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후보지로 거론된 지명 중에 대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장태산휴양림을 자주 이용하면서 메타세콰이어 숲에 반했고, 대청호 오백리길을 걸으면서 대전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전국의 산을 다니기에 이보다 더 좋은 교통 요지도 없지요. 결국 원래 생활근거지인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인 양평에 집을 짓고 살기로 했지만, 마지막까지 내 머릿속에서 경합을 벌이던 후보지였습니다.
후보지가 어디 어디인지 궁금하시다구요? 소백산을 한참 다닐 때는 영주나 단양에서, 선운산, 내장산, 백양사, 방장산 등 다닐 곳이 많은 고창에서, 은파호수, 군산호수 다닐 때는 군산에서, 강원도에서는 춘천호가 있는 춘천에서, 벚꽃길에 반해서 진해와 하동에서 은퇴 후의 삶을 계획하곤 했었죠. 어디를 갈 때마다 '이곳에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하도 읊어대니까, 남편은 그저 웃기만 하더군요.
블로그 이웃의 이벤트에 빵집 쿠폰을 받게 되었어요. 덕분에 갑자기 대전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11월 말에서 12월 초는 전국 어느 산을 가나 거의 비슷한 풍경이라, 딱히 때를 놓치지 않고 가야겠다는 여행지가 없을 때이지요. 계족산을 그래서 다녀오기로 하였습니다.
대전의 동쪽인 대덕구에 위치한 계족산은 높이 423.6m의 낮은 산으로 성재산, 금병산, 우산봉, 갑하산까지 다섯 봉우리가 둥그렇게 이어져 산줄기가 닭발처럼 퍼져 나갔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백제시대의 산성인 계족산성이 있구요, 황톳길 걷기 길이 조성되어 있어 맨발로 걷는 길로 유명한 곳입니다. 총 길이 14.5km의 계족산 황톳길은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다고 하더군요. 정식 명칭은 대전둘레산길이며, 2022년 11월에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국가숲길로 지정되었으며, 한국 관광 100선에 4회 연속 선정되었다고 하네요.
계족산 산행은 대부분 장동산림욕장을 들머리로 하는데, 용화사를 들머리로 하는 1.9km의 짧은 코스도 있습니다. 우리는 <장동산림욕장 - 계족산성 - 성재산 - 임도삼거리 - 계족산 정상(봉황정) - 임도삼거리 - 숲속 공연장 - 장동산림욕장>의 코스를 선택하였습니다.
대전둘레산길 6코스이기도 한 장동누리길은 <용화사 - 계족산 봉황정 - 장동고개 - 이현동>의 총 13.4km의 거리라고 합니다.
차량 진입금지라 갓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왔는데, 나중에 보니까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더군요. 이제 조성하는 중이라 주차장 진입로 표지판을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한번 와 본 분들은 다 그곳에 주차하는 모양이더군요.
장동산림욕장의 안내판입니다. 맨발로 걷는 길로 유명한 계족산 황톳길은 총 14.5km로, 편안한 임도 길이라 한 바퀴 돌려면 4시간 정도면 된다고 합니다.
숲속 쉼터가 널찍하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사방댐도 있네요. 벚나무들이 꽤 있어서 봄에 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황톳길을 조성하는데 큰 공헌을 한 '이제우린'의 조윤래 회장님의 익살스런 캐릭터가 반갑게 맞아줍니다.
길옆에는 황톳길에 대한 안내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무장애 길도 있어서 장애인들의 숲길 산책도 도와줍니다.
세족장이 있는 곳.
명품 황톳길 보수를 위해 항시 대기 중인 황토 더미.
작은 개천에서도 세족이 가능합니다. 지금은 흐르는 물이 적네요.
황톳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하이힐을 신은 코끼리. 당장 신발을 벗겨주고 싶네요. 신발을 벗어던진다는 건 '무거운 짐을 하나씩 지고 위태위태하게 살아가는' 삶에서 잠시 그 짐을 내려놓고 힐링하라는 뜻이겠지요.
숲속 공연장입니다. 주민들을 위한 온갖 시설이 다 준비된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계족산성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이겠지요. 빙 돌아가는 황톳길 대신 우리는 계단길로 올라갑니다. 태풍과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나무들이 많이 있네요.
계절과 관계없이 기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식물이 바로 양치식물입니다. 반짝 추위 때는 납작 엎드려 있다가, 잠깐 기온이 오른 사이 초록초록해진 모습이 예쁘네요. 녹색이 거의 없는 숲길에서 가끔 만나는 반가운 모습입니다.
계단길이 하도 길어서 중간중간에 벤치를 만들어두었네요. 쉬엄쉬엄 가라고.
비박을 했는지, 젊은 여자분이 큰 백팩을 지고 내려갑니다.
양치식물 말고도 초록이가 또 있었어요.
낙엽송 잎이 부드럽게 쌓여 마음까지 포근하게 만듭니다. 이 긴 계단길도 끝은 있지요.
황톳길을 걸으려고 온 게 아니니까 우리는 또 계단을 택합니다.
경사가 꽤 급하지요. 계단이 있어서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멋진 소나무의 푸른색이 겨울 산의 삭막함을 채워줍니다.
찔레가 봄인 듯 파릇파릇합니다. 추운 겨울이 곧 들이닥칠 텐데. 하기야 잎은 얼겠지만 강인한 줄기는 살아남아 내년 봄에 틀림없이 향기로운 찔레꽃을 피우겠지요.
산성 한 쪽이 무너졌다고 하더니 그 현장인가 봅니다. 성을 이루고 있던 돌이 저렇게 많았나 봐요. 원상 복귀하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지요. 일일이 사람 손으로 쌓아야 할 것 같아요. 옛 백제인들이 그랬듯이.
대전 시내가 꿈 속인 듯 아련히 보이는 것은 몇 겹으로 겹쳐진 능선 때문이겠지요. 맑은 날씨면 더 좋았겠지만, 흐린 날씨에는 가끔 이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나기도 합니다.
공사 중이라 왼쪽으로는 진출을 할 수가 없습니다. 20. 7.21 - 23. 1.6 까지 2년 반이니까 꽤 오래 공사를 하는 모양입니다. 내년 2월부터는 아마 곡성(구부러지게 쌓은 성) 구간의 관람로도 통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가지런하게 쌓인 돌들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네요. 같은 색의 돌도 제각각 모양이 조금씩 다릅니다
요즘에야 돌을 자르는 기계가 많이 발전했지만, 옛날 조상들은 일일이 정과 망치로 깨어서 만들었을까요. 이 긴 성을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조성한 조상들의 흔적 앞에 숙연해집니다.
기계로 자른 듯(워터젯이라는 물의 압력을 높여 돌을 자르는 첨단 공법도 있다고 하네요.) 같은 색 무늬의 돌판이 재미있습니다. 요즘에 보수한 모양입니다.
대청호의 모습이 살짝 보이네요. 대청호 너머, 산 너머에 누군가가 살고 있을 마을을 혼자 상상해 봅니다. 과거에도 산의 모습은 여전했겠지요. 산성에 올라서니 옛 백제 시절 조상들의 삶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생활도 미래로 가면 역사가 되겠지요. 미래의 누군가가 또 우리의 삶을 조명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꿈 속인 듯 아련한 능선과 대청호의 모습을 당겨 찍어봅니다.
1992년부터 꾸준히 복원해온 계족산성은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온전한 형태로 총 길이 1,037m라고 합니다. 곡성구간 공사가 끝나면 한 바퀴 돌아 보아야겠습니다.
나무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서 친구해 주던 포구나무(팽나무의 사투리)를 닮았습니다. 동글동글한 열매를 주워 먹기도 했는데, 그 맛이 아직도 기억에 있어요. 학교를 다시 찾아갔더니 나무는 흔적도 없더군요.
사람도 별로 없고 고즈넉한 산성 위에서 빈 가지의 나무들에게 마음이 갑니다. 잎이 없어도, 단풍이 아니어도, 빈 가지는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앞서가다가 "여기 찍어봐." 하고 말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웃습니다.
"여기가 유명한 포토존이래."
아름다운 곳은 누구의 눈에든 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계족산성을 내려와 절고개 쪽으로 갑니다.
뜻밖에 푸른 잣나무 숲 사이의 정자를 만납니다. 온통 갈색인 12월 초의 산에서 푸른색은 언제나 반가움입니다.
쉬어가려다 길을 재촉합니다.
성재산 전망대입니다.
우애가 깊은 오 형제 나무가 소개되어 있네요.
빛내림을 찍어보았습니다.
바위를 품은 부부 나무는 아픈 남편을 위한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낫게 된 부부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네요.
임도 삼거리에서 봉황정으로 향했습니다.
표지판에 용화사가 보이네요. 계족산까지 올라오는 최단 코스는 용화사가 들머리입니다.
계족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높이 423.6m 니까 우리 동네 삼성산(481m) 높이와 비슷하네요.
정상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봉황정이 있었습니다. 안내판에 의하면 대전 팔경의 하나로 손꼽힐 만큼 해 질 녘의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땅에 떨어진 솔잎을 제 고향에서는 갈비라고 했어요. 제 어릴 적만 해도 집에서 연탄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갈비나 소나무 잔 가지, 장작 등을 땔감으로 많이 사용했지요. 지게에 갈비를 한짐 지고 와서 팔고 가던 나무꾼 아저씨들이 생각납니다. 갈비가 제일 싼 편이었지요.
어린 마음에 할머니가 앉혀놓은 고구마를 빨리 익으라고 고사리 손으로 갈비 한 줌 떠서 아궁이에 넣고 대문 밖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우리 집으로 뛰어들어 오더군요. 돌아보는 순간에 우리 집 부엌이 온통 불바다가 되어 천정까지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을 보았어요. 부엌이 길에서 보이는 곳이었거든요. 그 아저씨가 재빨리 불을 꺼주지 않았더라면 우리 집은 홀랑 다 타버릴 뻔했지요. 식구들한테 말하지 않아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 혼자만의 비밀로 묻혀있었던 에피소드인 셈입니다. 산에서 볼 때마다 남편한테 이야기했더니 갈비를 이렇게 찍어주네요.^^
산길을 내려와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제주 올레길 벤치마킹인가요? 새 같아 보이네요.
푸릇푸릇 한 모습은 황매화 나무인 것 같네요. 계룡산 갑사 쪽의 황매화 군락지가 유명한데.
맨발로 걷기가 좋은 줄은 알지만 아직 실천해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효능이 안내되어 있네요. 꾸준히 실천하면 의사가 필요 없겠네요.
꽃무릇인 듯한 초록이들. 추운 날씨에 축 처져 있네요. 온도가 맞으면 다시 힘을 내어 바로 서겠지요.
게비온이라는 것을 혹시 아시나요? 돌을 철사로 만든 망태기에 넣어 울타리를 쌓는 것을 게비온이라고 하더군요. 그 게비온을 이용한 조형물이 있었어요. 아빠, 엄마, 두 아이의 단란한 가족 모습이네요.
쉼터에 단체인 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네요. 용화사에서 출발하여 계족산을 넘어와서 황톳길을 걸어 장동산림욕장 입구로 하산하려나 봅니다.
우리는 계단길로 원점회귀하기로 했습니다. 단체와 섞이면 아무래도 불편하거든요.
놀이터에 두 아이의 노는 소리가 듣기 참 좋더군요. 아이들은 언제나 예뻐요.
대전의 깃대종이 소개되어 있네요. 하늘다람쥐를 본 적이 없는데, 언젠가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차장입니다. 아직 공사 중이지만, 완성되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겠지요. 다음에는 우리도 이 주차장을 이용해야겠습니다. 주변에는 공원을 조성할 예정인지 많은 나무들을 임시로 식재해 두었더군요. 멋진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총 11.2km, 휴식 시간 포함 4시간 50분의 산행을 끝내고, 쿠폰을 써 먹어야죠.
빵집은 30분 거리에 있는 '내가 잘 가는 빵집'이었답니다. 덕분에 대전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