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의 전장에서 패배하는 음란마귀
춘정이 약동했던 고딩 2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일요일에 교회 친구들(수재와 성진, 둘 다 가명)이 같은 교회에 적을 둔, 중딩 3학년인 소희(가명) 양을 데리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너무 반가웠다. 수재와 성진이 말고 소희 양이.
그녀는 일 년여 전 즈음 겨울날의 어느 야심한 골목길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 오늘부터 '오빠, 동생' 하자."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과대망상이 없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당시에는 이 말을 '나랑 사귀자'라는 뜻보다는 다소 농도가 떨어지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사실 생각해 보면 사귀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진척은 없었다.
대체 왜?
연로해질수록 과도한 나이 차이에 따른 거부감은 줄어드는 듯싶다. 80세 할아버지와 60세 할머니가 부부라는 사실이 껄끄럽게 느껴질까? 반면에 40대 초반의 어떤 남자가 20대 초반의 처자를 사랑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이런 비난이 폭주할 것이다.
롤리타 콤플렉스냐?
딸한테 그라믄 안 돼∼
혹은 후배 S군처럼 구체적으로 깔 수도 있다.
"형... 형이 서른 살이었을 때 쟤는 고작 열 살이었어...."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 부장(이선균 분)은 대체 왜 이지안(아이유 분) 처자에게 그렇게나 마음을 썼던 것일까? (에로스적) 사랑이었을까, 포괄적 휴머니즘의 발로였을까? 다수의 여자들은 후자의 견해를 지지한다.
만약에 박동훈 부장이 이지안 처자랑 결혼했다고 치자. 그리고 세월이 흘러 박동훈 부장이 아흔 살, 그리고 이지안이 일흔 살 전후라고 치자. 여전히 롤리타 콤플렉스적 패륜으로 보일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고?
연로해질수록 폭이 큰 나이 차이에 대한 심적 거부감이 중화된다는 거고(물론 이것은 나이 간 차이를 무시하고 한 묶음으로 획일화하는, 일종의 범주적 횡포라고 말할 수도 있다), 반대로 보자면 나이가 어릴수록 남녀 간 나이 차에 따른 심적 거부감이 첨예해진다는 얘기다. 주주클럽의 <열여섯, 스물>이라는 노래의 가사에서 보이는 것처럼, 젊디 젊은 시절에는 네 살 차이도 너무 크다. 커도 너무 크다. 아야야야 쇼킹, 쇼킹.
하지만 지금은 싫어도
언젠가 네가 더 컸을 때
그때를 기다릴게 그땐 내가
널 붙들지 몰라
나는 이제 성인이고 너는 아직 청소년이야, 하는 도덕적 문제의식(청소년이랑 붕가붕가를 할 수는 없잖아!)에 따른 배척이었을까? 그럼 '내'가 아직 고딩인 열아홉 살이고, '너'가 열다섯 살이었다면 사귀었을까? 아마 아닐걸.
당시 소희 양은 중딩 3학년이었고 나는 고딩 2학년이었다.
소희 양을 좋아했지만, 3년이라는 나이 차와 중딩과 고딩이라는 위계적 차이가 꽤나 신경 쓰였던 거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쪽팔렸달까. 아마도 친구들의 조롱이 마음 깊은 곳에서 흘려나왔을 거다.
중딩이랑 사귄다니, 제정신이냐?
쪽팔리게 애랑 연애를 하고 다니냐?
더 못돼 처먹은 놈들은 이렇게 비난하리라.
애 앞에서 발기가 되던?
이건 완전히 <롤리타>의 험버트 아재 취급이다.
그래서 나의 연애는 정체될 수밖에 없었고 여전히 그냥 '오빠, 동생 사이'로밖에 남지 않게 되었으리라.
난 남들은 신경 쓰고 살진 않아
하지만 우리들 친구들이 본다면
나를 욕할 거야 쇼킹 쇼킹
변명을 해봐도 쇼킹 쇼킹
너의 목소리는 쇼킹 쇼킹
니가 아니었어 쇼킹 쇼킹
아마도 이런 마음이었으리라.
나에겐 어린 너는 필요 없어
애인이 필요해
그럼에도 소희 양이 우리 집에 왔을 때 내 감정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너...
보기보다 섹시 어른스럽구나...
거실에서 한참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문득 소희 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건넌방으로 가 보니 그녀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응? 아, 그냥..." 그녀가 대답했다.
"좀 심심하지?"
"아니. 괜찮아."
"피곤하면 좀 눈 좀 붙일래?"
답변을 듣지도 않고 이불장을 열어 베개와 이불을 꺼낸 다음 방바닥에 깔았다.
"여기서 잠깐 눈 좀 붙여."
그리고는 그녀를 두고 방을 나갔다(오... 쿨내 쩔어).
그때, 친구들(수재와 성진)은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이타적인, 기특한 모습을 보인다.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고 가버린 것이다. 건넌방에 누워 있을 소희 양을 홀로 두고 말이지.
현관에서 그들을 배웅했을 때, 수재가 내게 조용히 건넨 말은 아직도 기억에 선연하다.
"소희랑 잘해봐. ㅎㅎㅎㅎ...."
'ㅎㅎㅎㅎ'라니, 뭐지? 이 음흉한 웃음은?
잘해보라니. 뭘? 나더러 어쩌라고?
목사님 아들이 이래도 되는 거야?
물론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목사님이라면 모를까, 아마 예수님은 수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잘해보라는 말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빤하다. 둘 만의 뭔가 끈적끈적한 에로스적인 상황을 연출해 보라는 격려였던 것이다.
방문을 조용히 열었다.
자리에 앉은 후 이불을 덮은 채로 잠든 그녀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보일러 온도가 너무 높았던 탓인지 그녀는 한 차례 뒤척이더니 이불을 끄집어내렸다. 그리고 한 번 더 뒤척였을 때 이불을 비집고 그녀의 하얀 다리가 허벅지까지 드러났다. 단추가 풀어진 블라우스의 틈새로, 두 개의 산봉우리가 형성하고 커튼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빛이 강조한 깊은 계곡의 강렬한 선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옆에 누웠다. 그녀가 눈을 떴다.
"오빠, 뭐 하는 거야?"
그녀가 몸을 반쯤 일으켰을 때 나는 프레스기로 압착하듯 그녀의 상체를 눌러 원래의 자리로 되돌렸다.
"오빠, 이러지 마요...."
나는 그녀가 말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말보다 진실한 행동으로 그녀의 사랑이 증명되기를 원했다. 그녀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도록 그녀의 입술을 봉인했다. 어쩌다 어렵게 발화된 저항의 말은 내 입술을 지나 목젖으로 흡수되었다. 입천장의 가벼운 떨림을 느꼈고, 나의 혀는 이브를 유혹하는 뱀이 되어 그녀 속에 스며들었다.
어느덧 축축한 욕망에 젖은 나쁜 손이 그녀의 계곡을 향했을 때, 맞부딪혀 있던 두 입술 사이에서 그녀의 것이 틀림없을 외마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고 그것이 제동기 없는 내 욕망의 전차를 가속시켰다. 애욕의 촉수가 또다른, 검은 숲의 계곡을 향해 뻗었을 때....
그 당시의 주간지 <선데이 서울>에 실릴 법한 사건, 예컨대 <믿었던 교회 오빠가 그럴 줄은...> 같은 따위의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위의 얘기는 어디까지나 소설적 망상일 뿐이다.
이런 내용을 기대하신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어쨌거나.... 꽤 잘 쓰지 않았습니까?
방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단지 깔아놓았던 이불 위에 단지 서 있기만 했다. 내가 말했다.
"왜 안 자고 그러고 있어. 잠깐만 눈을 붙이라니까."
그리고는 방을 나와 옥탑에 있는 나의 방으로 향했다.
아마도 그녀는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옥탑방의 지붕 위에서 맞담배질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교회 오빠가 이래도 되냐고?
안 되지.
구태여 변명을 해본다. 아무리 찾아봐도 '미성년자가 담배 피우면 지옥 간다'는 말은 성경책에 없다.)
그날 이후로 4,5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나는 K대(군대)로, 그녀는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제대한 후에 친구들로부터 그녀가 이민을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세월이 한참 더 흘렀다. 그 사이에 짝이 몇 차례 바뀌었고, 그건 아마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머리에 백모의 증가가 눈에 띌 정도가 되었을 때 그녀로부터 소식이 왔다. SNS를 통해 나를 찾아 메신저로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 경의 말대로 SNS는 인생의 낭비가 맞다.
처음에는 메신저로 문자메시지만 주고받다가, 결국에는 통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4시쯤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시차를 감안하면 그녀로서는 대략 밤 12시 전후일 것이다.
사랑이었냐고?
아니, 난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다. 그녀는 단지 외로웠던 거다. 특정의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는 불특정의 누구이든지 간에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게 더 중요했던 거다.
그리고 과거라는 추상을 향한 그리움은 뭉뚱그려짐, 혹은 불투명함으로 인해 대개는 구체적인 대상으로 치환하기를 욕망한다. 그 대상이 하필이면 나였을 뿐.
과거지사를 나열하던 중에 그날의 일이 언급되었다. 그녀도 그날의 일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취중의 그녀가 내게 말을 던졌다.
"그때 확 덮치지 그랬어."
여자란 나이를 먹으면 부끄러움을 잊는 것일까.
"그때 은근히 기다렸는데...."
그녀는 부가적인 말을 던졌고, 아마도 나의 혈압이 조금은 상승했을 것이다.
작금에 생각한다.
사랑이 아니야.
그리움도 아니고.
단지 러브 바밍(Love Bombing)이었을 뿐.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딩이 3학년 짜리 여자애를 어떻게 건드리냐?"라고.
덧붙이기를,
"그때 내가 한참 피가 끓어올랐던 시기였으니 그런 마음이 아예 없진 않았지만...."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내 섣부른 행동으로 인해 네가 받게 될 충격이나 상처가 두려웠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었다고.
멋있나?
여기서 잠깐 나라는 짐승 인간의 심리를 아나토미적으로 파헤쳐 보자.
1) '중딩이를 어떻게 건드리냐'는 말에 대한 해부 :
-'나는 바른생활을 하는 정직한 교회 오빠로서, 성적 타락에 이끌릴 수는 없었다'는 외피의미와는 반대로, 속내는 아마 이럴 것이다. "나는 네가 나를 그런 짐승으로 보지 않기를 바라." 도덕적 의무보다는 타자(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의지의 소산.
2) '한참 피가 끓어올랐던 시기인지라 그런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라는 말에 대한 해부 :
-앞선 외피의미에 대한, 솔직하지 못하다는ㅡ혹은 솔직하게 보이지 않을까(다시 말해 위선적으로 비춰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비롯된 연극적 발언. 다시 말하자면 '나는 당시의 내 음란마성을 네게 이렇게 솔직히 까발릴 수 있을 정도로 솔직한 사람이니 내 말은 믿을만한 것이야'라는 은밀한 가스라이팅에의 의지.
3)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는 심정에 대한 해부 :
-당시에 강간미수범이 되어 집안의 망신이 되어 쫓겨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그리고 그런 행위가 야기한 결별로 인해 통째로 날아가버릴 에로스적 결합에의 장밋빛 미래는?
즉, 에로스적 결합에 대한 가능성을 미래로 연기하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
부록) 그리고 그날의 행태에 대한 아나토미 :
-그녀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 이불을 깔아주었을까?
그야 물론 동침에의 무의식적 욕망/의지가 선의라는 가면을 쓰고 발현....
너무 자신에게 가혹한 거 아니냐고? 글쎄다. 위의 해부는 어디까지나 사후적인 것이지,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위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착해 보이는 피상적 언명이 내 의지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구태여 예를 들어가며 강조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말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선악에 대한 일도양단의 이분법은 얼마나 가당찮은 것이랴. 다시 말해 누구는 오로지 선하고 또 누구는 순전히 악하다는 생각은 얼마나 안이한 것이랴.
그래서 나는 영화 <더 헌트>에 관한 평론에서 신형철 쌤이 한 말에 동감한다. "제대로 읽기만 한다면 우리는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을 집어던질 수 있게 될 것이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새삼 되새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때로는, 나는 나를 모른다.
가끔은 알고도 모른 척하기도 한다.
복잡하게 나쁘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러한 태도에 대해, 당장 생활에 곤란을 느끼지 않으므로 마음이 해이해져서 그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 그러나 내가 소극적으로 된 주된 요인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나는 숙부에게 기만당했을 때 남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으며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는 완벽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나만은 틀림없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K의 일 때문에 보기좋게 무너져버리고 나 자신도 숙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았습니다. 남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혐오감을 갖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마음> 중에서
사족 :
오늘의 소득 :
-내게 에로소설에의 재능이 엿보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