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ㅡ사랑은 연필로 써라

by 지얼



넷플릭스를 통해 이와이 슌지 감독의 2020년 작 영화 <라스트 레터>를 보았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1995년 작 <러브레터>를 닮았다.

한 줄 평은 이렇다.


괴로울 때는 추억으로 존버


66년 생 이와이 슌지 감독은 여전히 젊은 것 같다. 학창 시절과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는 것을 보면.

지난날들은 뻥튀기나 공갈빵과도 같다. 덧칠되고 윤색되어 부풀려진 과거를, 실은 그다지 대단한 맛이 아님에도 틈날 때마다 야금야금 씹어먹는 것을 보면.

감독은 삶이 힘들 때면 학창 시절과 첫사랑을 떠올리며 존버하라는 낭만적인 얘기를 하는 듯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문득 전영록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혹자에게는 기억보다는 망각이 축복일 테니.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언젠가 지우개로 지워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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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킥을 백 번 해도 마땅한 꿈을 꾸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전화기 앞에서 오래전에 헤어진 제니(가명)를 생각하며 망설이고 있다. '전화를 할까 말까…'하며 고민하고 있는 거다.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건다. 그녀가 받는다. "나야."하고 말했으나 묵묵부답이다. 대답이 '…'인 것으로 보아 전화하는 이가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다.

잠시 후 그녀가 대답한다.

"응…"

반감의 답변인지 반가움이 반영된 당혹감의 답변인지 모호하다. 아마도 애증의 느낌이었으리라.

그런데 꿈속의 븅딱은 그 짧디 짧은 대답에 존심이 상했는지 황당한 개소리를 내뱉고 만다.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전화한 거야."

애써 지가 먼저 연락해 놓고 연락할 생각이 없는 상대방에게 '연락하지 말라'라니, 이 무슨 황당무계한 헛소리인가. 이미 피차 연락을 끊은 지 오래된 상태인데.


잠에서 깨자마자 '아, 꿈이었구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꿈속에서의 삽질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이불킥을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꿈을 통해 깨우친 바는 이렇다.


1. 나는 제니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

의식으로서의 나는 나의 태도와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

2. 그럼에도 나는 (꿈속에서) 제니에게 연락하고 말았다 :

무의식으로서의 나는 나의 태도와 생각에 대해 통제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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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 인간'이 되기라도 한 듯, 혹은 오래간만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기라도 한 듯 오전 6시에 눈을 떴을 때 문득 <사랑의 기쁨>이라는 곡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게 다 저 빌어먹을 꿈 때문이다.

고등학생시절 음악 교과서에도 수록된 바 있는 이 곡의 가사를 처음 접했을 때 참으로 인상적인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가사 내용은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인데 제목은 '사랑의 슬픔'이 아니라 '사랑의 기쁨'이라니.

한때는 내 청춘 시절의 고별가였으나, 이후 음악학원에서 화음에 관한 레슨을 할 당시 'V7화음의 셋째자리바꿈(V2)을 가장 멋지게 구현한 곡'으로 실컷 애용하다가, 보다 나중에 롤랑디앙(Roland Dyens)의 기타 편곡 악보를 접하고는 '악곡 여기저기 전반적으로 손가락을 괴롭히는 곡'으로 취급했던 곡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생각난 김에 오래간만에 책장 구석에서 썩어가던 악보를 꺼내어 연습해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10년 전에 어려웠던 곡은 작금에도 어렵다. 진보 없는... 아니, 오히려 퇴화된 듯한 세월이다.

이 노래를 개사된 가사로 불렀던 건 고등학생 시절이고, 기타로 암보까지 하며 연주했던 건 불과 십 년 전이다. 그런데 가사는 전부 기억에 남아있음에 반해 연주는 95% 이상 잊혔다. 하긴, 며칠 전에 암보를 끝낸 곡도 대략 나흘 정도만 손을 놓아도 잊힐 판인데 하물며 십 년이야.... 확실히 서른 살 이후부터는 암보의 백지화가 가속화되는 느낌이다. 새로운 곡 한 곡을 암보하면 그전에 암보한 두 곡을 잊어버린다.


책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어떤 책을 꺼내어 본다. 사놓고 안 읽은 책인지 서너 페이지를 읽는데 내용이 완전히 생소하다. 그러다가 문득 밑줄 쳐 놓은 걸 발견하곤 당혹스러워한다.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밑줄까지 그어 놓은 문장조차 처음 접하는 듯 완전히 생소하다니. 이것이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말한 '문학적 건망증'이란 말인가? 그는 이렇게 썼다.
"모든 것이 무(無)로 와해되어버린다면, 대관절 무엇 때문에 무슨 일인가를 한단 말인가?"
웃프다. '시루 밑으로 물이 다 빠진다고 해서 콩나물에 물을 안 주나요?'라는, 어떤 후배의 말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축적보다는 상실이 더 잦은 작금에는 세월이 갈수록 '망각의 슬픔'을 느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망각이 오직 슬픔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망각은 자유라고.

'망각의 기쁨'에 대해 언급한, 이윤기 선생의 글이 생각난다.


[영어 사전에서 단어 찾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온 나에게 사람들은 '영어 단어를 엄청나게 많이 알고 있겠지요' 하는데 그게 그렇지 않다. 새로운 단어를 익히면 내 기억이 전에 알고 있던 단어를 하나씩 몰아내기 때문이다. 재앙인가? 아니다. 나는, 내 기억이, 양적으로 폭주하는 기억량으로부터의 자위 수단으로 건망의 기능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건망이 그렇듯이 치매도, 지나치지 않으면 오히려 축복이겠다. 이승에서 겪은 일 다 기억하고 어떻게 떠날 것인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은 행복했던 시절의 일을 하나씩 잊어버리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저승 앞에 망각의 강 레테가 있다고 믿었다.
사랑하던 사람 이름 하나씩 잊어버리는 것은 재난이 아니라 축복이겠다.

ㅡ이 윤기 <무지개와 프리즘> 중에서 ]


그렇다면 아직까지 나의 인생은 재난 상태인 거다.

사랑했던 이들의 이름은 죽어도 안 잊히니까.



스크린샷 2025-01-01 오후 7.37.08.png QWER의 뮤비 중에서



삶의 낭비로서의 무의지적 기억.

망각의 대상을 선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https://youtu.be/Z0DQxI3KM7o?si=CZATojsJ7nuOuyEE

첼로 연주로 듣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곡,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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