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말도 내게 양분이 되도록
<책리뷰> 엎지른 물이 내 마음에 담긴다(나나용)
제법 작고 얇은 책이 집으로 왔다. 가로 13cm, 세로 19cm, 총 124 페이지. 손안의 책이다. 예전에 많이 읽던, 요즘도 발매되고 있는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 같은 느낌의 책이다.
사람이 언제까지가 자신의 일생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록 많이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든 자신의 일생에 관한 책을 이만한 크기의 책 하나쯤 써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글쓴이는 '나나용북스'라는 1인 출판사 대표다.
작가 소개부터 해 보자.
어린 시절 32개월쯤 되어 아빠를 따라 아프리카 가나로 가서 생활하게 되었다. 문화적인 충격으로 선택적 함묵증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겨우 초등학교를 들어가서 말문이 트이자 뛰어난 성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고교 과정까지 마치고, 대학은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아마 가나에서의 부모님의 큰 기대와, 강한 통제, 작은 한인 사회에서 겪는 부담감 등에 대한 부작용으로 대학 시절 우울 장애를 겪게 된 듯하다. 이후에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기면증이라는 희귀 난치성 질환까지 진단받게 된다. 완치는 어려우나 약으로 정상 생활이 가능하다고 하니 다행이다.
'엎지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라는 뜻은 저지러진 일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지우개로 잘 못 쓴 글씨를 깨끗이 지우는 것처럼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을 조심하라는 뜻도 된다. 그 말은 다른 사람에게로 가서 도움이 되거나 상처가 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강압적인 부모님께 들은 말이나,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와서도 자신에게 독이 되는 나쁜 말들을 들었을 때 많이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한다.
제목 '엎지른 물이 내 마음에 담긴다'를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엎지른 물을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는 이유는 그 물이 흘러 다른 어딘가에 담겼기 때문이다. 이미 뱉은 말은 누군가의 마음에 담겨 돌이킬 수 없다.>
- 지속해서 물을 양분으로 바꿔 마음의 그릇을 키워내야만 한다. 단물 쓴물 모두 살아가는데 양분이 된다.
- 나쁜 말도 상처받지 말고 내게 양분이 되도록 나의 마음을 키워야 한다.
- 빛이 나는 영광을 누리지 못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 내 인생은 내 책임이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도 나의 선택인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자신의 선택이다.
나도 고교 시절, 작가만큼 뛰어난 수준은 아니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로 인정받는 편이었다.
시험 기간에 공부는 안 하고 도서실에서 소설을 보는데도 성적이 좋은 나를 별난 아이로 취급했다. 나 같은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일 때가 많았다.
고2 때 한 반이었던 친구와 연락이 되어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어찌 사는지 매우 궁금했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그때는 살짝 자존감이 내려앉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잘났던 내가 대단히 괜찮게 풀렸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을까.
작가는 가나에서 촉망받는 대상으로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자랐으니 승승장구했어야 하나 본인은 자신을 평범한 한 명의 인간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1인 출판사 대표인 그녀보다, 자신의 에세이집을 낸 그녀보다 훨씬 더 평범하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그녀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된 것이 아닌가.
나는 꽤 평범하게 살아왔기 때운에 내세울 만한 이야깃거리가 없다. 누구나 짐작할 만한 다 아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와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에세이) 읽기를 좋아한다. 특별한 직업, 특별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작은 책에 작가의 인생이 담겨있다. 오늘도 다른 사람의 인생 하나 잘 읽었다. 책은 얇고 작지만, 메시지가 있는 책이다.
- YES 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