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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Mar 23. 2023

구례 화엄사 홍매

 지난주 노오란 산수유 마을을 다녀온 다음 또 남녘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이번에는 화엄사 홍매를 보러 가기로 했다.

 산행은 정령치를 들머리로 만복대를 다녀오려고 했는데... 남원에서 정령치로 가는 지리산국립공원 입구에서 통제. 4월 2일까지 도로의 낙석 사고 처리 때문에 통과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번에는 산행을 하지 않기로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구례 여행으로 알뜰하게 보낸 1박 2일의 일정은 구례 산동면 산수유 시목지 방문, 화엄사 방문, 문척면 사성암 방문, 섬진강 대숲길 걷기로 마무리하고, 지리산 정원 숲 속 수목가옥에서 숙박을 하고 돌아왔다.

* * * *

 화엄사 문화재관람료는 1인당 4,000원을 받았다. 주차비는 무료였는데, 절 입구에 큰 주차장이 있었지만 일찍 가서인지 경내에 있는 주차장까지 들어갈 수가 있었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 표시를 따라 들어갔다.

 구례 화엄사의 창건 기록은 <사적기>에 544년(신라 진흥왕 5년) 인도 승려 연기가 세웠다고만 나와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 677년(문무왕 17)에 의상대사가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1630년(인조 8년) 벽암대사가 크게 중수를 시작하여 폐허가 된 화엄사를 다시 일으켰다고 전한다. 대개의 사찰과 달리 대웅전보다 각황전을 중심으로 가람이 배치되어 있다고 하는데, 각황전은 숙종 때에야 비로소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 각황전 옆의 홍매가 우리가 만나려는 그 홍매화다.

 정문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후문에서 들어와 만난 절의 모습이다.

 홍매는 금방 눈에 띄었다. 너무나 붉어서 흑매라고 불린다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홍매화보다 훨씬 진한 빛을 띠는 것 같았다. 저 한 그루가 봄이 되면 마음을 설레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만든다.

 홍매화를 보러 모이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갖가지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민화 전시회, 사진 전시회, 우리가 방문한 다음 날인 토요일에는 홍매화, 들매화 사진 콘테스트, 청소년 백일 장이 있다는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대웅전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의 모습이 분주해 보인다.

범종각
각황전

 화엄사 홍매화를 가까이에서 만나본다. 조선 숙종(1701년) 때 각황전을 중건한 기념으로 심었다고 하는 안내판이 있었다. 수령이 300년이 넘는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한 그루의 나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아름다운 모습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해서 우리도 옮겨 다니며 다양하게 사진을 찍어보았다. 사람이 많아서 풍경만 찍기는 쉽지 않아서 그래서 올려다보고 찍은 것이 많다. 파란 하늘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데 검은 기와와 잘 어울린다고 하여 흑매라고도 불린다는 이 홍매화는 비 오는 날 더 좋은 작품을 찍을 수 있다고 해서 사진작가들이 비 오는 날에 일부러 찾기도 한단다. 비에 젖어 검은 기와와 홍매화의 어울림. 잠깐 상상해 보았다.

 긴 세월 버티고 살아준 홍매화의 굵은 줄기와 가지마다 피어난 붉은 꽃이 이 땅을 스치고 지나간 많은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화려함 속에서도 안타깝고 애끓는 듯한 애잔함이 느껴진다.  

 의상암 들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5호라고 한다. 구층암 가는 길(길상사) 표시판을 따라 또 다른 매화를 만나러 가 보았다.

 위로 올라온 김에 각황전 홍매화를 위에서 아래로 찍어보았다. 다른 장소 다른 각도에서 본 홍매화다.

뒤뜰을 지나 대숲길로 들어갔다.

 그곳을 지나니 오래된 느낌의 절. 화엄사 뒤편의 숨겨진 별관 같은 구층암이 나타났다.

 토종 매화인 들매화는 수령이 약 45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꽃이 작은 편이나 그 기품이나 향은 개량종 매화가 따라오지 못한다는 설명과 함께 토종 매화 연구의 학술적 가치도 크다고 안내되어 있다.

 들매화는 너무 높아 카메라에 담기가 어려웠다.

  배롱나무도 수령이 꽤 오래되어 보입니다. 꽃이 피면 정말 환상적이겠다.

  무심코 지났는데, 세상에 다시 보니 마루의 기둥이 나무 모양 그대로다. 검색해 보니 모과나무의 원형을 통째로 잘라 기둥으로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벽에 걸린 액자에 구층암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 그림이 있어서 한층 멋스러워 보였다.

  남녘의 봄답게 수선화가 한창이고,

  키가 큰 복수초는 끝물이다.

  분홍빛 매화도 활짝 피었다.

  조그만 웅덩이 같은 돌확 속에 개구리알이 잔뜩 떠있다. 어미 개구리가 참 좋은 곳에 알을 낳았다 싶다. 그런데 이 많은 알이 부화가 되면 돌확이 좁을 텐데.

  구층암 앞의 삼층 석탑은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초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961년에 주변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기단 위의 3층 탑신은 자연석을 올려놓은 듯 특이한 모양이었다. 오랫동안 흩어져 뒹굴어서 탑의 모양이 망가진 듯하지만, 나름 멋스러워 보였다. 세월의 흔적이라고 할까.

 되돌아 나오며 홍매를 다시 보았다.

 탐방을 마치고 나가다가 분홍색 매화나무를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하마터면 못 보고 나갈 뻔했다.

 알고 보니 화엄사의 3대 매화 중 하나라고 한다. 홍매화와 들매화 두 가지만 보고 나갔으면 후회했겠다 싶다. 하기야 도저히 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홍매에서 느꼈던 화려함 속의 애잔함과는 다른, 그저 화사하고 풍성한 느낌만 가득 느꼈다. 우리의 인생에 이렇게 행복함만 가득할 수는 없겠지만, 이 꽃을 만나는 이 순간만큼은 행복한 느낌에 파묻혀 본다.

"분홍 매화도 한 그루 심어야겠어"

 넓지도 않은 우리 집 마당에 매화는 세 그루 심어야겠다.

 한 시간 정도 구석구석 돌아보고, 홍매는 두 번이나 만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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