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체질의학 소설> 오매불망

오매불망(寤寐不忘)은 자나 깨나 잊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by 백승헌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52. 엇갈리는 시간과 애타는 마음


“무슨 연유로 수심이 가득하십니까?”

승학은 기다림의 시간을 못 견디고 봇짐을 사서 계룡산으로 갔다. 책을 집필하거나 깊은 생각을 정리할 때마다 용문폭포를 지나 신흥암을 찾았던 것이다. 승학은 일주일 정도를 그곳에서 머물 예정이었다.

수선제를 자주 찾아왔던 주지스님이 승학을 보며 대뜸 한 말이었다.

“스님, 제가 수심이 있는 듯 보이시는가요?”

“그렇지 않소? 아니면 왜 이곳에 봇짐을 매고 올라왔겠소.”

그는 그렇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승학은 내심을 들킨 것 같아서 대답 없이 멋쩍게 같이 웃었다. 그는 다시 승학을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심장과 간의 열이 저렇게 오른 것을 보면 필경 상사불망(相思不忘)할 일이 있겠소.”

“스님. 상사불망이라 하면 ‘서로 그리워하여 잊지 못함’을 뜻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일은 아직 없습니다.”

“인간의 심장은 혼자서만 불타지는 않소. 상사불망과 상사병은 다르다오. 간혹 상사병에 걸려 혼자 심장의 불길로 죽어가는 경우도 있소. 그런 경우는 일종의 집착증이고 정신병이오. 한데 유 선생 같이 정신이 멀쩡한 분이 저렇게 심장과 간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면 그것은 필경 상사불망이 아니면 뭐겠소.”

그가 한 첫말은 뜨끔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한 상사불망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가 승학을 보고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만은 신기했다.

“한데 스님, 무엇을 보고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제가 간과 심장의 열이 엄청난 것을 알고 있지만 스님이 저를 보고 그렇게 바로 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청허선사님과 지리산에서 오래 거주하셨으면서도 그것을 모른단 말이오?”

승학은 웃으며 말했다.

“저야 오래 연구를 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님이 아신다는 것이 대단하시다는 뜻입니다.”

“좌측 눈은 심장이고 우측 눈은 간장의 기운이 모인다는 것은 기본 아니겠소. 지금 그 눈이 충혈되어 있고 열기로 가득 차 있소 당연히 간과 심장의 열기가 가득하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소.”

승학은 웃으며 말했다.

“역시 스님의 학식은 고명하십니다. 모르시는 것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어허, 젊은 사람이 늙은이를 놀리는 것이요. 뭐요.”

그는 다시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마음이 청정해질 때까지 쉬었다 가시오. 내 집처럼 생각하고 편히 계시오.”

그는 보살을 불러 승학이 기거할 방으로 안내하라고 시켰다. 승학은 방에 봇짐을 벗어놓고 산으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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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암은 계룡산의 금계포란형 명당터에 자리한 유서 깊은 수행터였다.

일찍이 조선시대 대도인으로 불리는 송구봉 선생이 수행했던 동굴도 있었다. 그는 국선풍류의 도맥을 조선조에 중광 시킨 대도인이었다.

승학은 그 구봉동굴에서 명상을 하며 청정지심을 유지하려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승학은 계룡산에서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다.

속세에서 어떤 일이 있었든지 산속은 청정한 기운이 흘렀다. 이상하게 산속에서 조용히 혼자 있으면 마음이 맑아졌다. 승학은 차츰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겉으로 타오르는 불길은 잡혔지만 내면으로 파고드는 정염은 깊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계룡산의 높은 봉우리를 올라도 내면 깊숙이에는 유림이 있었다.

어디를 가도 그녀는 이미 승학의 가슴속에 들어와 있었다. 혼자 이면서 혼자가 아닌 느낌이 일어났다.

그녀와 감정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승학은 마음을 강하게 다 잡으며 다시 천고비전을 펼쳤다.

열정에 휩싸일 바엔 차라리 유림의 병에 대한 몰입을 했다. 그녀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해도 다시 기회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승학은 유림과 연결된 느낌은 있었지만 동시에 단절감도 느꼈다.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강력한 저항을 받는 그런 에너지가 감지되었다. 승학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냉철해지기 위해 몰입을 더욱 강화했다.

‘사부님의 분부를 지키는 것이 최고 우선이다.’

승학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그녀의 병증을 생각하며 연구에 몰입했다.



하루는 승학이 계룡산을 바라보며 천진보탑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주지스님이 다가와서 말했다.

“이제 청정지심을 많이 회복하신 것 같소, 그런데 속불은 여전히 깊어져서 어떻게 하시오?”

이번에도 승학은 깜짝 놀랐다.

“스님 그것은 어떻게 아시는지요? 정말 신통하십니다. 자꾸만 제 속을 다 들여다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무릇 의통이라고 하면 심안이 열려야 하지 않겠소. 유 선생은 아직 심안이 안 열린 것 같소.”

“예, 맞습니다. 저의 사부님이 아직 열릴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아. 청산선생이 그리 말했으면 맞을 것이오.”

“저는 아직도 부족한 연구가 많아서 심안이 열리는 수행은 나중으로 미루었습니다. 사조님도 말씀하시길, 심안부터 열면 깊이 있는 연구를 게을리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맞는 말일 것이오. 한데 오늘 유 선생을 보니, 빨리 수선재로 돌아가 보시오. 좋은 소식이 있는 듯 하오. 여기 올 때와 달리 맑은 기가 흐르니, 이제 흔들림은 없을 것이오.”

“예, 스님 알겠습니다. 그간 아주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언제든지 마음이 동하면 오시오. 내가 기다리지는 않겠지만 오면 반갑게 맞이하겠소.”

그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승학은 그의 말을 듣고 다시 봇짐을 매고 수선재로 향했다. 올라올 때와 달리 내려갈 때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심장의 열화가 활활 타오르지 않게 되어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었다.



승학이 수선제에 돌아와서 죽청당으로 가자 유림이 대청마루에 앉아 있었다.

승학은 그녀를 보자 안도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가슴이 타는 느낌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승학을 보는 순간 반가운 표정과 화난 표정을 교차했다. 그녀는 마침내 화난 표정으로 변하며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이렇게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승학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림이 다시 말했다.

“여기 대청마루에 일주일간 내내 앉아 있었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사람을 오래 기다린 적이 없어요. 덕분에 몸과 마음이 다 아파요.”

“그래요. 저는 일주일 이상을 기다라고 기다리다 오지 않으셔서 계룡산으로 간 겁니다. 제가 먼저 오래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래요. 제가 집에 볼일이 있어 잠시 다녀오느라 그랬습니다. 그때 바삐 간다고 말씀 못 드리고 가서 죄송해요. 하지만 늘 여기 계신 줄 알고 있어서 참 당황했어요.”

“사부님 오실 때까지 지키겠다고 약속을 해서 어딜 떠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도 생각할 것이 조금 있어서 계룡산 신흥암에 다녀왔을 뿐입니다. 시간이 엇갈린 것 같습니다.”

그제야 유림은 안정을 찾고 다시 예전의 차분한 성품으로 돌아왔다. 승학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

“저를 왜 그렇게 기다리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녀는 승학을 힐긋 보며 말했다.

“산에서 도를 많이 닦으셨다고 들었어요. 혹시 저한테 무슨 비법 같은 것을 사용하신 것 아닌가요?”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자세히 말씀하세요.”

“선생님 만나고 나서부터 이상하게 제 불안감이나 불면증이 없어졌어요. 대신에 자꾸만 선생님 생각만 하게 돼요.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된 거죠?”

승학은 대반전에 당황했다. 유림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몸이 좋아졌다거나 생각이 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인간의 몸과 마음, 영혼이 신비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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