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이병(心有二病) 마음이 주인 노릇을 못하면 병이 된다는 뜻이다.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54. 감정의 억압과 통제가 병을 만든다.
“제가 내면에 감춰둔 이야기를 다해도 되나요?”
다음날 아침 일찍 유림이 승학을 찾아와서 말했다. 그녀는 밤새 잠을 못 잔 것 같았다. 얼굴이 부스스하게 보였고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다. 승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게 무슨 이야기든 하셔도 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아무도 없는 숲에서 말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제 관심은 사부님의 분부 말씀을 지키려는 일심 밖에 없습니다.”
계룡산에 다녀온 이후 승학은 열정이 내면으로 잠복되어 침착성을 유지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요?”
“제 관심은 유림 씨의 사생활이 아닙니다. 억압과 통제를 받은 것과 어떤 쇼크를 언제 어떻게 받았는가 하는 병의 원인입니다. 체질의학에서 그 원인을 알아야 뿌리치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억압과 통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게요. 저의 아버님은 저를 무척이나 사랑하세요. 그런데 그 사랑이 오히려 저를 숨 막히게 해요. 어릴 때부터 모든 생활이 아버님의 프로그램에 따라 정해져 있었어요. 저의 개인적인 삶은 없고 아버님의 프로그램만 있었죠.”
“그래요. 체질적으로 자유분방하며 감성적인 기질에 그런 억압과 통제는 심장기능을 많이 약화시킵니다. 그런 억압이나 통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유림은 한숨을 쉬고 심호흡을 한 후 다시 말했다.
“보통의 상태와는 달라요. 너무나 엄격해서 숨이 막혔고 괴로웠어요. 어릴 때부터 항상 학원과 개인지도, 악기 레슨이 루틴이었어요. 그것을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몸이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 고등학교 때부터였지 않습니까?”
유림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어릴 때는 뭘 모르니까, 그냥 따라 했죠. 부모님이 나를 사랑해서 감독하고 통제한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심하게 반발감이 생겼어요. 그즈음해서 소화가 안되고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럼증이 있었어요. 늘 피곤하기도 했었어요.”
“어떤 반발감이 생겼나요?”
“통행금지 시간이 저녁 8시였어요. 매일의 레슨 일정도 너무 많고 통제가 심했어요. 새장 속의 잉꼬처럼 갇혀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심지어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도 부모님은 따라오곤 했어요. 그 어떤 부모도 하지 않은 과잉보호를 한 거죠. 그들은 사랑이었지만 저는 억압과 고통 그자체였어요.”
“이해가 됩니다. 유림 씨의 체질은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그렇게 억압하고 통제하면 병이 들 수밖에 없지요. 그것을 심유이병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주인노릇을 못하면 병이 된다는 뜻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이 억압과 통제를 받으면 병이 들 수밖에 없지요.”
유림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구었다.
승학은 가만히 대나무 숲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한 참 후 조금 진정이 된 유림이 다시 말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학 이후와 비교하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어요. 대학생 때도 통행금지 시간은 8시였어요. 친구를 만나거나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어요. 심지어 모든 것에 간섭과 통제를 받았어요.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억압과 통제가 엄청났지요.”
“아. 그랬군요. 그 정도면 고통이 되지요.”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고 데이트는 꿈도 꿀 수 없었어요. 그러던 중에 쇼킹한 사건이 있었어요. 저의 아버님은 대기업의 하청사업을 했어요. 그런데 그 대기업의 회장 아들과 저를 결혼시키려고 했어요. 일종의 정략결혼이지요. 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어요.”
그녀는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말했다.
“어느 날 누구를 만나라고 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엄청 사나운 눈빛을 가진 남성과 선을 보라는 것이었어요. 저는 기겁을 했어요. 놀라서 저녁식사를 하자는 것을 통행금지가 8시라서 안된다고 하고 나오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남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군요.”
유림은 또다시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한참 후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이 말하길 오늘은 통행금지 해제가 되는 날이라고 하더군요. 저의 아버님이 그렇게 말했다고 하면서요. 저는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화가 나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왔어요.”
승학은 그녀가 받았을 충격이 침작이 되었다. 하지만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유림이 다시 말을 이었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따졌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아버님이 화를 내며 말했어요. ‘네가 누구 때문에 호강하고 산 줄 아느냐? 그 남자랑 결혼해.’ 그렇게 다짜고짜 말하더군요. 어머니는 가만히 있었어요. 아마 그때부터 화병이 생기고 숨을 잘 못 쉬었던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어요.”
승학은 억압과 통제, 쇼크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트라우마는 병을 만든다. 체질적으로 보면 분노와 실망, 고통으로 인한 병의 뿌리가 깊은 상태였던 것이다.
승학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았다. 묵은 화병을 끌어내면 증세가 더 심각해지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듣겠습니다. 앞으로 치료방향을 오범석 원장과 의논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더 듣기로 하고 앞으로 완치에 대해서만 주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승학은 유림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아프게 지켜보았다. 그녀의 내면의 상처가 아프게 느껴졌다.
승학은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면의 열정 때문이 아니었다. 유림의 몸을 회복하게 하기 위한 몰입을 했다. 승학은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며 더 이상은 물어볼 수 없었다. 다만 승학은 반드시 그녀를 건강하게 회복시키겠다는 서원을 정했다.
승학은 그녀의 아픔이 모두 공감되었다. 남들이 보기엔 행복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받았을 그 억압과 통제, 쇼크게 대한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승학은 유림에 대한 이야기를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가장 급선무는 그녀가 받은 고통과 심각한 증상을 치료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승학은 그녀의 병을 고칠 약초를 구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대나무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겨울바람이 불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대나무 뿌리들은 땅속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승학이 그곳에서 대나무 댓잎을 바라볼 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머 여기에서 뭐 하세요?”
유림이었다. 그녀 역시 밤새 잠을 설쳤는지 피곤한 표정이었다.
“아침 산책을 하고 있어요. 한데 여기 자주 나오시는 것 같아요. 참 여기서 자주 마주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이상하게 대나무 숲에 오면 마음이 편해져요. 왜 그럴까요?”
승학은 웃으며 농담하듯 가볍게 말했다.
“대나무 숲은 슬픔을 삭혀주는 약성이 있어요.”
“뜻밖이네요. 어떻게 그런 약성이 대나무 숲에 있죠.”
“옛날부터 초상이 나면 상주들이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갓을 두르지 않습니까?”
“그래요. 그건 저도 알아요.”
“그 이유는 대나무 성분 속에 죽려 와 죽력이라는 것이 있어서 열을 내리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죠. 죽염의 원리도 대나무 성분의 비밀에 있어요.”
“신기한 일이네요. 제가 여기를 자주 오는 것도 어쩌면 대나무 숲 때문일 거예요.”
“예 그렇군요. 가슴속 슬픔을 지닌 사람은 대나무를 통해 힐링을 느낄 수 있지요.”
승학은 유림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제가 약초를 캐기 위해 지리산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보름이나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유림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약초는 약재상에 가서 구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유림 씨의 병증은 일반 약재상에서 구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직접 가서 캐어와야 할 정도로 귀한 약재글 구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약재로는 치료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승학은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서 왔다. 가다가 뒤돌아보니 유림이 손을 흔들었다. 승학도 손을 흔들며 그녀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갔다. 승학의 가슴속엔 뜨거운 정염과 완치에 대한 일념이 엉킨 채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