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을 읽고 깨달았던 것

ㅡ푸른 산호초

by 지얼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를 불쌍하게도 나는 혼자 극장에서 봤다.

본 영화 덕분에 최초로 일본어를 익힐 수 있었다.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겡끼데스


이후 많은 일본영화들 덕분에 더 많은 일본어를 익힐 수 있었다. 예컨대 기모찌이이 따위들.

그리고 이 영화 덕분에 마츠다 세이코라는 가수의 이름을 알았다.

그리고 몇 달 전, 뉴진스의 하니가 도쿄돔에서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불러서 이 노래와 가수는 다시금 인구에 회자되었다.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CD가 말썽을 부려 도무지 멈춰지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음악을 독일어에서는 '귀벌레(Ohrwurm)'라고 한다. (...)

귀벌레는 아주 성가실 때가 많은데, 왜냐하면 본인이 전혀 좋아하지 않는 음악이 귀벌레가 되는 경우가 아주 흔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프 드뢰서 <음악 본능>중에서


하지만 나는 <푸른 산호초>를 좋아하지 않는다.

솔까 다소 촌스러운 노래라고 생각한다.

좋아해 마지않는 일본영화 <러브레터>에서 (남자) 후지이 이즈키가 산에서 조난당했을 때 부르던 노래라고 해도 이 노래에는 정이 안 붙는다.

그런데 하니 때문에 이 노래는 '귀벌레'가 되고 말았다


아~와따시노 코이와~

미나미노 카제니 놋테 하시루와~


밥을 먹고 있어도,

아~ 와따시노 코이와~

드라마를 보고 있어도

아~와따시노 코이와~

똥을 싸고 있어도,

아~와따시노 코이와~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와따시노 코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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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벌레 노래 <푸른 산호초>를 부른 마츠다 세이코의 프로듀서는 브룩쉴즈 주연의 영화 <푸른 산호초>를 보고 노래 제목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하였단다.

나는 중딩 시절에 앞집 아주머니께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주셔서 이 영화를 봤다(아니, 대체 이 야시시한 영화를 왜...). 이 영화를 남주의 입장에서 보면 대충 이런 줄거리다.


무인도에서 여신과 살기


유사품(?)으로 피비케이츠 주연의 <파라다이스>라는 영화도 있었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이후 내 밸런스게임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무인도에 있는 너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1) 무인도에서 평생 모태솔로로 지내는 대신 세상의 여러 맛있는 음식은 실컷 먹기

(2) 무인도에서 평생 된장찌개만 먹으면서 사는 대신 장원영과 살기


이런 밸런스게임은 친구들의 선택장애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하여 그들로부터 선택지를 늘려달라는 요구를 받곤 했다.

(3) 무인도에서 된장찌개만 먹는 대신 블랙핑크 멤버 전원과 같이 살기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조상들이 서양인들보다 선구적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서양인들은 기껏해야 2)를 바탕으로 해서 픽션을 만들었지만(푸른 산호초, 파라다이스) 우리 조상은 그보다 몇백 년은 앞서서 3)에 해당되는 작품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 위대한 조상님은 바로


서포 김만중


선생님 되겠다.

고딩시절, 김만중 선생의 <구운몽>을 배웠을 때 의아한 생각이 들었더랬다. <구운몽>은 호색이나 부귀영화 같은, 인간이 추구하는 세속적 가치들이 기실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라고 배웠다. 내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것이었다. '팔선녀와 지내는 성진이의 인생이 일장춘몽이라면, 독수공방으로 일관하는 그 누군가의 삶은 일장춘몽이 아니란 말인가? 어차피 둘 다 덧없다면, 그래도 팔선녀와 함께 한 성진의 삶이 차라리... 아니, 훨씬 더 낫지 아니한가?'


솔로몬 왕이 썼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솔로몬 이름을 사칭한 다른 이가 썼다는 주장도 있)는, 구약성경 중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니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구시렁거림으로 유명하다. 만일 솔로몬이 옆에 있다면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며 이렇게 묻고 싶다.


어차피 헛된 인생이라고?

너 같으면 먹을 게 없어 진흙으로 쿠키나 구워 먹는 아이티 어린이로 '헛되이' 살래, 아니면 천 명의 궁녀를 거느리고 매일 고기를 뜯으면서 '헛되이' 살래?

진흙 쿠키를 먹는 아이티 어린이에게 다가가서 함 물어보자. "진흙을 먹고살다니, 안 됐구나. 넌 괜찮니?"하고. 그러면 그 아이티 어린이가,


괜찮아요 진흙을 먹든 간장 반찬으로만 밥을 먹든 아니면 뷔페 음식을 먹든 어차피 인생은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허무한걸요


라고 대답할리가 만무하잖아?

고로 고딩이 때의 내 결론은 이랬다.


ㅡ성진이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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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nf4VHSAGVw?si=IuTa0KBSgggpNq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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