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없는 아침

by 마흔로그

아침 6시에서 6시 30분 사이, 어떠한 인위적인 신호도 없이 눈을 뜬다. 머리맡에 놓인 스마트폰의 알람은 꺼진 지 오래다. 전날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면, 몸은 알아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가볍게 깨어난다. 물 한 잔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온 뒤 러닝복으로 갈아입는다. 밤사이 세상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뉴스를 잠시 훑어보는 동안 정신이 맑아진다. 완전히 잠이 깨면 집을 나선다.


집 주변에는 달리기에 좋은 천이 흐른다. 물줄기를 따라 가볍게 조깅을 시작한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짧게는 4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땀을 흘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샤워를 마치고 나면 가족을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다.


우리 집의 아침 메뉴는 거의 고정되어 있다. 계란후라이, 블루베리, 아몬드, 그릭 요거트, 그리고 노릇하게 구운 식빵. 여기에서 한 두 가지가 상황에 따라 비슷한 것으로 대체될 뿐이다. 매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일 또한 적지 않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고역이기에, 아침만큼은 효율적인 고정 메뉴로 정했다. 다행히 아내와 다섯 살 딸아이도 이 식단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식사를 마치면 아이의 세수를 시키고 옷을 입힌다. 아내가 아이의 머리를 정성껏 묶어주는 동안, 나는 도서관에 갈 채비를 한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바로 옆에는 동네 도서관치고는 규모가 꽤 큰 구립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의 등원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유치원까지 15분 남짓한 길을 아이와 두 손을 잡고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9시 10분, 유치원 앞에서 아이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나면 곧장 옆 건물인 도서관으로 향한다. 정오까지 그곳에 머물며 책의 세계에 빠져들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요즘 나의 오전 루틴이다.


휴직 후 마주한 평일 오전은 평화롭고, 어떤 스트레스도 없다. 한 가지 신기한 변화는 매일 아침 습관처럼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휴직 전, 휴직하고 나서 줄어들 개인 용돈의 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반영했던 항목이 커피값이었다. 그런데 막상 휴직을 시작하니 커피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도서관 정수기에서 받는 시원한 냉수 한 잔이면 충분했다.


커피의 향으로 기분을 억지로 리프레시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상태가 이미 충분히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카페인의 힘을 빌려 나를 각성시킬 이유도 없다. 밤마다 깊고 풍부한 잠을 자는 덕분에 피로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의 자극 없이도 나 스스로 충분히 깨어 있고 평온하다.


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읽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책 한 권을 고르는 일이 신중함을 넘어 비장하기까지 했다. 어렵게 낸 시간인데 혹여나 나와 맞지 않거나 재미없는 책을 고르게 되면, 그 시간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조바심이 사라졌다. 시간이 넉넉하니 도서관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 중에서 이것저것 마음껏 골라본다. 평소라면 시도하지 않았을 낯선 분야의 책을 펼쳐보기도 하고, 읽다 아니면 조용히 덮어도 그만이다. 그런 여유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곤 한다.


휴직이 시작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당분간 이런 잔잔한 생활이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이 고요하고 규칙적인 일상이 사실은 나와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갈구했던 것은 강렬한 성취가 주는 도파민적인 쾌락이 아니라, 이런 평온한 일상이 주는 세로토닌적인 행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알람 없이 눈을 뜨고, 아이의 손을 잡고 걷고, 도서관 특유의 책냄새를 맡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내 휴직은 이미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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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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