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써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by 지얼

뭐 먹을래?

-아무거나.

영화 뭐 볼까?

-아무거나.


'아무거나'라니. 뭐든 다 좋아하니까 상관없다는 말인가.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말이 바로 '아무거나'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 쓰며 사는 삶>에서 다음과 같이 권유한다.


창작자 손을 계속 움직이게 하면, 감독관 손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면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게 된다. '손을 계속 움직여라'라는 원칙은 창작자 손에게 힘을 실어주고 감독관 손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필요하다.


'감독관 손'은 다음과 같은 심리적 저항을 의미한다.


-글이 졸라 유치한 거 아닌가?

-너무 느끼하거나 오글거리는 건 아닐까?

-문법과 문맥이 안 맞지 않나? 철자법이 틀리지 않았을까?

-성적인 묘사가 있는데 사람들이 나를 변태 아저씨 취급하는 것은 아닐까?

-장원영 얘기를 보고 사람들이 나를 젊은 여자나 밝히는 추잡한 늙다리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이에 대한 나탈리 골드버그의 충고는 '무조건 써라'이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고, 브레이크 밝은 채로 액셀을 밟아뵜자 차는 나아가지 않아 결국은 시동을 끄게 될 테니까.



감독관의 힘을 키우면 키울수록 글쓰기는 어려워진다. 사견이지만,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글을 쓸 수 없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손을 계속 움직여라'는 권유에는 의문이 들 법도 하다.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데 무조건 쓰라고?

'무조건 써라'는 것은 '아무거나'처럼 난감하다. 내용의 재미나 유의미 여부를 떠나 소재 선택의 폭이 너무나 광범위한 탓이다. 뷔페식당에서 무엇을 우선적으로 먹을까 하는 선택 장애 이상으로.

'아무거나', 또는 '다 좋아요'를 말하는 처자 앞에서의 난감함 이상으로.

(문득 '미미'와의 추억이 떠오른다...)





재즈 작곡가 듀크 엘링턴은 이렇게 말했다.


한계란 좋은 것이다


작곡가인 한 선생님으로부터 다음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드라마 음악 작업 의뢰는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로부터 대략 3개월 전에 들어온다. 그때 드는 생각은 이렇다.

'시간이 충분하구먼.'

그렇게 하여 일이 차일피일 미루어진다. 이제 두 달여가 남았다.

'이제부터 좀 열심히 써야겠다...'

그러나 작업이 진척되지 않는다. 아이디어 부재에 미칠 것 같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이제 한 달밖에 안 남았다.

'X 됐다....'

이때부터 열심히 곡을 쓰기 시작한다. 한 달 전에 꽉 막혀있던 아이디어가 샘솟기 시작한다. 시간이 얼마 안 남을수록 창작력은 배가된다.


역시나 창작의 원동력은 마감 시한이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과도한 자유(선택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등산로가 수십 개일 경우에는 정상에 오르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일까 고민하느라 시간이 간다. 기껏 선택하여 하나의 길을 오르면 '아니야, 아무래도 이 길은 아닌 것 같아'하면서 다른 길을 모색한다. 이를 반복하며 시간을 다 보낸다.

마감 시한은 '가장 좋은 길'이 아니라 '가장 먼저 찾은 길'에 선택 장애 없이 매진하게 만든다. 사실상 한 번의 직관을 따라 직진할 때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경우,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은 자신의 곡은 15분 만에 다 썼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많으면 인생이 고달프다고, 화투의 달인 '아귀'가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창작도 마찬가지다. 창작의 경우 선택지가 많을 경우 생각이 많아지고, 이런 여유가 허용되는 것은 마감 시한 3개월 전이다.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래전에 어떤 영화음악 감독과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기타 치는 사람으로서 저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왜 그런가요? 피아노 치는 저로서는 기타가 부러운데." 그가 말했다.

"피아노는 운지의 한계가 기타에 비하면 별로 없잖아요. 기타는 운지의 한계 때문에 음악적으로 제한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말했다.

"거기서 기타 음악의 개성이 나오는 겁니다."


한계란 좋은 것이다.


스크린샷 2025-11-01 오전 8.50.33.png 류이치 사카모토


편곡이나 작곡을 하다 보면 결과물의 우발성에 대해 기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완성된 곡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다.

'이 곡을 오늘 말고 3일 전에 썼어도 결과물이 같았을까?'

대답은 '아니요'일 것이다.

창작은 오롯이 현재의 것이니까.

작곡가 이전에 사제로서의 비발디가 종교적 '땡땡이'를 치지 않았다면, 그의 <사계>는 오롯이 우리가 듣는 그대로의 것이 되었을까? 그럴 리는 없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조언("손을 계속 움직여라")이 함축하는 바는 어쩌면 이런 것일는지도 모른다.


Seize the day

(오늘을 잡아라)


그리고,

한계를 받아들여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크린샷 2025-11-01 오전 9.12.18.png

그래서 오늘도 펜을 든다(사실은 키보드 위에 손을 놓는다).

가장 먼저 다가오는 벽은 이거다.

대체 뭘 쓰지?

쓸 게 없는데?

(이런 상태를 'Writer's block'이라고 한다지.)


몇 달 전에 <아이디어 블록>이라는 책을 구매했다. <당신의 상상력에 시동을 걸어 주는 786개의 아이디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소재만 선택한다고 딱히 별 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재미 삼아 시도해 본다. 무작위로 펼친 책장에서 제시한 소재로 글을 써 보는 것. 범람하는 소재의 홍수에 제한을 가하는 듯이.

내게 우연히 제시된 소재는 다음과 같다.



낙장불입의 원칙을 지키려니 환장할 노릇이다. 미국의 공립학교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는데 뭘 쓰라는 말인가? 한국의 공립학교도 모르거늘.

"..... 34퍼센트는 '5년만 하고 그만둘 계획'이라고 한다."는 문장을 보다가 문득 절친인 상준(가명) 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아니, 이 말은 틀렸다. '떠올랐다'로 써야 맞다). 개인택시를 하고 있는 그가 몇 달 전에 이렇게 말했다.

"딱 5년 채우고 때려치울 거야."

'딱 5년'인 이유는 개인택시의 의무 운영 기간이 그렇기 때문이고, 때려치우려는 건 진상 개새... 손님들 때문이란다.

하나만 예를 들면 이렇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처자가 택시 뒷자리에 탑승했다. 6월 초의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상준에게 행선지를 밝힌 후에 전화를 걸더니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미정이니? 응, 나야. 지금 청담동으로 택시 타고 가고 있어."

잠시 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존나 더워. 근데 씨X, 기사 아저씨가 에어컨 틀어줄 생각도 안 하네."


몇 달 후, 대진(가명) 군이 내게 물었다.

"상준이는 택시 잘하고 있지?"

"그렇긴 한데... 5년 채우면 때려치운다는데?" 내가 말했다.

"응? 왜?"

"진상들 때문에 하기 싫대."

대진 군에게 위의 얘기를 전해주었다.

정의와 울분의 화신인 대진 군이 말했다.

"내가 상준이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너? 글쎄다."

"너 같으면 어떻게 할래?"

"나 같으면 이렇게 했지. 차를 세운 후에..."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당장 내려, 이 XX아."

"에이, 그러면 쓰나. 나 같으면 이렇게 했을 거야." 그가 말했다.

"어떻게?"

"일단 너한테 전화를 걸어. 그다음 이러는 거지. '야, 바쁘냐? 나? 난 지금 운행 중이야. 손님을 태웠거든. 근데 XX년이 전화로 내 욕을 하더라고.'"


내용이 비교육적이고 거지발싸개 같다고?

상관없다.

다소 우회는 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무조건 쓸 것

무작위로 선택된 소재로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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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는 영감을 기다리고, 프로는 일하러 간다.

-스티븐 킹


터치드, <Hi, Bu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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