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곡간장(九曲肝腸):깊게 사무친 마음속을 뜻한다.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51. 구곡간장을 녹이는 시간들
“체질과 침술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유림은 생각해 보고 답변을 주겠다고 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승학은 벌써 일주일째 대청마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일 년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구곡간장이 녹는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느꼈다.
일주일이 넘어가자 승학은 자신이 유림의 역린을 건드린 것 같았다. 사부가 당부한 말을 어긴 자신이 조금은 자책이 되었다. 하지만 승학으로서는 정도를 지켜야 했다.
승학이 낙담하고 대청마루에 앉아 있을 때 오범석 원장이 찾아와서 다짜고짜 질문부터 했다. 그는 뭔가 신기한 것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승학은 심기가 불편한 참에 그런 질문이 귀찮았다.
“공부를 많이 하셨으니까, 잘 아시잖습니까? 저는 잘 모릅니다.”
“제 아버님의 친구분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단군 의통의 전수자시라고요.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승학은 그가 그렇게 말하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저는 사부님을 모시는 제자 일뿐입니다.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저한테 한수만이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그의 심성은 착한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승학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시면 제가 아는 범위에서만 질문하시는 것에 대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공부한 사상체질에서는 체질과 침술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동무 이제마 선생님도 침을 놓으신 적이 없으시고요. 그런데 선생님이 연구하신 28 체질의학에선 침술이 매우 중요하다면서요.”
“사상체질에서는 뇌에 대한 내용도 없습니다. 당시 의학의 수준으로는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뇌의 기전이 없으면 성격이나 특성, 침술은 사실 언급하기 힘듭니다. 체질의 장부가 영향을 주긴 하지만 그러한 것은 모두 뇌의 생리적 기전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그러신가요? 어떻게 해서 그런가요?”
“현대과학으로 성격이나 특성 등이 뇌의 기능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상식이잖습니까? 그렇다면 침술 역시도 뇌의 기전을 움직이는 원리입니다. 뇌 중심의 체질의학이 아니면 침술의 원리를 찾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꼭 그렇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침술의 과학화를 증명하는 방법은 뇌의 전기나 전자작용과 반응으로 합니다. 수많은 논문들이 뇌와 혈자리의 관계를 비교합니다. 실제 침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침이 뇌의 기전을 움직여서 효과가 나게 합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갑니다. 저도 많은 침효과의 논문을 봤지만 그렇더군요. 모두 뇌로 증명하는 것으로 나와 있더군요.”
“최신 논문에서도 다 그렇게 침 효과를 증명합니다. 침효과와 뇌는 절대적인 관계입니다. 뇌신경체계와 몸의 신경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침 효과는 막힌 혈자리를 뚫어서 효과가 나는 것 아닌가요? 저는 혈자리에 침자극을 주게 되면 오장육부에 키보드처럼 신호를 전달하는 기전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존 한의학 서적에는 그렇게 쓰여 있지요. 그렇다면 그 신호를 몸이 몸으로 전하신다는 말씀인가요?”
“저는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몸에서 몸으로 전달은 못합니다. 모든 전달은 뇌의 신경체계가 하기 때문입니다. 뇌에서 모든 신경을 통제합니다. 모든 침은 뇌에서 신호를 전달받고 치료물질을 그곳으로 보냅니다. 뇌신경의 명령체계를 통해서 침이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침을 놓으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바로바로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고요? 그것이 가능한가요?”
“뇌의 신호체계가 전달되는 시간은 순식간입니다. 바로 확인이 가능하고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좀 말씀해 주십시오.”
“모든 사람은 체질에 따라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습니다. 체질의 메커니즘에 따라 침을 놓으면 바로바로 신통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침을 좋아하는 이유도 효과가 빨리 나타나기 때문이지 않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저도 체질침을 좀 배우면 안 될까요?”
“그건 사부님한테 여쭤 보십시오. 저는 사부님한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승학을 보며 말했다.
“원장님이 돌아오시려면 아직 한참 멀었잖습니까? 가끔씩 제가 찾아와서 가르침을 좀 청해도 될까요?”
“그거야 당연하지요. 같은 하늘아래 거주하는 인연이니, 교류를 하면 좋겠지요.”
그는 아쉬운 표정을 하며 돌아갔다. 승학은 그가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져 들어갔다.
승학은 죽음의 경계선까지 갔다 온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심각한 병증으로 죽음 가까이까지 간 적도 있고 군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계곡 위에서 내려오는 군용차가 브레이크 고장이 났을 때였다. 그때 그 차에 탄 군인들이 모두 죽음을 예감했다. 운전병이 울었고 뒷칸의 병사들도 큰 소리를 치며 울부짖었다.
그런데 승학 혼자서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하려 했다. 일어서지도 울부짖지도 않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차는 계곡에 빠지지 않고 가까스로 평지에 도착했다.
승학은 그 정도로 삶과 죽음에 대해 연연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림의 소식이 끊긴 그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간과 창자가 무려 아홉 번이나 굽어지는 구곡간장(九曲肝腸)이 느껴졌다. 승학은 깊은 산속에서 홀로 절대고독을 넘어선 자신이 이렇게 나약해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을 멈추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승학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영혼이 떠나버린 느낌을 받았다 승학은 저절로 심경을 토로한 글을 썼다.
그대를 향해 떠나버린 내 영혼
내 안에 있는
영혼이 떠나버린 것일까?
텅 빈 육체를 지키는
불이 붙은 심장은
누구를 향해
이토록 박동하는가?
이미 그대 안으로
떠나 버린 나는
빈껍데기만 남아있다.
승학은 깊은 한숨을 쉬어도 가슴이 저미는 통증을 느꼈다.
높은 파도와 같은 감정이 쉼 없이 밀려왔다. 승학은 대청마루에 앉아서 멍하니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밤이 깊어지도록 승학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유림에 대한 생각이 우주 끝까지 퍼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밤이 깊어가자 별들이 하나씩 생겨나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아득하게 별이 보이고 은하수가 금빛을 뿌린 듯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