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핑거

-비운의 밴드

by 지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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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 중 두 명이 자살하여 비운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밴드 배드핑거(Badfinger).

이들은 무려 180여 명의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는 전설의 명곡 Without you의 원작자이다.


80년대 우리나라의 라디오 방송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틀어준 Without you는 해리 닐슨 버전이었다. 해리 닐슨 버전의 이 곡은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하였는데(훗날 머라이어 캐리의 버전은 영국에서 1위를 하게 된다) 해리 닐슨과 그의 측근은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배드핑거에게 해당 곡의 새로운 편곡 덕에 1위를 한 것이라 주장하며 저작권료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다고 한다(해리 닐슨 개자식!). 그리하여 소송에 휘말리고…


한때 여자가 부른 노래인 줄.


이후 배드핑거의 매니저가 애플 레코드(비틀스가 설립한 레코드사)와의 계약이 종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워너브라더스와 계약하는 통에 소송과 분란에 휩싸이고 애플 레코드는 without you를 공동 작곡한 피트 햄과 톰 에반스에게 저작권 지급을 중단한다.

이후 매니저는 계약금을 들고 잠적한다. 이에 워너브라더스는 밴드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또다시 소송에 휘말린다. 반 거지 상태가 된 피트 햄은 톰 에반스와 무려 10병의 위스키를 마시고 난 후 새벽에 차고에서 목매달아 자살한다. 유서에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매니저에 대한 저주, 그리고 음악 비즈니스계에 대한 환멸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후 배드핑거는 해체되고 톰 에반스는 파이프 수리공과 택시 운전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재결성 이후에 가진 투어에서는 관중으로부터의 '제2의 비틀스는 필요 없다!'는 비아냥을 감수하였는데 그 와중에 톰 에반스가 투어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여하튼 비즈니스계에 대한 환멸과 밴드 내, 외적인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톰 에반스도 자신의 집 뒷마당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한다.


배드핑거의, 원곡 Without you.


이언 매큐언의 2012년 작, 소설 <스위트 투스>를 중간쯤 읽다가, 나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한 대사와 맞닥뜨렸다.


이거예요. 매일 이 문제를 생각하죠. 더 큰 고민거리는 없어요. 이것 때문에 잠도 안 와요. 늘 똑같이 네 단계예요. 첫째, 나는 소설을 쓰고 싶다. 둘째, 나는 빈털터리다. 셋째, 나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 넷째, 직업을 가지면 글을 못 쓴다. 돌아갈 길이 안 보여요. 길이 없으니까요.


이것이 피카소 같이 '잘 나가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예술가들의 딜레마다. 작품만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한 예술가는 극히 일부이니까. 작품이 생계 유지 수단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에 나오는 금수저 한량 시마무라가 가끔은 부러워진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급전이 필요해서 한 출판사와 300여 페이지 분량의 장편소설 집필 계약을 한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한 달. 그는 급히 비서를 고용하여 자신의 구술을 타이핑하게 하여 소설을 완성한다. 퇴고? 그딴 게 있을 리가 없다(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에는 다소 엉성한 부분도 있다고 한다).

한때는 투르게네프에게 돈을 꿔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을 정도로 종종 돈에 쪼들렸던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럼에도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다. 자신의 작품이 돈이 된다는 가능성과 행운은 누릴 수 있었으니.


나는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라는 소설을 좋아한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토니오는 소위 세인들의 삶을 동경하기도 한다. 예술 창작이라는 무인도에서 육지를 그리워하는 형국이랄까. 생활과 창작의 갈등은 모든 무명 예술가들의 숙명이자 딜레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을 일러 '주조된 자유'라 칭했다. 백 번 동감한다. 멕시코 작곡가 퐁세는 "한갓 돈 따위를 벌기 위해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라고 했지만, 다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어쩔 것인가. 그 '한갓 돈 따위'를 벌지 못하면 창작 활동에도 제동이 걸리는 것을.


성직자를 희망하여 전도 사역도 하다가 뜻이 있어 늦은 나이에 화가로 전향한 반 고흐. 언젠가 그의 그림들 중 하나인 <해바라기>가 천억 원에 팔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반 고흐 전기를 두 권이나 읽고 그의 서간집도 읽었던 내게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참 세상 X 같네…

반 고흐는 생활비와 유화 물감이 다 떨어지자 동생 테오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내게 돈을 좀 보내다오. 돈은 꼭 갚겠다. 돈이 없으면 영혼이라도 팔겠다.



전기, 혹은 평전에 의하면 반 고흐 죽음의 원인은 정신병 혹은 간질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달리 생각한다. 그것들도 자살의 한 원인이었겠지만 어쩌면 동생에게까지 손을 벌려야 하는 빈곤 상태가 그를 붕괴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Without you는 해리 닐슨과 머라이어 캐리 그리고 에어 서플라이 포함, 무려 180여 명의 가수가 리메이크한, 이제는 팝의 고전이 된 노래이다. 그런 노래를 쓴 두 명의 작곡자의 재정 문제가 그들 죽음의 한 원인이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젊은 시절에 나는 다짐했어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하는 거라고

그래서 한 번도 해가 비춘 적이 없는

이곳을 떠나고 싶어

왜냐하면 떠오르는 해를 보려고 기다리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짧으니까

ㅡCarry on till tomorrow 가사 중



Air supply가 부른 Without you. 기타 솔로 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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