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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와 똥

ㅡ최초의 인간을 추억하며

by 지얼


모든 악기는 좋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사막에서 연주되는 플레타 기타(스페인의 장인 이그나시오 플레타가 제작한 클래식기타) 소리가 좋을까? 그럴 리가 없다.

대딩 시절, 그런 이유로 텅 빈 강의실에서 기타를 연습하곤 하였다. 자연스러운 리버브(반향음)를 얻기 위해서.

듣기로는 낙소스의 기타 음반들은 성당에서 레코딩된다던데, 역시나 같은 이유일 테다.


잠시 딴 얘기를 하자.

배변 과정은 지루하다. 하여 많은 이들이 화장실 전용 책을 비치해 두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대개 스마트폰을 들고 화장실에 갈 거다. 대개 영상을 문자보다 재미있어하니까.

여하튼 잠깐의 권태도 견디지 못하는, 도파민 중독의 인간들은 순수하게 배변의 쾌감을 누리지 못한다.

아마도 똥을 싸면서 '인생의 의미란 무엇일까?'라든지,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면서 철학적 사색을 하는 인간은 거의 없을 거다. 하여 우리들 대개는 배변 시 도구를 필요로 한다. 만화책이든, 스마트폰이든.

그런데,


대딩시절에 나는 화장실에 클래식기타를 들고 들어가는 인간을 본 적이 있다. 친구 박 모 씨다. 당신은 본 적이 있는가? 똥을 싸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인간을.

하여 나는 그를 알베르 까뮈의 책 제목을 따서


최초의 인간


이라고 칭하기로 한다.

위에서 똥 싸면서 철학적 사색을 하는 인간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 말했다. 배변과 사색의 공존이 어색하고도 불편해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인성(人性)과 수성(獸性)의 동시성에 거부감이 들기 때문일 거다.

언젠가 <네이버 지식IN>에서 다음의 질문을 목도한 적이 있다.


질문) 장원영도 똥을 싸나요?

답변) 아니오 장원영은 여신이라 똥을 싸지 않습니다

대신 체내의 특수한 기관으로 어떤 음식이든 모두 수분으로 변화시킨 후에

모두 증발시켜 버린다고 합니다


이런 것도 있다.

질문) 김태희도 똥을 싸나요?

답변) 김태희는 여신이 아니라서 똥을 싸지만, 아이브의 이서는 진짜 여신이기 때문에 똥을 싸지 않습니다


한갓 농담으로 들리는가? 아마도 그럴 거다. 하지만 중세의 유럽에서 행해진 유사한 논쟁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내용인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배변활동을 하셨을까?


장원영이든 그리스도이든, 아름답고 고귀한 대상에서 수성(獸性)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보노라면, 과거의 서구에서 영육 이원론(또는 심신 이원론)이 성행한 것이 이해가 된다.


똥을 싸는 육체 VS 진리 추구의 정신


같은 학교에 다니는 존예녀 수지(가명)에게 홀딱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약관의 시절에 친구 윤발(가명)이는 내게 이렇게 일깨워주곤 했다. "정신 차려! 그 여자는 똥을 안 싼다고 하든?"

이성은 안다. 배변에 예외가 없다는 것을. 하지만 감정은 '체내 증발'을 믿고 싶어 진다. 내게는 중세 유럽의 논쟁보다 윤발이의 말이 더 불경스러워 보이는 거다. 나의 여신 님을 감히.....

죽여버릴까, 이 시키.....


스크린샷 2024-12-21 오후 2.36.47.png 저는 한갓 닝겐이 아닌 여신이라서.....



여하튼 그 '최초의 인간'의 행태에 대해 기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도 유사한 이유이리라. 그런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박 모 씨는 진정 아름다운 음악 소리와 졸라 구린 냄새가 조화 아닌 조화를 이루는ㅡ청각과 후각의 공감각적 불협의 이중주를 창조하는 전위 예술가였다.

똥 향기와 함께 듣는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어떠하였을까?


물론 미술사에는 똥이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예가 있다. 피에로 만초니의 그 유명한 작품, <예술가의 똥>이다.

[... 자신의 똥을 90개의 작은 깡통에 밀봉하여 출품했는데, 만초니가 제작했다는 서명과 함께 시리얼 넘버를 매겼다. 옆면에는 "예술가의 똥, 정량 30그램, 원상태로 보존됨, 1961년 5월 생산되어 깡통에 넣어짐."이라는 문구가 4개 국어로 쓰여있다. 자신의 똥값을 당시 같은 무게의 금값과 같이 매겼다고 한다. -위키백과에서 펌]



스크린샷 2024-12-21 오후 12.55.14.png 예술가의 똥



문학에서도 똥이 소재로 쓰인 적이 있다.


[뒷산에 들어가 삽으로 구덩이를 팠다 한 뼘이다


쭈그리고 앉아 한 뼘 안에 똥을 누고 비밀의 문을 마개로 잠그듯 흙 한 삽을 덮었다 말 많이 하고 사는 것보다 입 다물고 사는 게 좋겠다

그리하여 감쪽같이 똥은 사라졌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산을 내려왔다


-똥은 무엇하고 지내나?


하루 내내 똥이 궁금해


생각을 한 뼘 늘였다가 줄였다가 나는 사라진 똥이 궁금해 생각의 구덩이를 한 뼘 팠다가 덮었다가 했다

ㅡ안도현, <사라진 똥>]


하지만 나는 음악에서(기악 음악에서) 똥이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된 예를 찾지 못하였다. 저 '최초의 인간'이 유일할 것이다.

최초의 인간, 박 모 씨가 볼 일을 다 보고 나서 화장실을 나왔다.

"내가 이제껏 살면서(사실 그때 고작 스무 살이었다) 똥 싸면서 기타 치는 인간을 본 건 네가 처음이고, 아마도 전무후무할 거다." 이렇게 말했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너도 한번 해봐. 화장실 울림이 되게 좋아."

"에효.... 이 드러운 놈...."

그의 손에 들려있는 기타를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근데 그 기타는 누구 거냐?" 그러자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이거? 혜경(가명)이 거."


글타. 우리는 그때 동아리 친구인 혜경의 집에 놀러 온 거였고,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 박 모 씨는 그녀의 집에 있었던 기타로 이러한 만행.... 아니 예술행위를 한 거였다.

아마도 혜경이는 짐작도 못했으리라.

자신의 기타에 그의 체취가 배어있다는 것을.


모든 악기는 좋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화장실에서 연주되는 플레타 기타....아니, 10만 원짜리 기타의 소리는 좋을까?

물론이지. 청각과 후각의 공감각이 쾌감을 배가할 테니까.



스크린샷 2024-12-21 오후 2.26.16.png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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