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 사이

-과거는 복원되지 않는다

by 지얼


영화로 제작된 바 있는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남자 주인공 쥰세이의 직업은 오래되어 빛이 바랜 고화(古畫)를 새로이 덧칠하여 복원하는 복원사다. 다시 말하자면 세월의 풍화 작용으로 마모되어 버린 과거를 복원하여 현재에 되살리는 것이 그의 일인 셈이다.

일면 뻔한 것 같으면서도 나름 의미 있는 설정이다. 고화와도 같은 옛 연인 아오이를 현재에 '복원'하려는 시도가 그에게는 '열정'일 테니까.

벌어져 버린 시간의 간극이 초래한 낯섦에 대해 쥰세이는 이렇게 얘기한다.


눈앞에 있는 아오이가 8년 전의 아오이와는 다른 사람임을 깨닫는 데 고작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얼굴도 목소리도 옛날과 다름없었지만, 거기에는 뭔가가 빠져 있었다. 어딘가 구멍이 뚫리고 틈이 생긴 것 같았다. 바로 그것을, 복원사인 내가 찾아내어 어떻게 복원시킬 것인가를 신중하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했다.


재회하기 이전, 8년 만에 쥰세이의 편지를 받은 아오이는 '냉정'을 유지하려 애쓴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쥰세이의 그림자를 몰아낸다. 다시 눈을 뜨고, 나는 마빈이 기다리는 거실로 바삐 나갔다. 이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속으로.


그럼에도 점차 냉기를 잃어가는 아오이는 이렇게 생각하기에 이른다.


쥰세이가 보고 싶었다. 기묘한 열정으로,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만났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다만 쥰세이와 얘기하고 싶었다. 내 말이 통하는 사람은 쥰세이 밖에 없다.


그리하여 결말은..... 뭐, 다들 아는 바와 같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의 재회. 그리고 과거의 복원.

구멍과 틈은 함께 하는 세월 속에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그 무엇으로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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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전에 연주했던,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경계에 있었던 어떤 고(古) 음악이 생각난다. 빛이 바랜 악보를 찾아 다시금 연주해 보고 싶어진다.

그 곡을 연주했던 과거의 감정들을 다시 복원할 수 있을까? 멜로디도 화음도 옛날과 다름없겠지만, 거기에는 뭔가가 빠져 있을 것만 같다. 어딘가 구멍이 뚫리고 틈이 생겨 있을 것 같다. 바로 그것을, 연주가인 내가 찾아내어 어떻게 복원시킬 것인가를 신중하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리라.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결코 이 곡과 만날 수 없다. 악보를 쫓아 소리를 낸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곡이 재현되었으면 싶었다.

열정이 복원되지 않는 한, 그 곡은 재현될 수 없다.

어느 블로거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머리가 텅 비는 것보다 가슴이 싸늘하게 식는 것이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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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언젠가, 과거 복원사로서의 쥰세이가 된 적이 있었다.

두오모 성당 대신 XXX 공원에서 나의 아오이를 20여 년 만에 만났다.

그러나 과거는 복원되지 않았다. 구멍과 틈이 세월의 간극만큼 넓어지고 벌어진 탓이었을까.

아니면 머리가 텅 비어 가는 속도만큼 가슴의 열기도 비례하여 식어갔거나.

그리하여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서성이다가 결국 냉정을 향해 각자 갈 길을 갔다.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영화는 영화고,

과거는 과거다.


주제곡, The whole nine yards


연주 : 폴리포니 기타 듀오. 편곡 : 지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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