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가 부른 <No surprises>라는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톰 요크의 세상과 단절한 듯한, 맥 빠졌지만 편안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 감미로운 발라드에서 흔히 라디오헤드가 들려주는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우울함'의 정서보다는 세상의 뿌연 모습을 새삼 발견한, 누군가의 '허무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놀랄 것 없어. 세상은 원래 다 이런 거니까"이라고 친구가 툭 내뱉은 조언이 엄청난 허무감으로 크게 작용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놀랄 것은 없다. 세상에게 의미를 부여하던 그 날카로운 이빨을 젊을 때부터 뭉뚱그려지게 하면 나중엔 회복할 수 없이 더 무뎌져서 편하게 식사를, 거추장스러운 생각 없이 세상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A job that`s slowly kills you
Bruises that won`t heal
You look so tired and unhappy]
어느 블로거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No.23의 2악장 <아다지오>의 정서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 슬픔을 극복하고 체념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또 애절한 느낌이 든다."
'슬픔의 극복'과 '체념'이 한순간에 공존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하여 '체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더니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단다.
1.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
2. 도리를 깨닫는 마음
체념이라는 말은 단순히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원망(소망) 충족에의 불가능성은 항시 있으므로 그것이 당연하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
이승우 작가의 소설 <사랑의 생애>는, 사랑에 대한 단상을 모은 에세이에 가까운 것이 마치 알랭 드 보통의 그것과 비슷하다.
연애, 혹은 애별에 관한 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라면 딱히 새로울 것도 없을 성찰일 수도 있겠지만, 공감을 하는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공감이 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창세기의 첫 문장은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이다.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있는지,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뜸 그가 한 일을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의 첫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존재가 행위에 앞선다. 존재하지 않는 이가 행위할 수 없다. 창조의 행위를 하신 이는 이미 있는 자이다. 신은 일한다. 일하는 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은 신의 존재 근거나 존재 방식에는 관심이 없다.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 사랑하느라 바쁜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의 근거나 방식이 어떠한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살지 않는 자가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삶을 하고' 사랑을 하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정의되지 않는 것이 신이고 삶이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의 의미 따위는 묻지 마라.
그냥 살아라.
작년에 친구 S가 선물로 준 이름 모를 식물이 한 때의 사망 고비를 넘기더니 지금은 무성하게 잎을 틔운다. 가지치기를 좀 할 걸 그랬나...마치 덥수룩한 내 머리 같다.
무심히 바라보다가 마음속으로 묻는다.
'이건 뭐,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꽃이라도 피기를 하나....대체 너의 존재 이유는 뭐냐?'
이윽고 그 식물로부터 답변을 듣는다.
그러는 넌?
이런 류의 이유, 다시 말해 '존재의 이유'를 묻는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
'의미'를 묻는 것을, 아니 '의미' 자체를 버려라.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것이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다.
[필립은, 끝없는 노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에게 삶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저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듯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것이리라. 이 모든 것이 헛된 것이려니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필립으로서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마다, 생각되는 것마다 그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것은 즐거운 분노였다. 삶이 무의미하다면 그것을 별로 두려워할 것도 없으니까. 필립은 이상한 힘을 느끼며 삶과 마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