮긴다. 지난 행마나 각자의 특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금 그런 상황에 놓였다.


이른 나이에 팀장이 되고, 모두에게 능력을 인정받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세상이 투명한 규칙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노력은 보상받고, 옳은 선택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내가 걸어온 모든 발자국이 하나의 선명한 길을 만들고 있다고 믿었다. 과거의 모든 순간이 자랑스러웠다.


지금은 모든 것이 반대다. 내 전문성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곳에 와 있다. 매일 다른 사람의 옷을 입고 출근하는 기분이다. 익숙했던 모든 것이 낯설다. 자연히 재미도, 의욕도 사라졌다. 과거의 빛나던 순간들마저 ‘내가 정말 그랬었나’ 싶을 만큼 멀게 느껴진다. 그때의 선택들을 곱씹으며 후회만 반복한다.


신기하게도 현재는 과거의 풍경을 바꾼다. 삶이 잘 풀릴 때는, 흩어져 있던 행운들이 연결돼 하나의 거대한 산맥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필연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지금처럼 길이 보이지 않을 땐, 지난 상처와 후회들만 어두운 골짜기처럼 깊게 파인다. 결국 지금의 내가 과거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낯선 이곳에도 분명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나의 경험과 이곳의 일이 만나는 작은 접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다시 재미를 느끼고 몰입해야 한다. 이곳에 온 지 6개월. 최근에야 아주 작은 실마리 하나를 찾았다. 아직은 희미한 빛이지만, 나는 그 빛을 따라 다시 걸어볼 생각이다. 나의 현재를 바꾸고, 과거의 의미도 다시 써 내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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