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불통 지역 혹성탈출을 위한 베트남어 공부
“신짜오? 안 쓱 코에 톳 콩?”
베트남 사람들은 첫인사가 신짜오이다.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그다음엔 ‘건강하신가요?’라는 뜻의 ‘슥 코에 톳 콩?’이다. 이 말은 일상적으로 많이 한다. 그러나 베트남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 말은 아주 다르게 들린다. 사람마다 지방색에 따라 같은 말인데도 발음과 억양이 달라서 그렇다. 대부분의 외국인이나 한국인들이 베트남어를 배우고 싶지만 포기하는 이유가 그렇다.
분명히 유사한 표현인데도 잘 알아들을 수 없고 발음을 해도 그들이 못 알아듣는다.
베트남어의 6 가지 성조의 문제가 아니다. 영어는 대략 ‘하우 알 유’라고 하면 대충 그렇게 들리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베트남어는 같은 말을 사용해도 전혀 못 알아드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무시받는 듯한 느낌도 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성조 때문이 아니라 고유의 억양 때문이다.
혹성에 떨어져 헤매야 했던 시간들
영화 ‘혹성탈출’에서 지구인이 어느 혹성에 떨어져서 문명화된 몽키들을 봤을 때의 느낌이 그럴까?
세 번의 여행을 끝으로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나서의 일이다. 한 번은 5 군에 있는 약재시장으로 홀로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특별한 베트남 약재를 구경하거나 구입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다니며 무척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에서는 택시가 없어서 그렙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배터리가 떨어져서 꺼져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몹시 당황스러웠다. 어디 가서 충전을 할 것인가? 그 주위엔 편의점도 없고 작은 가게도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충전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으면 택시를 타도 어디를 가자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무작정 편의점을 찾아 걸었다. 그러나 그 주변에 편의점은 없고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밤 10시가 넘어 강원도의 오대산이나 태백산을 홀로 야간 산행할 때보다 더한 공포감이 일순간 느껴졌다.
휴대폰이 꺼진 세상은 암흑 그대로였다. 영어와 북경어가 통하지 않는 세상, 베트남어를 못하면 언어불통 지역에 갇히게 되어 있었다. 실제 그랬다. 근처 약재상에 가서 영어로 혹은 중국 북경어로 수없이 말을 걸었지만 그들은 냉담했다. 이상한 베트남어만 내뱉었다. 간혹 화교 약방에 가서 물어보면 광둥어로만 말했다. 그들은 친절하지도 않았고 보디랭귀지도 통하지 않았다. 나는 ‘혹성탈출’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언어불통의 이국땅에서 느끼는 그 황량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당시로선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베트남어를 모르면 낯선 지역이 온통 큰 감옥이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당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베트남에서 베트남어를 모르면 생존이 힘들겠구나.‘
나는 베트남어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낯선 혹성에 떨어져 몽키들에게 포위된 느낌이 그랬다. 그들이 하는 말들은 내게 몽키어와 같았다. 도저히 짐작도 되지 않았고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날 한참을 걸은 후에 겨우 편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겨우 충전기를 새로 구입하고 휴대폰을 충전했다. 아마 편의점을 찾지 못해서 휴대폰을 켜지 못했다면 암담했을 것이다.
베트남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혹성탈출’ 같은 그 경험 때문이었다. 나는 그다음 날부터 바로 베트남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국어와 유사한 단어가 많은 베트남어
한국과 일본, 중국, 베트남은 한자 문화권이다. 언어적 형제국들이다. 한자를 베이스에 깔고 있어서 단어들을 이해하기 쉽고 메모리가 잘 된다. 막상 베트남어를 배우면서 느낀 것은 매우 쉽다는 것이었다.
베트남어 단어를 한자로 치환하면 한국어와 극히 유사하여 외우기가 쉬웠다. 한국어와 흡사한 단어는 외울 필요가 없었다. 한국어 그대로의 발음인 경우도 많았다.
쭈의- 주의, 결혼- 껫혼, 경제- 킨떼, 사회- 사 호 이, 등 베트남어 75%가 한자에 어원을 두기 때문에 쉬울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어 이전에 배웠던 외국어로 독일어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말레이어와 완전히 달랐다. 공부를 할수록 재미있었고 쉽게 느껴졌다.
한 달 후쯤부터는 말문이 터였다. 어지간한 생활 베트남어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을 만나면 말을 걸었고 아무 말이나 했다. 엄청나게 사교적인 사람처럼 먼저 말을 걸었다. 특히 택시를 타면 기사들에게 반드시 말을 걸었다. 한 번은 기사가 서투른 영어를 사용해서 내가 베트남어로 말했다. 그러자 그 기사는 나를 힐끗 보더니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은 베트남어를 할 수 없어요. 발음이 안 돼요, 여기 오래 산 한국인들도 베트남어를 잘 못하잖아요.”
대략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영어로 그에게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베트남어는 매우 쉬워요, 왜 이것을 못해요. 집중하면 아주 쉬운 언어입니다. 발음도 문제없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그가 큰 소리로 다시 말했다.
“난 한 번도 한국인이 베트남어 잘하는 것 못 봤어요. 힘들어요. 통역기 사용해서 소통하는 것이 나아요.”
어이가 없었다. 쉽다고 하는데도 마치 혹성탈출의 몽키처럼 인간을 무시하는 그런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나는 3개월 정도부터는 베트남어를 잘할 수 있었다. 그 후 8개월 차에는 베트남어 통역사 자격증 시험을 쳤다. 그 자격증은 한의원 오픈을 위한 것이었다. 베트남에서 한의원을 오픈하려면 모든 서류가 복잡하지만 그중에서 베트남어 자격증이 없으면 통역사 고용의 조건이 있었다.
베트남인 한국어 통역사는 월급만 높을 뿐 실제 통역은 잘하지 못했다. 별 필요하지 않은 직원을 한 명 더 뽑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럴 바엔 나는 직접 베트남어 통역 시험을 치기로 했다.
시험 과목은 리스닝 1시간, 리딩 1시간 라이팅 1시간 인터뷰 1시간으로 4시간이었다. 모든 과목이 만만치가 않았다. 베트남어를 완전히 할 수 있어야 하고 쓸 수 있어야 하는 조건이었다. 나는 시험 준비를 하며 하루에 A4용지 12장씩을 작문했다. 또 베트남어 오디오 북을 계속해서 들으며 베트남사람만 만나면 대화를 시도했다.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한 덕분에 시험은 무사히 치렀다. 시험은 5군의 베트남 의약대학이었다. 그곳에 도착해서 놀란 것은 수험생이 단 3명 있었다. 베트남계 프랑스인 1명과 베트남계 미국인 1명이 통역사 자격증을 위해 그곳에 온 것이었다. 그들은 베트남인이었다. 유일하게 혼자 한국인이었고 교수 1명과 시험감독 1명이 있었다.
시험감독은 시험 방식을 설명했고 교수는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은 국적만 미국이나 프랑스였을 뿐 베트남인으로 시험은 통과의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시험은 어려웠고 인터뷰 또한 쉽지 않았다.
시험 결과는 1달 후에 나왔다. 수험번호를 말해주자 담당 베트남 직원이 말했다.
“축하합니다. 합격하셨습니다. 1달 후에 자격증을 받아 가세요.”
나는 그렇게 베트남어 통역 자격증을 취득했고 ‘언어불통 지역의 혹성탈출’에 성공했다.
‘베트남어가 쉽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베트남 거주 한국인 중에 베트남어를 잘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베트남어를 잘하는 경우는 대략 세 가지 케이스가 있다.
첫 번째는 외국어대학에서 베트남어 전공을 한 경우다.
그들은 베트남어를 전공으로 해서 한국 기업에 취업을 해서 베트남 생활을 오랫동안 하고 있다. 베트남어를 당연히 잘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두 번째는 베트남어가 생존언어가 되는 경우이다.
업무적으로 자신이 직접 베트남어를 해야 하는 환경이면 생존 언어로 잘할 수밖에 없다. 베트남어 노출 시간이 많고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한다.
세 번 째는 베트남 여성과 국제결혼을 했거나 연애를 하는 경우이다. 베트남 여성 혹은 남성과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언어습득이 되어 잘한다. 베트남 여성이 한국어를 잘하는 것도 같은 경우이다.
나는 두 번째 경우에 해당되어 베트남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베트남어 공부를 하며 느낀 것은 한국인에게 베트남어는 매우 쉽다는 점이다. 75%의 단어가 한자로 구성되어 알기 쉽고 문법은 거의 없으니, 얼마나 쉬운가?
영어나 독일어, 말레이시아어 같은 경우 문법이 복잡하다. 단어 암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베트남어는 중국어와 유사하게 단어 암기가 거의 필요하지 않다. 대부분 이해하면 바로 기억이 된다. 그래서 나는 베트남어가 생존언어가 되어야 하는 업종에 있는 분에겐 이렇게 말한다.
“베트남어는 매우 쉽습니다. 공부를 하시면 금방 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어가 쉽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저는 6개월 하다가 집어치웠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서 말해도 베트남인들이 못 알아들으니, 안 되겠다 싶어서 포기했습니다. “
대부분 이와 대동소이한 답변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베트남어는 정말 쉽다. 단지 영어와 다른 점은 베트남인들과 대화를 해서 그들의 억양을 성대 묘사하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동일한 단어인데도 억양이 조금만 달라도 전혀 못 알아듣는다. 한국어 기준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예를 들면 한 때 베트남 중부 지방 후에 출신의 간호사가 있을 때 일이다. 베트남 서부지방 출신의 환자가 와서 말을 했을 때 중부 지방 출신의 간호사가 베트남어로 내게 말했다.
“박시, 저분이 뭐라고 하시는 건가요?”
박시는 닥터라는 뜻이다. 그녀는 정말 발음을 못 알아듣고 내게 물어본 것이다.
“왜 같은 베트남인끼리 말을 못 알아들어?”
내가 그렇게 물으면 그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지역이 달라서 그래요. 가끔 못 알아들을 때가 있어요.”
만약 성조가 뚜렷하다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지방색에 따른 억양이 있을 뿐이었다.
이 억양은 북부, 중부, 서부, 남부 지역에 따라 다르다. 그렇게 때문에 이 4개 지역의 사람들과 만나서 그들의 발음이나 억양을 모두 익혀야 누구와도 의사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다. 나는 이 네 개 지역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들의 다양한 발음과 억양을 익힌 덕택이다.
내가 베트남어를 열심히 익힌 동기부여 중에서 한 가지가 완전 현지화이다. 그래야 베트남 약초꾼이나 베트남 약재 전문가와 대화를 하고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없는 베트남 약재는 효과가 아주 특별하며 각종 난치병을 고치는 원료가 되기에 충분하다. 나는 앞으로 특수한 효과가 있는 베트남 약재를 연구하여 각종 난치병을 완치하는 신약을 개발할 것이다. 그날을 위해 나는 매일 베트남어로 업무 일기를 쓰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현지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