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방문한 청매실농원
봄이 남녘에 도착했다. 매화가 피었다. 여러 꽃들이 봄이 왔음을 다투듯 알리지만, 그 소식의 최고 선봉은 매화다. 여러 번 갔으면서도 또다시 봄이 되어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매화 마을로 달려가고 싶다.
왜 그럴까. 몇 번씩 갔으면서도 그 화려한 꽃 잔치 한 복판에 서 보고 싶은 것은 사진에는 향이 따라오지 않기 때문일까. 매화꽃이 지천인 그 분위기에 나를 송두리째 담그고 싶어서일까.
매화는 꽃몽오리도 예쁘고, 살짝만 피어도 예쁘고, 만개해도 예쁘다. 한두 송이만 있어도 멋지고, 흐드러지게 모여 피어도 멋진 꽃이다.
매화는 가까이서 향을 맡으면서 보고 싶은 꽃이다.
꽃나무를 많이 심지 않기로 했지만, 양평집 꽃밭에 매화나무와 홍매화는 심기로 예약해 두었다.
옛 선비들도 사군자 중에 하나로 대접을 하면서 매화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한다.
홍쌍리라는 이름은 이미 유명해져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다. 그분이 거의 30년간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광양 다압면 청매실 농원을 다시 찾았다.
3월 10일. 낙안민속자연휴양림에서 새벽 6시에 출발했다. 사람이 많을 걸 각오하고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다. 축제가 다음날부터 시작인데, 하루 전에 온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매화꽃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늘 북적대던 마을 주민들의 장은 아직 준비 중이었다. 장터에 늘 시선을 빼앗겨 눈여겨보지 못하던 매화나무가 눈에 띈다. 수령이 꽤 오래된 것 같다.
장독은 청매실농원의 상징 같은 존재다. 매화는 옛것 이를테면 돌담, 초가집, 기와집, 장독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홍쌍리 님은 '매실청'으로 '대한민국식품명인'으로 선정되었으며,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시인/ 수필가이기도 하다. 1943년생이니까 올해로 80세다.
매화축제를 시작한 것이 1995년이라고 하니 거의 30년이 다 되어간다. 코로나 때문에 4년 만에 다시 열리는 봄꽃 대표축제인 광양매화축제는 올해로 제22회라고 한다.
청매실 농원의 전통 옹기는 2,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숨 쉬는 옹기에 오랜 시간 동안 발효, 숙성시킨 매실 발효액이 건강에 좋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가끔 속이 더부룩하고 신물이 올라올 때 매실액 한 잔으로 자주 해결하곤 한다.
매실액이 떨어질 때쯤 청매실을 사서 설탕과 매실을 1:1로 섞어서 100일간 숙성시키는데, 더 건강하게 만든다고 설탕 양을 줄였다가 실패한 적이 있어서 꼭 같은 양을 지켜서 만든다.
작년에는 피크 때를 잘 맞추어서 방문했는데, 올해는 개화가 좀 늦은 것 같았다. 아직 꽃봉오리인 상태가 많아서 전체적으로 볼 때 색감이 약한 편이었다. 대신 매화보다 개화 시기가 빠른 편인 홍매화가 화사하게 피어서 좋았다.
섬진강을 노래하는 시인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닌데도 섬진강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강 건너 하동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데, 외갓집 동네가 그곳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활짝 피면 활짝 핀 대로, 덜 피면 덜 핀 대로... 어디로 카메라를 갖다 대어도 멋진 모습이다.
화려한 꽃 잔치에 싱그런 대숲이 녹색의 포인트가 된다.
동백은 져도 예쁜 꽃이다. 낙화한 꽃 같지 않게 바닥에서도 빨갛게 빛이 난다.
섬진강 매화길은 꼭 봄에 걸어야겠다. 청매실 농원 외에도 마을이 온통 매실 농원이라, 매화꽃 따라 걷는 길이 되는 셈이다.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애용하는 초가집도 새로 이엉을 했다. 초가집 뒤편으로 만개하면 하얗게 뒤덮일 곳이 이번에는 덜 피어서 땅의 색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새 단장한 초가집에 작년에 없던 한복체험 코너를 만들었다.
한 바퀴 돌고 나올 때쯤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장사 준비가 거의 끝났나 보다. 섬진 마을의 온갖 산나물들도 소복소복 담겨서 봄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광양 매화마을에서 매화를 만나고 오는 길. 섬진강변은 아직 녹색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곧 이곳도 푸르름으로 뒤덮이겠지.
내년 봄이 되면 또 매화마을과 이곳 섬진강이 보고 싶어서 짐을 꾸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