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바보은 행운을 만들고 헛똑똑이는 불운을 끌어온다.
주변에서 보면 헛똑똑이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겉헛똑똑이로 포장된 진짜 바보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음으로써 정체되어 간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며 비현실적인 꿈은 꾸지 않는다. 오직 눈앞의 현실에 맞추어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성공과 거리가 멀다.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데도 왜 그들은 인생의 보너스를 받지 못할까?
“저는 노력한 만큼의 대가만 바랍니다. 행운이란 것은 절대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헛똑똑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회사생활에서도 받는 보너스를 인생에서 왜 받지 못하겠는가.
그런데도 헛똑똑이들의 현실주의에 급급한다. 인생에서 행운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차단한 것이다.
헛똑똑이들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꿈꾸는 바보들은 이렇게 말한다.
“운이 좋았어요. 운이 따라준 덕택이죠.”
그 말이 맞다. 바보는 인생의 보너스를 두둑하게 받는다. 그들은 내면의 에너지를 축적하여 우주에너지를 끌어오며 행운을 누린다. 그런데 헛똑똑이들은 현실적 계산으로 인생의 보너스인 행운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들은 불운을 탓하고 변명거리로 사용할 뿐이다.
행운을 만드는 바보의 꿈도 능력이다.
운이 좋다고 믿는 사람은 운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운을 부정하는 사람은 운을 차단한다.
다가오는 행운을 부정함으로써 불운을 끌어오기 때문이다.
유명한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는 본능적인 무지가 있다”
누구나 무지의 영역이 있다는 뜻이다. 또 그것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헛똑똑이들은 대부분 그런 무지를 간직하며 산다.
그들은 그것을 벗어나려 하거나 없애지 않는다. 자신 안의 어두운 그림자에 갇혀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헛똑똑이는 타인을 의식해서 무지를 감춘다. 그렇게 되면 본능적인 무지가 불운이 된다.
그러나 바보는 본능적인 무지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헛똑똑이가 그것을 감추려고 하는 것과 정반대이다.
꿈꾸는 바보는 스스로 본능적인 무지를 벗어나며 운세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바보의 꿈은 행운을 만드는 엔진이다.
꿈은 내면의 에너지를 증폭하며 우주에너지를 끌어오는 기폭제이기 때문이다. 실제 꿈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처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도 반복적으로 꿈꾸면 현실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바보의 행운은 꿈꾸는 능력에서 나온다. 바보의 꿈은 허황하지만 실제적이며 현실가능한 단계적인 꿈이다.
Realistic: 실제적인 Energy: 에너지로 Dreaming: 꿈꾸기
바보는 RED 기법 꿈꾸기로 에너지레벨을 업그레이드한다.
현재의 시점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미래의 시점에는 가능한 꿈을 꾸는 것이다. 바보이기 때문에 가능한 꿈 꾸기이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바보는 미래시점에는 가능하다는 믿고 꿈을 꾼다.
그러나 헛똑똑이는‘꿈은 꿈일 뿐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현실을 쫓아가며 그 무서움에 질려 꿈을 포기한다. 꿈꾸는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헛똑똑이가 된다.
그렇게 되면 행운은 만들어질 수가 없다. 불운이 잘 따르는 조건이 형성된다.
헛똑똑이가 꿈꾸는 능력을 지닌 바보로 변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바보가 되어 미래를 창조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성공신화를 보면 헛똑똑이가 없다. 바보만이 기적적인 성취를 이뤄낸다.
그들은 바보였기 때문에 꿈을 지켰고 마침내 성공신화를 쓰게 된 것이다.
체질적으로 보면 행운과 불운이 에너지로 분류가 된다.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사람은 행운체질이고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불운체질이다.
그 구분은 체질적으로 명확하게 나타난다. 행운과 불운을 결정하는 조건이 체질적 밸런스이기 때문이다.
행운을 부르는 체질은 건강하며 에너지가 넘친다.
생각과 행동이 긍정적이며 적극적이어서 활기가 넘친다. 잠시 대화를 해도 상대를 배려하며 잘 경청하는 태도가 눈에 띈다. 그런 사람은 대부분 바보이며 헛똑똑이가 없다.
에너지가 강하기 때문에 활동력과 대인관계도 활발하다.
행운이 따를 수밖에 없는 조건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운세가 따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반면에 불운을 부르는 체질은 허약하며 에너지가 부족하다.
표정이 어둡고 생각과 행동이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다. 대화를 하면 자가주장이 강하고 경청은 잘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헛똑똑이들로 스스로 운이 없다고 말한다.
체질적인 상태가 그렇게 중요하다. 그런데도 헛똑똑이는 외관을 치장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정작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관심이 높지 않다.
행운과 불운의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운을 피하는 법이다.
행운은 에너지파장으로 나타나며 자신의 에너지파장이 강할수록 빈도가 높아진다.
체질적으로 보면 체질강화가 되어 에너지 레벨이 높은 사람은 행운을 자주 맞이한다. 반면에 불운 역시 에너지파장이지만 에너지파장이 약할수록 자주 나타난다. 당연히 체질을 믿지 않고 에너지 레벨이 낮은 사람은 불운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다. 불운을 느끼는 사람은 뒤로 넘어졌는데도 코가 깨진다. 에너지 레벨이 약한 사람은 늘 불운으로 고통 받는 원리가 그러하다.
이 차이는 엄격하게 나타나며 행운과 불운을 결정하는 것이다.
헛똑똑이는 체질적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말하면 이렇게 반문한다.
"요즘 이 어려운 세상에 몸이 완전한 사람이 어딨겠어요? 운동하며 이겨내야지요."
동일한 조건을 가진 바보에게 체질적 불균형이 있다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몸이 인생의 전부잖아요. 완벽한 몸이 되게 치료해 주세요."
그 차이가 엄격하게 나타난다. 헛똑똑이는 건강관리는 운동과 밥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보는 건강관리는 넘치는 에너지를 위해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 차이가 운을 만드는 바보와 헛똑똑이를 결정한다. 바보는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시점을 구분하지 않고 강렬하게 꿈꾼다. 그들은 꿈과 현실을 일치시키는 과정에서 운을 만든다.
헛똑똑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삶은 수학적 계산으로 답을 얻을 수가 없다.
감성과 이성의 그 너머 양자역학이나 초월적 현상까지가 결합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보의 행운은 현재와 미래 시간의 벽을 통과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