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s...

-<베티 블루 37.2>에 대한 저 꼴리는대로의 감상평

by 지얼
스크린샷 2025-12-06 오후 3.31.48.png 영화 <베티 블루 37.2>의 한 장면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서른 살이 조금 넘었던 시절에 우리 마더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여자를 만나려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20대 초반의 여자를 만나라. 나이를 더 많이 먹게 되면 머리가 굵어져 이것저것 따지려 들게 마련이니까."

이 말씀을 구태여 풀이하자면 이렇다.

-아직 젊어 세파에 덜 시달린 탓에 세속적 조건을 따지지 않는 처자를 꼬셔라. 안 그러면 네 차지(?)는 없다.

우리 마더는 절대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아는 게 병이라고 했나. 일단 뭘 모르면 그 무엇이든 행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마더의 관점에서는 결혼이라는 게 그렇고, 내 관점에서는 악기 연주가 그렇다. 후자의 경우, 처음 시작했을 때 소위 '일만 시간의 법칙(경지에 오르려면 최소 일만 시간을 연습해야 한다는 법칙)' 같은 걸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을 거다. 모르는 게 약이고, '선판단 없음'이 추동하는 힘이다.

근데 그게 어디 결혼과 악기뿐이랴. 한때 소설을 쓴답시고 시간을 들인 적이 있다. 한 140페이지 정도 썼나.... 중도에 지친 나는 도움이 될 것 같아 유명 작가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잖아 큰 고뇌 없이 집필(?)을 포기했다.

그때 내가 읽었던 소설의 작가는 다름 아닌 이언 매큐언미시마 유키오였다. 그들의 스토리텔링과 문장을 보고 깨달았다.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아는 게 병이고, 진격을 막는 벽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모르는 게 진격의 전제다. 배움이든, 창작이든, 그리고 연애든, 결혼이든 뭐든.

문득 A.P.T.(로제와 브루노마스의 곡 말고)로 유명한 윤수일 쌤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그 시절 그 추억이

또다시 온다 해도

사랑만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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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노랫말의 화자(아마도 작사가)는 사랑의 나이프에 깊게 베였나 보다. 어쩌면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연인에게 호되게 당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프랑스 영화 중에 1986년에 제작된 <베티 블루 37.2>라는 작품이 있다(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오래지 않은 때에 극장에서 재개봉을 한 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김장훈 가수가 <매불쇼>에서 소감을 피력하는 것을 본 후 문득 궁금하여 영화 정보를 검색해 보니 네티즌들의 인상적인 감상평들이 눈에 들어욌다.


죽기 전에 이런 사랑을 해 보고 싶다

한 번쯤 이런 사랑을 받고 싶다

이런 게 진짜 사는 거지


아주 오래전에 반쯤 졸면서 본 영화라 결말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영화가 그렇게나 절절하게 서글펐던가?

그래서 '티빙'을 통해 무삭제 감독판으로 재-감상하였다. 이번에는 한 번도 졸지 않았다. 무삭제의 위력이다.

끝까지 다 본 후의 소감은 이랬다.


니들,

미쳤구나?


'니들(너히들)'은 중의적 표현이다. 첫째로는 극 중 주연 남녀에게 향한 것이고, 두 번째는 위의 감상평을 남긴 네티즌들을 향한 것이다(후자의 경우 무례한 표현이 좀 거슬린다면 '당신들은 안일한 생각을 하시는군요'로 순화하겠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베티'는 성격장애자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계선('경계성'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성격장애'를 지니고 있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성격장애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불안정한 대인관계, 반복적인 자기 파괴적 행동, 극단적인 정서변화와 충동성을 나타내는 장애이다. 성인 초기에 시작되어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며, 버림받음을 피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과 불안정하고 강렬한 대인관계,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 없으며, 만성적인 공허감을 느끼고,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느끼며, 자신에게 손상을 줄 수 있는 충동성을 보인다. 또한 자해 행동을 하기도 한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전체 성격장애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많다. 심한 감정이나 충동 조절 장애가 있어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살 위험률이 높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계선 성격장애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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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격장애를 지닌 연인에게 '이런 사랑을 받고 싶다'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당신이 "미안하지만, 시험공부를 해야 해서 나흘 정도는 못 만날 것 같아"라고 하면, 전화를 끊은 후 상대방은 조용히 자기 손목에 면도칼을 그을 수도 있는데도?

다행히 그게 아니라면,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의 융단폭격을 받을 수도 있다.


딴 여자 생겼지, 이 씨XX아!

그년 누구야? 나보다 예쁘냐?

내가 벌써 질렸어? 왜? 내가 뭐 어쨌는데?

혹시 그년이냐? 잤지? 이 개XX아...


심한 경우, 베티처럼 집에 불을 지를 수도 있는데?

이런 게 진짜 삶ㅡ'사는 것 같이 사는 거'라고?

생뚱맞지만, 문득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이 떠오른다.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누구든지 다 그럴싸한 계획은 갖고 있다,

주둥이에 처맞기 전까지는.)


문득 궁금해진다. 간헐적으로 줘터진 후에도 여전히 그녀가 사랑스러울까?

겪어봤냐고? 흠, 글쎄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깊은 관계도 아니었고, 내가 정신과 의사도 아닌지라 함부로 말할 것은 못된다. 대신 비슷하지만 다소 다른 성격장애인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지닌 여자와는 유의미한 관계를 맺은 적은 있다. 오랜 기간 동안 겪은 일들을 귀납적으로 추론하면 소위 '(내현적) 나르시시스트'가 맞다.

작금에 생각한다.

경계선 성격장애자를 연인으로 둔 사람과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를 곁에 둔 사람 중 누가 더 힘들까?

따라서 나로서는 위의 감상평을 다음과 같이 가볍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죽기 전에 이런 사랑을 해 보고 싶다 = 죽기 전에 이렇게 예쁜 여자랑 뜨밤 사랑해 보고 싶다

한 번쯤 이런 사랑을 받고 싶다 = 한 번쯤 이렇게 예쁜 여자랑 사귀고 싶다

사는 것 같이 산다 = 예쁜이랑 살아야 사는 게 사는 거다


흠, 그래. 이해한다.

이해하고 말고.


이래도?
스크린샷 2025-12-06 오전 10.02.44.png 이렇게 공감해 줄 자신이 있어?


잠시 딴 얘기 좀 하겠다(다소 저질스러운 내용이니 건너뛰어도 좋다).

20대 시절에, 저명하신 한 음악가 선생님을 사사한 적이 있다. 매주 일요일 저녁에 수업을 끝마치면 인근 식당에서 선생님과 여러 학생들이 술자리를 갖곤 했다. 그런 자리에서 쌤과 다음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자유분방한 음악가들의 모임이라는 점을 감안하자)..


쌤 : 너!

학생들 : ????

학생 1 : 저요?

쌤 : 아니, 너 말고 니 옆에 있는 머리 긴 놈.

나 : 저요?

쌤 : 그래, 너.

나 : .....

쌤 : 너, 요즘 만나는 여자라도 있냐?

나 : 없는데요.

쌤 : 왜 안 만나냐?

나 : 여자가 없는데요.

쌤 : 없어? 길거리에 나가면 흔하고 흔한 게 여자인데?

나 : 그렇긴 한데... 맘에 드는 여자는 아직 못 봤습니다.

쌤 : 그럼 아직도 총각이냐?

나 : ........(노코멘트)

학생 2 : (나를 보며) 야, 그럼 너는 그게 심하게 땡기면 어떡하냐?

나 : 그거라뇨?

학생 2 : 그거 있잖아, 인마.

학생 3 : (불쑥 끼어들며) 그냥 스스로 위로하겠지, 뭐.

학생 2 : (학생 3을 보며) 그런가? 근데 쟤는 '그 방법'을 모를걸?


당시 사문의 형님들은 다소 짓궂은 데가 있었다.


나 : '그 방법'이라뇨? 그게 뭔데요?

학생 2 : 내가 알려줄게. 잘 들어.

나 : 네...

학생 2 : 일단 그 생각이 나면... 네 엉덩이에 오른손을 깔고 앉은 다음 한 5분 정도만 그러고 있어.

나 : 왜요?

학생 2 : 그러면 5분 후에 깨닫게 될 거야. 피가 안 통해서 감각이 없어진 너의 손은 더 이상 너의 것이 아니라는 걸.

학생 일동 : 푸하하, 푸하하~


그 자리에는 여학생들도 있었거늘.

영화감독 우디 앨런은 다음의 명언(?)을 남겼다.


남자들 중 90%는 스스로 위로한다

나머지 10%는 안 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우디 앨런(1935-) 감독


다시 쌤과의 대화로 돌아간다.


쌤 : 너는 연애할 생각이 없는 거냐?

나 : 뭐...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쌤 : 그럼 (여자를)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운 데서 찾아. 우리 사문에도 있잖아?

나 : 지연(가명)이요?

쌤 : 지연이 말고도 영선(가명)이도 있잖아?

나 : 그건 좀....

쌤 : 왜? 네가 지금 물불 가릴 때냐?

학생 2 : 선생님, 쟤한테는 아직 오른손이 남아 있습니다.


일동 웃음.

푸하하하하~


나 :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 맘에는 들어야죠.

쌤 : 왜, 영선이가 맘에 안 들어서 그래? 왜? 별로 안 예뻐?

나 : 아뇨,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영선이는 단지 '제 눈에는' 아닌 것 같아서요.

쌤 : 안 예쁘다는 얘기구나.

나 : 네.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쌤 : 여자가 꼭 예뻐야 해?

나 : 기왕이면 예쁜 게 좋겠죠.


이때 쌤께서는 밸런스게임 문제를 내셨다.

아니, 밸런스게임이라고 여기셨겠지만, 당시 젊었던 나로서는 이런 건 양자택일의 딜레마를 가져올 수준은 아니었다.


쌤 : 그러면 너는 다음의 두 명 중에 배우자로 누굴 선택할래?

나 : 네?

쌤 : 머리가 되게 좋고 현명하지만 못생긴 여자와, 예쁘지만 머리가 나쁘고 어리석은 여자 중에.

나 : ....

쌤 : 자, 누구를 선택할래?

나 : 음... 구태여 선택을 하자면... 아무래도 예쁜 여자 쪽이...

쌤 : 그래? 왜?


이유를 물으시는 쌤께 나는 나름의 합리적인 답변을 생각하여 말씀드렸다.


나 : 후자의 예쁜 여자는 공부를 시키면 됩니다. 그러면 조금은 나아지겠죠.

쌤 : 그래? 그렇다고 치고, 그럼 전자의 여자는?

나 : 일단... 성형수술에는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쌤 : .....

나 : 그리고 무엇보다...

쌤 : .....

나 : 현대의학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그때 쌤께서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미동도 없이 딱 한마디만 던지셨다.

그렇게 나는 신이 되었다.


이런, 뷰웅~신...




죽기 전에 이런 사랑을 해 보고 싶다고 했나?

흠, 그래. 이해한다.

이해하고 말고.



아름다움은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줄 테니까. 아니, 미적 가치 앞에서 자신의 관용과 인내는 영원할 수 있으리라 착각할 테니까.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그래, 미인 앞에서라면 '언제나 몇번이라도' 참을 수 있을 것 같겠지.

문득 이런 근거 없는 망상이 스친다.

'이런 사랑을 해 보고 싶다'라거나, '이런 게 찐사랑이지'하는 한 줄 감상평들 중 어떤 것은, 어쩌면 젊은 날의 내가 작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제대로 미치는 게 사랑이라고?

미치는 것도 능력이라고?

"꽃을 꺾기 위해서 가시에 찔리듯, 사랑을 얻기 위해 내 영혼의 상처를 감내한다.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므로."라고 쇼팽의 연인 조르주 상드는 말했다. 더이상 젊지 않은 나는 되묻는다.

성격장애라는 특별한 가시에 찔려도요?


스크린샷 2025-12-06 오후 6.00.40.png 아이브의 <Love dive> 가사 일부.


원하면 '감히' 뛰어들어라.

영혼이 광기의 불에 홀랑 타 버리더라도.

베티와 조그가 그랬던 것처럼.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처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니까.




사족 :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사견


-수년 전에, 왜 그랬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X-와이프(당시에는 그냥 '와이프'. 이하 '부인님'으로 통칭)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말야, 그래도 한때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꽤 좋았거든?"

"흥." 콧방귀를 뀌시는 부인님.

"정말이라니까. 약관의 나이에는 이런 적도 있었어." 나의 말을 자르고 부인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람둥이였다고?"

"아니, 그런 게 아니고..." 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다. "그때 세 명의 여자 사이에서 누구를 사귈까 걱정했었다니까!"

부인님께서 시큰둥하게 말씀하셨다.

"인기가 좋았던 게 아니라 만만해 보였던 거겠지..."


가끔 그날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성별에 관계없이, 내 주변에는 왜 (특히 내현적) 나르... 들이 많았던 걸까?

사람을 보는 내 관점이 문제였을까?

나르..의 정의에 대한 내 범주가 너무 넓어서?

하지만 귀납적 사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절친인 순발(가명) 군 말마따나 나는 그런 류의 여자를 끌어들이는 '만만함에의' 재능(?)이 있었던 걸까?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자청하여 나르... 의 밥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불에 데어 본 자만이 그 뜨거움을 안다.


-세상 일반의 충고 :

'내 연인이 경계선...., 또는 나르....면 어떡하냐'고?

그냥 튀어라.

바지 챙길 시간이 없다.

빤쓰런이 답이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마.

(너에겐 빛나는 오른손이 있다.)


Boston, <Don't look back>. 1978년 작.


......그러나 어떻게 조그가 베티를 떠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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