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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쌍피의 철벽

ㅡ유혹남의 수작에 대처하는 방법

by 지얼


침묵의 시니피에.


적고 나니 뭔가 '있어 보인다'. '침묵의 시니피에'라니, 무슨 영화 제목 같기도 하고 철학서 제목 같기도 하다.

아는 척을 좀 하자면, '시니피에'를 우리말로 하면 기의(記意)라고 한다. 대비되는 말로는 기표(記標: 시니피앙)가 있다. 기표라는 것은 우리가 지칭(혹은 지시)하는 물리적인 그 '무엇(물건이나 소리일 수도 있고 문자일 수도 있다)'이다. 반면에 기의라는 것은 기표를 매개로 마음속에서 형성되는 추상적 관념이나 함의 같은 것이랄까. 예를 들어본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 썸탈 때 집 전화가 울리면 '앗! 수지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전화벨 소리가 기표이고 '앗! 수지다!'는 기의가 되는 거다. 수화기를 들었을 때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기호 1번 고길동의..."하는 소리는 뭐냐고? 그건 그냥 '무의', 즉 의미 없는 개솔.

또 하나의 예.


수지 : (벤치에 앉아 만월을 바라보며) 자기야... 달이 참 밝지예?

맹구 : (담뱃불을 발로 짓이기며) 이기 미친나... 보름달 아이가?


고딩 때 익히 들었던 '경상도 사나이'시리즈 중 하나이다. 위의 대화에서 수지가 지칭한 '밝은 달'. 혹은 '달이 밝다는 사실'을 기표라고 한다면, 그 기표 속에 내재된 기의ㅡ또는 내시(내포) 의미ㅡ는 아마 이것일 거다.


자기랑 있어서 참 행복해

달이 우리의 사랑을 밝혀주나봐


그런데 여자의 속내를 간파하는 데 젬병인 맹구는 수지의 말을 기표 그대로 받아들여 저따위 답변을 하고 만 거다. 하지만 만일 맹구가 수지에게 1도 관심이 없어 일부러 수지의 함의를 모른 척한 것이라면 맹구에게도 기의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럴 경우 그것은 아마도, "피곤하니 고마 쓸데없는 소리는 때리치아뿔고 집에 드가 자빠져 잠이나 자뿌라" 뭐, 이런 게 아닐까.

아님 말고.




미미(가명)에게 카톡이 온다.

오빠

이 나이에 오빠는 무슨.... 그러니까 이 얘기는 그냥 과거의 흑역사나 일종의 픽션 정도로 여기면 좋을 것이다.

카톡이 또 온다.

잘 지내셨죠?

그렇게 미미의 인력에 끌려 들어간다.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하다가 나는 미끼... 아니, 한마디를 툭 던진다.

언제 배고프면 얘기해요 맛있는 거 쏠 테니.

이 말에 내재된 시커먼 속내는 이거다. 뜨ㅂ...아니, 데이트할래?

네 그럴게요 고마워요 오빠,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카톡 저편의 세계로 사라진다.


8시간이 지난 후, 미미에게 다시 카톡이 온다.

오빠

배고파요

카톡을 확인한 후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나는 미끼를 던졌고, 너는 미끼를 확 물어버린 것이여.

어디서 만날까나..... 이런 생각을 하며 전화를 건다. 전화기 너머 미미가 말한다. 오빠, 치킨이 먹고 싶어요.

그래? 그럼 어디서 볼까? 하고 묻자 미미가 대답한다.


근데 저 지금 직장에 있어서 못 나가요

대신 문자로 주소 보내드릴게요


그러더니 <배달의민족> 앱에 소개된 여러 치킨집 중에 하나를 고르더니 이런저런 메뉴까지 선별하여 내게 카톡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미미의 속내(내포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넌 됐고, 치킨이나 쏴라.

전화를 끊고 나서 대번에 든 생각은 이랬다.

X발, 한 방 먹었네.


내가 '맛있는 거 쏜다'라고 말했을 때, 기실 '맛있는 거'는 미끼이고, 목적은 미미와의 데이트다. 미미는 바보가 아니므로 분명 내 말의 속내를 간파하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모른 척하며 기표(외시 의미)만을 의도적으로 취하여 내 뒤통수를 한 방 갈긴 거다. 이른바 '멕인다'고나 할까. 맛있는 거 쏜다고 말한 이상 체면상 안 사줄 수도 없고.

나는 <배달의민족> 앱을 열어 울분의 치킨을 주문하며 한마디를 내뱉는다.

이런 여시 같은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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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미미는 일타쌍피의 목적을 달성한다. '작업질' 혹은 개수작은 뿌리치고, 실리(치킨)는 취하고.

Kill two birds with one stone.


며칠 후,

다시 미미에게 카톡이 온다.

오빠

뭐하세요?


'더 이상 어장관리 당하지 않겠어.'

쪼잔남, 혹은 찌질남은 묵묵히 존심을 지킨다. 그녀의 카톡 화면에서 숫자 '1'이 지워지지 않도록. 이른바 '안읽씹'이다. 좀 고상하게 말하자면 '침묵의 답변'이고, 좀 더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침묵의 시니피에(기의)'다.

침묵도 시니피에가 될 수 있냐고? 물론이다. 대충 뭐 이런 의미다.


나, 삐짐


하지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물고기>라는 책에서 밝혔듯이, 진화의 관점으로 봤을 때 인간은 물고기에서 점진적으로 진화되었다고 한다. 어장 속 물고기에서 인간으로 진정 도약하고 싶다면 나는 침묵의 소리로 응대하는 대신 이렇게 써서 보내야 했다.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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