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사람들이 모두 누워 있고 나도 그들 중 한 명인데 망나니가 순서대로 누워있는 사람들의 목을 치고 있다
-누군가 썰매를 타다가 미끄러지며 떨어진다. 그러다가 목이 몸뚱이에서 분리가 된다
기타 등등...
어느 날, 의문이 생겼다.
공포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대체 왜?
그리하여 심리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생겼다.
무엇보다 무의식이라는 것을 단순한 심리적 억압의 쓰레기장이 아닌 새로운 가치 창조의 장으로 보는 융의 심리학에 꽂혔다. 최초로 본 그의 저서로 인하여 말이다. 그 제목은,
사람과 상징(현 제목은 '인간과 상징')
강추.
내가 꾼 꿈 중에 가장 무서웠던 것은 이렇다.
나는 K대 재학생이다.
뭐, 군인이라는 얘기다.
김 병장 이 쓰벌놈(이 인간은 실제로 군 시절에 만난 악질 인간 중 한 명이다)이 내게 지시를 한다. 뭔가를 비닐 재질의 포장지로 꼭꼭 싸매라는 거다. 그 '뭔가'는,
사람 시체다
김 병장과 나는 부대의 재래식 화장실로 가서 그것을 유기한다. 쉽게 말해 똥통에 빠뜨린 거다.
시간이 지난 후,
연병장 한가운데에 우리가 유기한 그것이 놓여있다.
군 경찰(아마도 헌병대)이 그것을 찾아낸 거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X 됐다
그리고 눈을 떴다.
그런데 대체 뭐지? 이 기시감은.
잠에서 깨도 그 일이 내가 과거의 어느 시점에 실제로 행했던 일처럼 느껴지는 거다!
그날 아침의 그 꺼림칙한 느낌은 잊지 못한다.
해석을 해 본다.
1) 전생의 기억이다
2)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있다
3) 내 자아가 숨기고 싶어 하는 나의 사악한 측면(그림자)을 의미한다
아무래도 3번 같다.
그러니까 무의식의 메시지는 아마도 이런 의미겠지.
'너는 네 그림자를 감추고 싶어 함(똥통에 처박고 싶어 함). 하지만 그런다고 네가 온전해지겠삼? 너는 그림자가 드러나는 것ㅡ의식화되는 것(그러니까 군 경찰에 의해 다시 끌어올려지는 것)ㅡ을 두려워하고 있음. 근데 그림자를 꼭꼭 숨긴다고 네가 온전해지는 것은 아님. 김 병장에게 그림자 투사 그만하고, 얼른 그 시체를 건져서 끌어안으삼.'
헐...
똥 묻은 시체를?
문득 <그리스인 조르바>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의 악마에게 이름을 지어주라는.
기독교에서는 죄를 억압한다. 그 방식은 대속에 대한 끝없는 환기와 죄의식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다고 죄성이 사라질까?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그러하듯 죄성, 또는 죄에의 의지라는 에너지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의식에 억압될 뿐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심리학의 다음과 같은 공리가 있다.
억압된 것은 언젠가 반드시 분출된다
이 심리학의 명제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친절하고 상냥한 내가 간혹 헐크로 변신할 때가 있다. 근래 이 헐크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마돌이'라고.
마돌이가 튀어나올 때마다 반성한다.
내가 그동안 너무 가면을 쓰고 살았구나.
사실 나는 카인인데 아벨의 가면을 쓰고 살았구나.
글타.
중2병자 마돌이는 억누르면 언젠가 또 튀어나올 거다.
그러면 내게 호감을 가진 여성이 '어머, 저 ㅅㄲ 그렇게 안 봤는데 지금 보니 지랄병이 있었네'하며 나에 대한 관심을 철회하겠지.
할 수 없다.
가끔씩 마돌이에게 먹을 것을 주어 살살 달래는 수밖에는. 마돌이를 죽여 버리라고? 그럴 수는 없다.
이런 말이 있다.
그림자를 없애려면 빛을 없애야 하는데, 그러면 더 어두워지게 된다
헤세의 <데미안>을 보고 생각한다.
싱클레어처럼 살래?
크로머처럼 살래?
데미안처럼 살래?
이 '데미안' 말고......
뭐, 소위 분석심리학에 관한 이런저런 저서를 봤어도 융 박사처럼 전방위적인 심도 있는 연구를 할 수준은 못되었던지라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사실상 '검증'의 수준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믿음으로 봐야 옳을 거다. 이는 헤세가 <데미안>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믿음.
인간적인 온전함(완전함이 아니라)을 구하기 위해서는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는 사실 ㅡ대극을 받아들여라
그러니까 내 안의 사악한 그림자인 '(악)마돌이'가 가끔씩 헐크나 하이드 씨처럼 뜬금없이 튀어나와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기 전에 적당히 일용할 양식을 주어 달래라는 것. 아벨만 취하지 말고 카인도 네 일부로 받아들이라는 것. 카인을 일방적으로 억압하지 말고 숨통을 틔워주라는 것.
억압된 것이 무의식에 쌓여 히스테리의 원인이 된다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하지만 융은 한 발 더 나아간다. 그 무의식이라는 쓰레기통에서 황금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다시 말해 '마돌이'가 나의 반쪽을 온전하게 채워준다는 것.
유.... 로버트 존슨? (영화 <넘버 3>중에서.
요셉은 아우구스티누스 황제의 인구조사에 응하기 위해 고향인 나사렛을 떠나 만삭의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을 향한다. 도중에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예수를 순산한다. 이에 대해 다수의 신학자들은 역사적 팩트가 아나리는 주장을 한다. 왜냐하면 아우구스티누스 황제가 인구조사를 실시했던 년도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년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경 기자들이 구태여 그런 픽션(?)을 가미한 것은 구약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는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해야지, 나사렛 따위의 듣보잡 동네에서 탄생한다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역사적 팩트를 따지는 게 중요할까? 그보다는 나사렛이나 마구간의 상징에 대해 숙고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 상징이 의미하는 것은 아마도 이것일 테다.
네 황금은 (무의식적인) 마구간에 있지 (의식적인) 궁궐에 있지 않다
[개신교는 신자들의 죄의식을 고도로 강화시키지만 그것을 해결해 줄 장치는 갖고 있지 않다. 개신교 신자는 고해성사 같은 사면이나 속죄를 위한 성사를 갖고 있지 않으며, 혼자서 자기 죄를 짊어져야 하고, 늘 자신의 양심을 날카롭게 할 수 있도록 긴장을 지속해야 한다.
이러한 긴장은 사람들 속에서 무의식을 억압하게 하고 그림자를 더욱더 짙어지게 한다. (...) 신경증은 언제나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과 관계가 있다. 그런 환자가 치유를 받으려면 의식된 인격과 그림자가 함께 살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림자를 단순히 억제하는 것은, 두통을 없앤다고 머리를 잘라버리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