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초딩들을 조심하라
클래식 기타리스트인 마키노를 주인공으로 하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마티네의 끝에서>를 재독하고 있는 중에 아래의 대사가 눈길을 끈다.
"마키노 씨는 말씀만 안 하시면 아주 멋있는데."
글타. 믿거나 말거나 이 얘기는 내가 대딩 시절에 한 여자 후배에게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경험자로서 마키노의 그런 태도를 충분히 이해한다. 아마도 마키네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손가락으로 인해 끌어당겨지는 여성들을 구태여 입으로 밀어냄으로써 일상의 번잡함을 피해 평상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거다.
나도 그랬었지…
… 라는 얘기를 듣고는 한 초딩 여학생이 이렇게 대답한다.
안물안궁.
입, 그놈의 입이 문제다. 그러고 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었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라고.
중딩 1학년 시절에, 담임인 국어 쌤으로부터 '말조심을 하라'는 꾸지람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말조심을 하자"를 반복해서 기재한 반성문 10장을 제출하기도 했었다.
나는 비루한 밥벌이를 위해 조그만 기타 학원, 아니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다. 중딩은 물론, 초딩이들도 다소 있다 보니 언행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가 많다.
어떤 초딩이가 어디서 듣고 왔는지 내게 묻는다.
"쌤, 딜레마가 뭐예요?"
"아, 그건 말이지, 빼도 박도 못하는...."라고 설명하려다가 멈춘다. 머릿속에 옐로카드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왠지 야밤의 X경련에 의한 밀착-동반 응급실행이 연상되는, 심히 부적절한 19금 내용인 것 같아 다른 설명을 찾는다.
"음... 진퇴양난이라고나 할까."
"그게 뭔데요?"
"음... 예를 들면 말이지..." 하며 적당한 예시를 생각해 본다.
한 가지 예가 떠오르기는 한다.
특검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자니 저 스스로 범인이라고 자백하는 것 같고, 안 하자니 지가 범인인 게 밝혀질 것 같고
하지만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저 상황이라면 최대한 버티는 게, 다시 말해 전자를 선택하는 게 차라리 유리할 테니 진퇴양난이라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초딩이가 특검이란 걸 알까? 그래서 다른 예시를 들려주기로 한다.
좋은 예시가 떠오른다.
음악을 업으로 하자니 돈이 안 벌리고
돈을 벌자니 음악을 못하겠고
"왜요? 쌤은 음악으로 돈을 벌잖아요?"
아...이런 질문에는 디테일한 답변을 해주기가 좀 망설여진다. 음악을 한다는 건 말이야, 레슨 행위가 아니라 무대에서 연주도 하고 공연도...라고 주절주절 떠벌이는 것도, 자조적으로 보이는 것도 우스워 보일 테니까. 그래서 또 다른 예시를 들려준다.
기타를 열심히 가르치면 너희들이 싫어하고
대충 가르치면 학부형들이 싫어하고
선생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말조심을 해야 한다.
문제는 초딩이라는 존재는 항시 돌발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다. 덩달아 말리게 되면 곤란하다. 이런 경우도 있다.
하루는 잘생긴 데다가 귀엽까지한 초딩 4학년 똘이(가명)군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는 진부한 질문을 던졌더니 역시나 예상대로,
"엄마요."라고 대답한다.
대개 아들들은 엄마를 더 좋아하기 마련이니까.
다시 물었다.
"아빠는 왜 엄마보다 덜 좋아?"
"아빠도 좋아요. 근데 아빠는 가끔 무서워요."
글치.... 아빠란 존재는 가끔 무섭기도 해야겠지... 하는 생각을 하는 도중에 똘이가 묻는다.
"쌤은 자식 없으세요?"
"응. 없어."
"어? 왜요? 결혼 안 했어요?"
"했었지. 지금은 아니고."
"근데 왜 자식이 없어요?"
"글쎄다...."
그랬더니 예상 밖의 질문을 던진다.
"정자와 난자가 안 만났어요?"
아.... 대략 난감. 뭐라고 답변해야 품위도 유지하고 선도 넘지 않을 수 있을까.
"응, 안 만났어."
라고 대답하면 섹스리스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응, 만남 성사 직전에 내가 못 만나게 했어."
라고 답변하니 "어떻게요?" 하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이렇게 답변했다면 어땠을까.
"총알에는 불발탄이란 게 있어."
이럴 경우 어쩌면 궁금한 게 많은 똘이는 다음의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그럼 오발탄은 뭐예요?"
그러면 이렇게 말해줄 수밖에.
"그건 말이지.... 음... 내 타깃이 아니라 남의 타깃에 명중시킨 건데.... 그러다 인생 엿되는 거지"라고 <사랑과 전쟁>에나 나올 법한 얘기로 설명하면 학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문득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 생각난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https://youtu.be/-DkjzYyI-JY?si=QvzSq4WgMi2yoGH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