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상주역이 던지는 첫 질문은 체질로 본 선택의 힘
이 사진을 보고 괘상을 찾아내면 괘상주역을 의미를 알 수 있다. 과연 이것은 무슨 괘상일까? 만약 자신이 이 남자의 이미지가 좋았다면 괘상을 찾아내어 생각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를까?”
익숙한 하루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늘 비슷한 선택을 한다. 같은 길로 출근하고, 같은 방식으로 커피를 마시며, 비슷한 말투로 사람을 대한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의 행동을 이미 짜놓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면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가는 것일까?
괘상주역(周易)은 이 오래된 질문에 독특한 방식으로 답한다. 세상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으로 본다. 괘상은 고정된 운명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시점에서 어떤 흐름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운명은 돌덩이처럼 단단히 굳어 있지 않고 강물처럼 흘러가며 그 순간의 지형에 따라 방향을 바꾸지 않는가?
한의학적 체질론에서도 비슷한 통찰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체질이라는 기본 설계를 갖고 태어난다. 누군가는 열이 쉽게 오르는 소양인이고, 누군가는 기운이 섬세한 소음인이다. 체질은 마치 “운명”처럼 보인다. 하지만 체질은 곧 한계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어떤 체질이든 생활 습관과 선택에 따라 건강의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소양인이 기름진 음식을 즐기면 쉽게 열병이나 염증에 시달린다. 하지만 절제된 식습관과 규칙적 운동을 유지한다면 오히려 강한 추진력과 에너지를 발휘한다. 체질은 이미 주어진 것이지만 그 활용 방식은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운명은 존재한다. 그러나 운명 안에서 선택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 미묘한 간극에서 인간의 삶은 빛나고, 때로는 비극을 맞이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괘상이 하나 있다.
바로 수화기제(既濟)괘이다. 기제는 모든 것이 이미 완성된 상태를 뜻한다. 겉으로는 안정되어 보이고 더할 나위 없는 듯하다. 하지만 괘상주역은 여기서 중요한 경고를 던진다.
“완성되었을 때가 오히려 무너짐의 시작이다.”
기제괘를 뽑은 한 제자가 있었다. 그는 마침 안정적인 직장에 있었고 가족도 평화로웠다. 그는 괘상을 보고 의아해했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는데, 왜 불안하다고 하는 걸까?”
괘상주역은 그에게 작은 선택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평온한 시기에 방심하면 작은 균열이 커져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이 괘상을 계기로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몇 년 뒤 그는 캐나다로 이주해서 한의원을 오픈했다. 그는 오랫 동안 준비된 실력으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여기서 기제괘는 단순히 ‘운명이 정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당신의 현재 흐름은 이러하니, 작은 선택에 주의하라”
운명은 고정된 답안지가 아니라, 선택을 유도하는 신호인 셈이다.
한의학적 시선에서 보면, 기제괘의 메시지는 체질의 경고와도 같다.
소음인이 안정된 생활 속에서 안일해지면 소화력이 더욱 약해지고 결국 큰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태음인이 “나는 체질적으로 튼튼하다”는 자만 속에서 과식과 운동 부족에 빠지면, 순식간에 비만과 순환 장애로 고생하게 된다. 체질은 바꿀 수 없지만, 체질에 맞는 선택은 언제나 가능하다.
주역의 괘상은 체질과 같다. 주어진 흐름과 조건은 존재하지만 그 조건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오직 나의 몫이다. 따라서 운명은 반쯤 정해져 있고 반쯤은 선택에 열려 있다.
정해진 부분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선택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질문은 원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괘상주역은 대답한다.
“운명은 흐름이다. 그 흐름 속에서 네가 어떻게 방향을 트느냐가 네 삶이다.”
한의학은 말한다.
“체질은 설계도다. 그러나 그 설계도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네 선택이다.”
극심한 질병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운명이 되며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 중병에 걸린 사람의 가장 간절한 소원은 그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질병이 운명이 된 사람들에게 일반적 운명이란 명제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
30대 중반의 베트남 여성이 난소 물혹으로 결혼을 못한다며 내원했다.
베트남은 한국과 달리 20대에 결혼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30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을 못했다는 것은 심각하게 불행한 운명이다. 그녀는 그 질병으로 결혼을 할 수 없었고 성생활도 힘들다고 했다.
그녀의 상황을 통해 작괘한 것은 화수미제 괘다. 자궁의 수괘 때문에 심장의 고통이 느껴지는 상으로 즉관즉괘한 것이었다. 치료는 좌측의 방광정격과 우측의 대장승격에 수족신경침으로 난소부위의 자침이었다.
그녀에게 4주간 6회의 침 치료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라고 했다.
그녀는 질병의 운명에 종속되어 이렇게 말했다.
"10년 이상 치료해도 낫지를 않아요. 침 맞았다고 낫겠어요?"
하지만 궁금해서 병원에 가서 진단해본 결과, 난소물혹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순간 그녀의 운명이 변했다.
그녀는 정확히 3개월 후에 결혼을 했고 그 다음해에 아이를 낳았다.
이 임상사례를 보면 중요한 것은 운명에 복종하는 것도, 운명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운명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나의 선택을 세심하게 가꾸는 일이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작은 선택이 내일을 바꾸는 힘이 되는 것이다.
나는 36년간을 괘상주역과 체질을 연구했고 심취하고 있다.
그 많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운명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하지만 강의 지류와 합류를 결정하는 것은 작은 돌멩이 하나인 것처럼 나 역시 작은 생각과 선택으로 살아왔다.
"수없이 많은 선택들을 나는 잘 해 내었을까? 괘상주역과 한의학이 내게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
나는 한번씩 되새김하듯 질문을 던져본다.
명확한 답은 없다. 단지 주역의 괘상이 보여주듯, 체질의 경고가 일깨워주듯, 나는 선택을 했고 미래의 거대한 차이를 만들었다. 되돌아보면 결국 운명은 정해진 길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선택을 통해 끊임없이 다시 쓰여지고 반복되는 점들의 이야기다. 나는 괘상주역 강의를 하면서도 자문한다.
"나는 괘상주역과 한의학의 원리를 잘 연결하고 있는가? 그것이 나의 인생을 아름답게 이끌어가고 있는가?"
질문은 끊임없지만 대답은 뜨끔뜨끔하게 망설인다. 아마도 나는 괘상주역과 한의학을 더욱 더 깊이 연구하고 실용적인 학문으로 다듬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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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휴식을 하며 생각했습니다. 괘상주역과 한의학의 원리, 한약처방이나 침술의 원리와의 관계,
그리고 운명의 힘과 연결된 것을 곰곰히 천착해보았습니다. 여전히 흥미롭고 의미있는 주제입니다.
<괘상주역과 의리주역의 차이, 왜 괘상주역이 중요한가?>
https://youtu.be/Q9UvFNq1ikA?si=XmOvPCCm1nVcj7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