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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Jan 01. 2023

기적의 편지

<책리뷰>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

 잘 읽지 않는 일본 소설을 읽게 된 것은 블로그 이웃의 책 소개를 보고나서였다. 밀리의 서재가 베스트셀러를 바로 반영해 올리는 속도가 다소 늦은 편인데, 마침 책을 다운받을 수 있었다.
 잡화점이면 우리나라로 치면 예전의 동네 구멍가게 쯤 되겠다. 뭐든 필요한 자질구레한 생필품을 다 갖추고 있는, 굳이 시장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동네의 사랑방 비슷한 가게일 것이다. 도시라고는 했지만 딸아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안양시 석수동 오래된 주택가의 미진 슈퍼쯤 되는 점포였을 것 같다.
 주인인 할아버지의 이름이 나미야였는데, 나야미(고민) 상담도 해 주느냐는 아이들의 말에 시작했다는 상담. 처음에는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고민 상담으로 시작되었지만, 나미야 할아버지의 진심을 다한 성실한 답변이 여러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세 명의 빈집털이범이 숨을 곳을 찾아 나미야 잡화점으로 찾아든 것. 이미 나미야 할아버지는 33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잡화점은 폐가가 된 뒤의 일이다.
 기적은 33년 전(1979년~)과 33년 뒤를 이어주는 타임머신 같은 설정에서 이루어진다.
 정말이지 일주일 후에 일어날 일만 알 수 있어도 당장 로또 1등 당첨번호를 확인하고 복권을 사러 갈 것 같다. 바로 1시간 후도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우리가 지나간 후 일어난 제2 경인고속도로 화재 사건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린 일도 있지 않은가.
 정말 미래를 알 수만 있다면 사는 게 휠씬 수월하지 않을까. 작가의 상상력은 소설 속에서 마음대로 발휘가 된다. 소설을 쓰는 재미일 것이다.
 왜 하필 빈집털이범들일까. 아마 상담이란, 거창하게 상담학을 전공한 박사나 자격증 있는 정신과 의사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비록 미숙하고 결점투성이인 젊은이들 같은 바닥 인생이라 하더라도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고 좋은 조언을 해주면 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인 듯하다. 백수 젊은이들의 조언에 따라 인생이 바뀐 이야기는 코믹하면서도 상담은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적시에 적절한 조언임을 시사하고 있다.
 잡화점 앞의 우편함과 잡화점 뒤의 우유 상자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주는 메신저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시간의 왜곡을 일으키며 상담 편지를 보낸 사람과 답장을 보내는 세 청년 백수들 사이에, 30년 쯤 왔다갔다 하며 조언을 듣고 받은 영향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결과물을 에피소드 형태로 보여준다.
 암환자인 애인을 두고 올림픽 출전을 위한 합숙 훈련 때문에 고민하던 펜싱 선수이야기,
 안정적인 생선가게를 물려받을 것인지, 본인이 꿈꾸며 정진해온 음악인의 길을 갈 것인지 고민하던 생선가게 뮤지션(사후에 작곡한 노래가 유명해짐.) 이야기,
 유부남을 사랑하여 아기를 가진 미혼모 이야기,
 또한 호스티스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되려는 어린 소녀에게는 미래의 경제 상황에서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예언해 주기도 한댜.

 야반도주하는 가족에게서 도망쳐버린 비틀즈를 좋아한 소년의 이야기는 나미야 할아버지의 조언을 듣지만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그의 부모는 결국 동반 자살을 택했다.

 조언을 얻은 사람들은 그대로 따르기도 하고, 혹은 본인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조언이 꼭 필요할까? 필요하다고 본다.

 때로는 정답이 아니어도 된다.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당신의 고민이 반쯤 해결된 듯한 경험을 한 적은 없는가.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고 책임이지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손길 자체 만으로 이미 반 이상은 영향을 준 것이다.
<그 편지는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
 나미야 할아버지의 서른 세번째 기일 이벤트는 이제껏 주고받은 편지와 답장의 결과를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사실은 30년 세월을 왔다갔다하는 것이 기적이라기 보다는, 하잘 것 없는 청년 백수들이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지렛대가 된 것(역자의 의견)이 바로 기적이 아닐까.
 처음부터 끝까지 환광원이란 시설을 새 둥지처럼 배경으로 모든 등장인물의 끈을 이어가고, 결국 나잡화점 주인 할아버지와 광원 설립자 사이의 연결고리를 짐작하게 만든 것은 평소 추리소설부터 미스터리 색채가 강한 소설을 쓰던 작가의 재미있는 구상을 엿볼 수 있어서 눈이 즐거웠다.
 마지막의 백미는~
 백지 편지를 보낸 세 백수 젊은이에게 33년 전의 나미야 할아버지가 보낸 답장이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당신의 지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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