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의 소용
원주시 반계리에는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아파트 9충 높이의 이 은행나무의 나이는 1317세가 넘는다는데, 대충 계산해 보니 신라 성덕왕 시대 원효스님이 활동하던 때에 심어진 거다.
후배 S군의 권유로 일요일 오후에 이곳을 찾았다. 차량 정체가 심한 걸 보아 꽤나 명소인 듯싶었다.
다녀온 후에 후배 S군이 소감을 물었다.
"형, 어때? 진짜 크지 않아?"
"응. 무지막지하게 크더라. 이게 가능해?" 내가 말했다.
"그치? 그래서 내가 형한테 권한 거야. 꼭 가보라고."
"그래."
질문을 던지는 S군.
"그거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었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저 나무의 열매는 과연 몇 가마가 나올까?"
이 질문에서 엿보이는 태도는 아마도 이럴 것이다.
미학보다는 실용주의.
미국의 오클랜드에도 꽤나 오래 된 나무가 있단다. 노령의 미국삼나무라는데, 이것이 오랫동안 생존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가파른 바위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위험을 무릅쓰고 벌목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비교적 작은 키와 비틀린 외관 때문이란다. 제니 오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How to do nothing)>에서 이렇게 썼다. "달리 말하면 벌목꾼에게 목재로서 쓸모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그리고는 장자의 얘기를 전한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의 현실판 같은 사실이다. 보통 '쓸모없는 나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는 이 이야기에는 수령과 키가 어마어마한 나무를 본 목수가 등장한다. 그러나 목수는 가지에 옹이가 많아 목재로는 가치가 떨어지는 '무가치한 나무'라며 그냥 지나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 나무는 목수의 꿈에 등장해 이렇게 묻는다. "저 유용한 나무들과 나를 비교하느냐?" 그리고 목수에게 과일나무와 목재용 나무는 결국 베인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옹이가 많은 것은 내게 아주 쓸모가 많다. 내게 다른 쓸모가 있었다면 내가 이만큼 크게 자랄 수 있었겠느냐?" 나무를 오로지 목재로만 바라보는 인간이 만든 쓸모와 가치의 구분을, 이 나무는 완강히 거부한다. "곧 죽게 될 쓸모없는 인간이여, 사물이 사물을 비난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네는 내가 쓸모없는 나무라는 것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친구인 순발(가명) 군의 농원을 찾아갔을 때다. 그는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3미터 남짓의 가냘픈 나무를 캐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이 나무의 이름은 뭐임?"
"이거? 이팝나무야." 그가 대답했다. "이팝나무 묘목이지."
"이팝나무? 그게 뭐임?" 내가 물었다.
"왜, 이팝나무나 조팝나무 같은 거 안 들어봤어?" 그가 물었다.
"좆밥나무?"
"밥이 아니고 팝. '팝송'할 때 그 팝."
"그럼 이 나무는 대체 뭐에 쓰는 거임? 팝콘 열매가 열리나?" 실용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며 물었다.
"아니. 대신 꽃을 예쁘게 피우지." 그가 말했다.
"꽃이라. 흠...." 잠시 생각한 후에 말을 이었다. "나무랑 인간은 비슷하구나."
"뭔 얘기냐?" 그가 물었다.
"과일이냐, 꽃이냐...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거나, 미적인 것을 추구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얘기지."
20대 초반에 읽은(그러나 무슨 내용인지 대체로 알 수 없었던), 마르쿠제의 <미학과 문화>의 첫 장에 나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얘기다.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 실용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과 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으로,라는.
하지만 인간에게 그런 일도양단의 택일적 가치관만으로 사는 일이 가능할는지. 위의 얘기는 아마도 일도양단이 아닌 퍼센티지의 문제일 것이다(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마도 중용적 태도를 권장했으리라).
"미적인 것을 추구한다... 너처럼?" 그가 말했다.
한때는 그랬지.
지금보다 피가 뜨거웠던 시절,
지금처럼 비겁한 한계를 설정하지 않았던 시절,
지금보다는 감동에의 여력이 훨씬 많이 남아있던 시절에.
'나는 실용성의 퍼센티지가 낮았던 것뿐이고....' 나는 예술지상주의자는 못 된다. 그렇다고 실용과 미학이 조화를 잘 이룬 것도 아니다. 외려 나이 들수록 미학의 퍼센티지는 줄어들어가기만 한다. 하여 은행나무의 숭고미보다는 열매의 총량에 생각이 기운다.
자조적인 생각이 엄습한다.
내 삶은 좆밥나무 같군.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종영되었다. 마지막 회의, 주인공 김낙수(류승룡 분)와 도진우 부장(이신기 분)의 대화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도 부장 : 선배님, 제가...
김낙수 : .......
도 부장 : 진짜 왜...(임원으로 승진이) 안 됐을까요?
김낙수 : 흠....
대답 대신 질문을 던지는 김낙수.
김낙수 : 너는 왜 임원이 되고 싶었냐?
도 부장 : 네?
김낙수 : 왜 (임원이) 안 됐는지 말고, 왜 그렇게 바둥바둥 살았는지, 뭘 위해서 그렇게 살았는지 알어?
도 부장 : ......
김낙수 : 진우야.... 너 자신한테 좀 솔직해져 봐. 그럼 사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거다.
인간의 모든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했다. 이 말인즉, 우리는 내 욕망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내게 바라는 대로 살아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구태여 라캉을 공부하지 않아도 이것을 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느끼고 있다. 일례로 우리는 외부, 혹은 타자가 부여한 도구적 가치관을 내 것인 양 여기며 살아간다. 빅브라더만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가 파놉티콘의 감시자가 되어 내 삶을 내부에서 감시한다.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의 중압감을 느끼면서.
'내'가 아니라 '그들'이 주어인 삶, 소문으로서의 삶, 소문에 따라 사는 삶입니다. 무리의 삶이고 패거리의 삶입니다.
-이진경, <우리는 왜 끝없이 곁눈질을 하는가> 중에서
일산의 한 음악학원에 적을 두었을 때, 한 초등학생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너는 장래 희망이 뭐야? 직업 말이야."
"저요? 저는 무조건 검사나 판사요." 그가 대답했다.
"검사나 판사? 이유는?" 내가 물었다.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검사나 판사는 돈을 잘 번대요."
공부를 꽤 잘하는 아들을 둔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자기 아들이 의사가 되게 할 거라고. 그때 내가 말했다.
"어차피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이라면, 악사는 어떨까요?"
문득 궁금해진다. 그의 아들도 자신의 장래희망을 의사로 정했을까?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작가 이만교는 <글쓰기 공작소>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종종 나를 소설가라고 소개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다고 부러워하는 회사원이나 주부들을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심히 의심스럽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있지 않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지? 당신이 무의식 중에 정말로 원하는 것은, 회사원이나 주부로 안정된 삶을 살면서 소설가나 화가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하겠어요!"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삶이 아닐까?
이만교 작가는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지?"라고 묻는다. 간단한 답변은 이렇다. 원래 그런 거라고.
말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엄마 말을 잘 듣는' 나름의 생존법을 터득한 유아는 이후 아버지의 금기를 통해 점차 자신을 향한 세상의 요구ㅡ'이렇게 되어라'는 규율ㅡ를 내면화한다. 그 결과 (관습과 규범의) 상징계의 인력에서 자유로워지기가 힘들어진다.
한 번은, 자사에 대한 자부심이 은근한 어떤 대기업 직원이 나에게 "저도 대학 때 문예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던 소설가 지망생이었어요. 이제는 이렇게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었지만..."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이 "나의 진짜 꿈은 '한때 나도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적이 있지'하고 말할 줄 아는 샐러리맨, 그래서 낭만성까지 갖춘 듯한, 그러나 어쨌든 경제적으로 안정된 대기업 샐러리맨이 되는 것이었습니다"라는 소리로 들린다.
-이만교, <글쓰기 공작소> 중에서
예전에는 이 글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도진우 부장처럼 주체성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잠을 일깨우는 죽비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제는 종종 위의 글이 내 머리를 향한 죽비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진짜 꿈은 음악 하는 아티스트였고, 한때 꿈을 약소하게나마 이루었지만, 어쨌든 꽃보다 열매의 양을 따지는 지금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대기업 샐러리맨, 혹은 공무원의 삶이 (또는 그들의 퇴직금/연금이) 부러울 때가 있기에.
남의 떡은 원래 커 보이는 것일까?
20대 시절의 어느 날인가, 브라더에게 예술가의 배고픈 현실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다. 이런 얘기를 들었다.
“돈을 구하고자 하는 인간은 돈만 얻을 수 있는 거고 예술을 구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예술만 얻게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예술을 구하는 처지에 돈까지 바라는 건 좀 욕심 아니냐?”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직설의 단점이다. 같은 내용의 말도 은유를 사용하여 말의 품격을 높이면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삶을 대가로 희생하지 않은 채 예술이라는 월계수에서 잎사귀 하나를, 단 하나의 잎사귀라도 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지요.”
-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 중에서
“남김없이 미(美)에 감싸이면서, 어떻게 인생에 손을 뻗칠 수 있겠는가? 미의 입장에서도, 나의 단념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리라. 한 손으로 영원을 만지며, 다른 한 손으로 인생을 만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중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 선배님의 노래 제목은 이렇다.
<음악이 생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예술가도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다소 다르기는 해도 모든 걸 버리고 타히티 섬으로 탈주해 버린 폴 고갱 같은 일부 예술가가 아닌 한, 공통적인 속인적 성향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삶을 온전히 희생하지 않더라도 월계수 잎사귀 하나 정도는 딸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한 손으로 인생을 만지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예술이 생의 전부는 아니다. 예술가의 내면에서 구도자적 일심을 찾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비구처럼 탁발로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 이렇게 변명하는 나는 다름 아닌 예술가와 소시민적 삶의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토니오 크뢰거에 다름 아니다.
꽃과 더불어 열매도 탐하는.
혹은 <달과 6펜스>라는 소설 제목을 빌어 이런 표현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달의 고독은 못 견뎌하지만 6펜스의 삶을 바라마지 않는.
대충 위의 번뇌를 지니고 살아갔을 때 뼈에 새겨지는 말과 조우했다. 철학자 니체의 '두 번의 긍정'이라는 말이다. 첫 번째 긍정은 자신이 진실로 바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작가가 되는 것이 진실로 바라는 것이라면 그것을 긍정하면서 작가가 되기 위한 길을 닦으면 된다.
두 번째 긍정은 자신이 긍정한 일의 결과를 이루어진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다. 작가 됨의 결과로 통장잔고가 바닥을 치게 되더라도, 혹은 연모했던 처자가 가난이 싫다는 이유로 떠나가 버렸더라도 그러한 선택에 따른 삶의 결과를 긍정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작가로서 실패해서 끝끝내 무명작가로 남게 되더라도 그것조차 긍정하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탄광 사업에 뛰어든 주인공과 조르바가 사업의 폭망 순간에 긍정의 춤을 추었던 것처럼.
....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춤추는 자"라고 말하면서 춤을 출 줄 아는 사람은 운명을 사랑하는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춤은 근본적으로 중력을 극복하는 예술입니다. 상징적인 거죠.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 위대한 가치, 강철과 같은 관습과 규범 같은 것을 이겨내고 삶을 가볍게 만드는 문재와 연관됩니다. (...) 니체는 우리를 짓누르는 무게, 사회적인 문제를 중력의 정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대지와 삶이 무겁다고 말한다. 중력의 정신(악령)이 바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다."
-이진우, <니체의 인생 강의> 중에서
그래, 인정한다. 두 번째가 아주 어려운 것임을, 아무나 다다를 수 없는 고차원의 경지라는 것을. 아울러 춤추는 자가 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결코 아님을. 어디 '초인'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얻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던가?
내가 실패한 지점이 어디었을까 되짚어 본다. 두 말할 것도 없이 두 번째 긍정에서 실패했다. 두 번째 긍정이란, 도구적 가치가 추구하는 실질적 이익과 소유의 유무에 목매지 않는 것을 내포할 테다.
그리고 춤을 추지 못했다.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삶의 세 층위ㅡ낙타, 사자, 어린아이ㅡ에서 어린아이로 격상하는 데 실패한 것이랄까.
낙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서 'You should'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사자는 그렇게 결코 안 산다면서 'I will'이라고 했습니다. 이 단계를 극복해야 비로소 어린아이가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라면서 'I am'이라고 합니다.
말하고 보니 자조적인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사자라니. 사자의 층위 정도로는 도약했단 말인가. 그냥 치타 정도로 해두자. 그래야 덜 겸연쩍다.
아니면 새가 되기를 바랐으나 박쥐 단계에 머물렀다고 해야 할까.
위에서 장자의 '무용한 것의 유용함'에 대한 글을 소개했다. 도구적 효용가치가 없더라도 반계리의 은행나무는 많은 사람들이 교통 정체를 감내하면서라도 찾아온다. 은행 열매를 얻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제니 오델의 말을 조금 더 음미해 본다.
..... 나무는 목수의 꿈에 나타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위한 쓸모인가? 이 질문은 내가 자본주의적 논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곱씹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무엇을 낳는 생산성인가? 어떤 방식의, 누구를 위한 성공인가? 내가 삶에서 가장 큰 행복과 충족감을 느낀 때는 모든 필멸의 존재에 따르는 희망과 고통, 슬픔과 더불어 살아 있음을 온전히 인식한 순간이었다. 이러한 순간에 목적론적 목표로서의 성공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러한 순간들은 그 자체로 중요했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다리의 계단이 아니었다. 나는 장자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이 느낌을 알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인생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체험이라고 신화학자 조지프 켐벨은 말했다고 한다. '그대 자신의 의미는 그대가 거기 있다는 것'이고, '자아가 여기 살아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희열이 바로 인생의 의미'라고.
삶의 빛이 흐릿해져 좀비나 다름 없을 것 같은 내게 외친다.
잠에서 깨어나라!
니체 쌤에게 묻는다.
"대체 글쓰기의 의미가 뭐예요(돈이 나와요, 쌀이 나와요)?
니체 쌤이 답변한다.
"그냥 지금 써."
"그러면 그림을 그리는 것의 의미는 뭐예요?"
"그냥 지금 당장 그려."
사족 :
언젠가 어떤 분야의 예술에 종사하는 이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머글'로 통칭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어떤 분야인지 명시하지 않는 점을 양해 바란다). 머글이라니. 일반 소시민들이 머글이라면 특정 분야의 예술을 하는 본인들은 해리포터 레벨의 마법사란 말인가.
남의 다리를 자른다고 해서 본인의 키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자신들이 사자, 아니 치타 정도는 된다면 타인의 부정을 통한 자기 긍정은 지양할 일이다(니체는 그런 이들을 일러 '노예'라고 칭했다). 무엇보다 사자, 혹은 어린아이로 향하는 길은 오직 예술에게만 열려있는 것은 아닐진대.
그런 의미에서 세차업을 시작한 김낙수에게 갈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